아라비아에서 72시간 2

아라비아에서 72시간 2

아라비아에서 72시간 2

취향 좋기로 소문난 김아린 대표가 떠난 신비로운 사우디아라비아 여행.

AlUla Old Town

12세기에 지어졌다는 올드 타운.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줄지어 늘어선 진흙 벽돌로 지은 900채 넘는 집과 유서 깊은 골목의 미로인데, 이곳은 알울라의 옛 시가지다. 지금은 마을이 아니라 복원해 구불구불한 길과 식당, 카페, 상점 등이 채워져 있다. 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올드 타운을 걸으면 골목 전체에 감도는 아랍 향과 연기로 인해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곳에 도착한 듯하다.

 

Design Space AlUla

© Gio Foma

알룰라 올드 타운의 초입, 알자디다 거리에 위치한 디자인 스페이스다. 이탈리아 조 포르마 스투디오 Giò Forma Studio가 디자인한 코르텐 강철 더블스킨의 건축물로 지난 2월 새롭게 문을 열었다. 마라야를 설계한 스튜디오로, 알룰라 고유 문양을 사용한 컷 아웃 패턴이 안뜰로 섬세하고 극적인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지역에 새 건물을 건축하려면 자연경관과 문화유산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하기에 올드 타운과 더욱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WEB www.experiencealula.com

 

Hegra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헤그라는 고대 나바테아인의 문명 중심지로 그들의 비현실적인 건축물을 직접 만지고 걷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2000년 전, 정면이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 기념비적인 무덤 111개, 모래산의 한 면을 깎아 그들의 염원을 담은 무덤 건축물은 나바테아인의 건축 수준과 오아시스 생태계, 알룰라를 만든 그들의 놀라운 기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헤그라 투어는 빈티지 오프로드 지프나 마차를 이용한다. 두 마리의 아라비아 홀스가 끄는 마차를 타고 모래를 날리며, 떨어지는 해를 향해 고대 문명 사이를 달리는 투어다.

 

Louvre Abu Dhabi

아부다비 사디야트 Saadiyat 섬에 위치한 루브르 이름을 사용하는 박물관으로, 8000㎡ 갤러리를 갖춘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큰 미술관이다. 동양과 서양, 그리고 아랍 미술을 고대부터 시대순으로
병렬 전시해 세계 문화의 흐름을 느낄 수 있게 한 큐레이션이 감동적이다. 현재 아랍 전체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 수를 자랑하는 박물관이다. 바로 옆에는 구겐하임과 거대한 규모의 팀랩이 한창 건축 중인데, 사디야트 아일랜드의 미래가 기대된다. 태양광 활용의 달인답게 건축가 장 누벨은 루브르 아부다비의 지붕에 행성만 한 다운 셰이드를 씌웠다. 내부에선 아랍 하늘의 작열하는 태양 광선이 비처럼 쏟아진다. 거대 돔과 상반되는 온전히 하얀 매스들이 섬처럼 떠다니며 군도를 이루는 형상이다.

WEB www.louvreabudhabi.ae

 

The Empty Quarter

아부다비 공항에서 차로 2시간 30분쯤 떨어진 ‘더 엠프티 콰터 the Empty Quarter’ 한가운데 지어진 진정한 신기루, 카스르 알 살랍 Qasr al Sarab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140개 방, 53개 풀빌라로 이루어진 곳인데 리조트라기보다는 ‘킹덤’이다. 끝없는 사막을 2시간 넘게 달려 드디어 호텔 사인을 통과했는데, 그로부터 다시 끝도 없는 듄을 마주한다. ‘정말 이 길이 맞을까’ 싶은 의심으로 두려울 때쯤 마침내 저 멀리 성 입구가 드러난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 듄, 듄 넘어 듄, 모래바람, 황량함으로 가득 차 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마주한 광활한 대지에서 사나운 바람과 뜨거운 태양이 내 눈앞에 있다. 숨막히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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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린(비마이게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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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에서 72시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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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좋기로 소문난 김아린 대표가 떠난 신비로운 사우디아라비아 여행.

지구 반대편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세운 원대한 계획은 마치 공상과학소설 같고 아라비안나이트보다 현실감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의 큰 그림 속 문화수도 알룰라에 발을 디디고 보니 마치 빨려 들어가듯 그의 미래에 홀려버렸다. 두바이에서 비행기로 3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고대도시 알룰라. 공항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완연히 다른 기운, 이곳은 정말 지구일까? 3시간 만에 다른 행성에 도착한 것인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대자연이 장관이었다. 울퉁불퉁 살아 움직이는 듯한 산은 흙인지 돌인지, 아니면 고대 나바티아인의 조각인지 알 수 없었다. 중력을 완전히 거스르며 솟아오른 거대한 돌산이 놀랍다.

비마이게스트 김아린 대표.

 

Our Habitas AlUla

정말 이 길 끝에 호텔이라 부를 수 있는 숙박시설이 있단 말인가 싶을 때쯤 나타나는 매우 조촐한 입구. 아비타스 알룰라의 환대는 카다몬 향 가득한 사우디커피와 대추야자로 시작된다. 그러고 나서 버기를 타고 호텔 부지를 한 바퀴 구경시키는데, 모든 돌산이 튀어나와 우리를 향해 목청껏 소리치는 듯하다. 구석구석 아늑하게 놓인 아트웍, 스파, 식당, 카페가 돌산 사이사이 비밀스럽게 숨어 있다. 방이라기보다는 한 채의 작은 오두막과 돌산을 향한 천막, 야외 샤워가 기다린다. 적절하게 꼭 있을 것만 갖춘, 그렇지만 감각적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예와 알룰라 돌산의 조화가 안밖의 경계 없이 대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공간이다.

WEB www.ourhabitas.com/alula

 

Caravan by Habitas AlUla

돌산으로 둘러싸인 에어스트림 군단. 모험과 놀라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몰입형 글램핑 숙박시설이다. 신기루 같은 푸드트럭 3대가 함께하며, 거대한 텐트 스타일의 여유로운 라운지가 준비되어 있다.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아이스크림 트럭이라니 마치 판타지 영화 같다.

WEB www.ourhabitas.com/alula

 

Maraya

© Gio Foma

존재 자체가 환영 같은 건축물이다. 9740개 글라스 패널로 지은 거대한 반사체다. 알울라의 아샤르 계곡 Ashar Valley에 위치한 콘서트, 이벤트, 컨퍼런스를 위한 다목적 장소다. 마라야(거울을 뜻함)는 다가서면 쏟아지는 사암 돌산 속으로 자신이 녹아 사라져버릴 것 같은 눈속임 효과로 홀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거울 건물이자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인 랜드마크다.

WEB www.marayaalu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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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린(비마이게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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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으로 들었소, 요코 오노

풍문으로 들었소, 요코 오노

풍문으로 들었소, 요코 오노

시대를 너무 앞서버린 그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전시가 열린다. 요코 오노가 들려주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요코 오노의 작품 <백 피스 Bag Piece>.

존 레논의 아내, 평화주의자, 여성 예술가 ‘요코 오노’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제대로 본 적 없이 풍문으로만 들어본 그녀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전시회가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노는 1933년 일본 도쿄에서 부유한 은행가이자 피아니스트던 부모 슬하에서 태어나 고급 교육을 받았고, 1952년 뉴욕으로 건너가 먼저 이민 와 있던 가족과 합류한다. 음악과 문학을 공부하고, 존 케이지 등 플럭서스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아티스트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인 음악가 이치야나기 토시, 미국인 영화제작자 앤서니 콕스와 두 차례 결혼 및 이혼한 바 있으며, 존 레논과의 결혼은 세 번째다.

유리 망치를 들고 있는 요코 오노.

오노와 레논의 만남은 그녀가 전시회, 심포지엄 등으로 런던에 초청받아 머물던 기간에 일어났다. 오노 전시회에는 관객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그 위의 돋보기로 작은 글씨를 읽는 작품이 있었는데, 레논이 이에 참여하며 ‘YES’라는 단어를 읽으면서 서로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둘은 서신을 교환하며 각자의 작품과 음악을 보내주었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대중 시위를 주도하며 연인이 되었다. 1969년 존 레논이 이혼 후 오노와 결혼하면서 신혼여행 대신 일주일간 침대 위에서 벌인 평화 캠페인은 이 부부 예술가의 여러 활동 중 가장 유명한 퍼포먼스다. 1980년 존 레논이 팬에 의해 암살당한 뒤, 그녀는 세계 각지를 다니며 평화를 추구하는 다양한 예술 활동을 이어나간다.

작품 <헬멧 Helmets>의 설치 전경. © Baltic Centre for Contemporary Art

여기까지가 잘 알려진 오노의 일생이다. 그녀의 그림이나 조각, 그리고 음악에서 방송 기획에 이르기까지,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70년간의 작품 활동을 조명하는 것은 전시회의 과제일 것이다. 전시회에는 그녀의 활동을 담은 사진, 영상, 다큐멘터리, 녹음 등 희귀한 자료가 많지만 관객은 한가로이 거닐며 사진 찍을 틈이 없다. 작품 대부분이 ‘구름이 떨어지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처럼 관객을 참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소원을 적어 나무에 매다는 <위시 트리>를 거쳐 입장한 다음에는 ‘안녕하세요. 요코입니다’라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전화 자동응답기가 생기기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깨끗한 전시장 안에 놓인 하얀 ‘난민 보트’에 낙서를 남기거나, 이라는 작품에서는 어머니에 대해 글을 쓰거나 벽을 따라 일렬로 붙어 있는 캔버스에 어머니 사진을 붙여야 한다.

1964년 요코 오노가 펴낸 책 <그레이프푸르트>. © Yoko Ono, Grapefruit, Page 11, SECRET PIECE, 1964. Courtesy the artist

오노에 대한 재평가는 10여 년 전부터 서서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검은 페도라를 쓴 여든의 작가가 마이크를 잡은 채 ‘아아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는 퍼포먼스는 소셜 미디어를 타고 확산되면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나버린 작가의 삶이 안타깝기도 하고, 시대를 앞서 활동해준 그녀가 고맙기도 하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도 되는 자유는 관객들이 느끼는 만족감의 원천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와 따뜻한 격려, 바로 이 점이 요코 오노가 명성을 얻은 비결일 것이다. 전시 <요코 오노: 마음의 음악(Yoko Ono: Music of the Mind)>의 제목은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온 그녀 자신의 삶을 나타내는 것인데, 그 속에서 관객들은 자신의 내면을 들어다보게 되는 셈이다. 전시는 오는 9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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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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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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