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것은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된다. 사진가 강진주는 전통 도구와 기억을 사진에 담아, 시간의 흔적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강진주 작가의 작품 <나무 바가지 Wooden bowl>. 두손갤러리에서 개인전 <밥은 먹고 다니냐>가 지난해 12월 11일부터 올해 1월 4일까지 열렸다. © 강진주

촬영을 위해 수집한 떡살.

2020년 출간한 ≪쌀을 닮다≫는 미식 책 분야의 오스카 상이라 불리는 구르망 월드 쿡북 어워드에서 수상하며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생명의 순환’을 주제로 한국의 식문화를 예술로 표현하는 강진주 작가.

간장게장을 촬영한 사진을 패브릭에 프린트해 커튼으로 활용했다.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시간이 멈춘 듯한 독특한 공기가 흐른다. 이곳에서 사진가 강진주는 전통 도구와 자연의 흔적을 사진에 담으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그녀의 작업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깊은 애정과 탐구를 펼쳐낸다. 강 작가는 중앙대에서 사진을 전공한 후, 일본의 아마나 스튜디오에서 커머셜 작업으로 경력을 쌓았다. 그곳에서 얻은 기술적 완벽함과 작업 태도는 지금까지 작품 세계의 근간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 일하던 시절, 하루 수백 컷을 촬영하며 완벽함을 추구했어요. 하지만 사진이 단순히 기술로만 이뤄지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죠. 결국 제 작업은 사람과 도구, 그리고 시간의 흔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방향으로 옮겨갔어요.” 그녀의 작업 세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만난 멘토 니시미야와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그에게서 사진을 배운 적은 없지만, 사진을 대하는 태도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은 배웠다. “니시미야 선생은 항상 긴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셨죠. 단순한 일상 대화가 아니라, 우리가 정말로 생각해야 할 것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어요. 그 시간은 저에게 ‘아트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한 소중한 배움의 순간이었죠.” 강 작가는 지난여름, 9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멘토와의 마지막 순간을 회상하며, 그가 남긴 지혜를 여전히 작업에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작가의 또 다른 중요한 동반자는 바로 반려견 소피였다. 17년 동안 작가 곁을 지킨 소피는 단순히 반려동물이 아니라, 작업과 삶에서 균형을 찾도록 도와준 소중한 존재였다. “소피를 통해 자연과 교감하고, 삶을 조금 더 떨어져서 바라보는 법을 배웠어요. 소피와의 시간은 작업뿐만 아니라 제 삶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어요.”

<수저 Spoon and chopsticks>. © 강진주

<광주리 Multi-purpose hamper 2>.
작가는 작업에서 전통 도구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할아버지 집에서 접한 맷돌, 멍석, 떡살 같은 물건이 작품의 영감이 되었다.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가 절구에 쌀 빻던 모습, 멍석에서 피어오르던 먼지, 그리고 차례 음식에서 나던 간장과 참기름의 향은 제 작업의 기초가 되었어요. 그런 기억이 제 작업의 출발점이에요.” 작가는 이런 도구를 단순히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진은 도구들을 주인공처럼 빛나게 하며, 그들만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제가 찍는 물건들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아름다워요. 하지만 저는 그들이 가장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주고 싶어요. 마치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하는 주인공처럼요.”

철판과 합판으로 만든 작업 보드. 그동안 촬영한 작업물들이 가득하다.

오래된 건물이었던 터라 내부를 통째로 뜯어 고쳤다. 나무 바닥과 박공지붕이 주는 따스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고가구 반닫이 위로 작가가 그동안 수집해온 독특한 오브제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림은 곽인식 작가의 작품.

1월부터 12월까지 각각 그 달을 대표하는 식재료를 촬영한 시리즈 중 4월의 딸기 작품.

<쌀싹과 유기>. © 강진주

집 안 곳곳 이야기가 담긴 한국 전통의 것들이 가득하다.

≪소피의 식탁≫, ≪쌀을 닮다≫ 등 그동안 출간해온 책과 아카이빙 자료들. 뒤에 걸린 작품은 10월의 배추 작품.

강진주 작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자 동반자인 반려견 소피 사진.

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수납함. 세 번째 단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캐논 카메라가 강 작가의 인생 첫 번째 카메라다.

<저울 Scale>. © 강진주

아티스트 성능경의 퍼포먼스 도중 타다 남은 부채가 걸려 있다.

주방 선반 위에는 조선후기 도자기 석간주와 시각장애인이 만든 천사상이 놓여 있다.
작가의 작업 방식은 도구를 의인화하고, 그들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중점을 둔다. 이는 그녀가 사진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사진은 시간과 공간을 멈추는 행위지만, 동시에 시간의 흔적을 담는 과정이기도 해요.” 강 작가의 작업은 자연스레 한식과 연관되어 있다. 한국의 제철 식재료를 1월부터 12월까지 기록하며, 사라져가는 전통과 자연의 순환을 이야기한다. 특히 그녀가 쓴 책 ≪쌀을 닮다≫는 이런 작업의 연장선에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쌀은 단순히 식재료를 넘어서, 한국 문화와 역사의 중요한 상징이에요. 1만7000년 전 청주 소로리에서 발견된 볍씨가 증명하듯이, 쌀은 이 땅의 뿌리 같은 존재죠.” 그녀의 작업은 과거를 향한 향수를 넘어서,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기후 변화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작업에 담아내고자 한다. “우리가 각자 쓰레기를 20%만 줄여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어요. 작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작은 실천이라도 하게 만드는 동기를 주고 싶어요.” 강진주 작가의 사진은 기록을 넘어서 사물과 인간, 자연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작업이다. 그녀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전통과 시간을 불러내어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사진은 제게 작업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녀요. 그것은 삶의 여정이자, 제가 담고 싶은 세상을 담아내는 도구예요.” 사진가 강진주의 이야기는 시간과 기억에, 그리고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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