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과 차, 공예의 그윽한 품격을 경험할 수 있는 ‘일지’의 새로운 공간.

청자 삼족 향로, 오리 향로 등 다양한 형태의 향로.
“영어에는 ‘향기’라는 단어가 없어요.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뿐이죠. 우리 동양 언어에서는 향을 왜 ‘기(氣)’와 같이 사용했을까요? 좋은 냄새에 기운을 더하는 것이에요. 그 차이가 중요해요. 좋은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향을 즐기는 과정이 바로 ‘향도’입니다.” 동아시아의 향과 차 문화를 연구하고 교육해온 ‘일지’가 서울 안국동 지점의 재단장을 마치고 새롭게 문을 열었다. 2009년 설립된 이루향서원을 시작으로 생소했던 향도를 소개하며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 노력해온 곳이다. 정진단 대표는 1996년 중국 광동에서 차 공부를 시작해 고급평차사가 된 이후, 2006년 불교 명상법인 위파사나 Vipassana 수행을 계기로 향을 본격적으로 배우게 됐다. 이후 2013년 한국향도협회를 창립하고 향도와 향 명상을 연구하며,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향과 차 문화 교류에 힘써왔다. “일지(一枝)라는 이름은 장자의 ‘소요유’에서 가져왔어요. 새가 숲 전체에 사는 것 같지만 결국 가지 하나에 둥지를 틀고 살 듯, 우리도 결국 작은 땅 위에 존재하는 거잖아요. 한결같이 본질을 지키며 살고 싶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향과 향도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일지의 인센스 아카이브.

숯위에 재를 덮고 간접적인 열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향을 맡는 격화훈향법.

향 모양의 틀을 잡아주는 향전을 이용한 향전법.

정진단 대표.

침향 중에서도 최고라 일컫는 기남. 일지에서는 지역별로 수집한 다양한 기남을 볼 수 있다.
이번 공간은 차와 향을 더욱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1층은 ‘티하우스 일지’로 한국 녹차와 황차를 비롯해 중국 6대 다류, 인도와 스리랑카 차까지 다양한 종류를 맛볼 수 있다. 모든 차는 일지가 직접 수입하고 교육해온 차인데, 20여 가지 차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차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구성했다. “차를 제대로 즐기려면 직접 우려봐야 해요. 첫 번째 맛과 두 번째 맛이 다르고, 마지막까지도 변화하죠. 그런 경험을 통해 차를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2층은 차를 더욱 깊이 즐기고 싶은 ‘차 마니아’를 위한 공간이다. 무형문화재 장인이 만든 차, 갓 수확한 녹차, 오랜 시간 숙성된 빈티지 차까지 차의 깊이를 탐색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할 계획이다. 고려 시대와 한나라 시대의 향로, 일본 전통 차통 등 정진단 대표가 수집한 다구들도 감상할 수 있다. 향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지하층에 자리한 ‘인센스 아카이브’를 찾으면 된다. 이곳에는 침향, 단향, 용연향 등 신성한 향 재료와 향로, 향 기물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문인들의 수양 방식이던 향도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일지는 향을 단순한 감각적 경험이 아니라, 호흡을 통해 기운을 정화하는 예술로 바라본다. 더욱이 향은 호흡으로 들이마시기 때문에 먹는 음식만큼 안전한 재료가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일지의 모든 향 제품은 인공 향료나 색소, 접착제를 배제한 천연 재료만으로 제작한다.

빈티지 차를 비롯해 귀한 차와 차 도구들을 모아놓은 2층.

2층에서는 직접 차를 우려 마시거나 작은 차회를 가질 수 있다.

창가에 마련한 작은 찻자리.

1층에 위치한 티하우스 일지.
향을 맡는 과정도 하나의 수행과 같다. 대표적인 향도 방식 중 하나인 ‘격화훈향법’은 연기가 올라오지 않도록 간접적인 불을 이용해 은은한 향을 맡는 방법이다. 타오르는 숯 위에 재를 덮고 그 위에 향목을 올려 향을 음미하며, 정갈하게 재를 가다듬는 과정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잡념 없이 오로지 현재에 집중한다. “향도에서는 향을 ‘맡는다’라 하지 않고, 문향(聞香)이라 해서 향을 ‘듣는다’고 표현해요. 비관(鼻觀)은 코의 관찰을 의미하는데, 향이 몸에 스며들고 그에 따라 일어나는 몸의 감각과 생각의 변화를 관찰하는 과정이죠. 향이 내게 오는 순간을 기다리며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어요. 숨을 내쉴 때는 고개를 한쪽으로 돌려 향이 날아가지 않도록 하죠. 향도는 결국 호흡을 통해 이루는 최상의 예술입니다.” 차와 향은 단순히 기호를 넘어 삶에 여유를 더하는 문화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차 한 잔, 향 한 줌이 주는 쉼의 가치는 크다. “차를 우리는 시간은 기다림의 시간이죠. 그 시간 동안 향을 피우고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며 온전히 내게 집중할 수 있어요.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차 한 잔, 향 한 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기 바랍니다.”

향과 차에 대해 경험할 수 있는 티하우스 일지.
ADD 서울시 종로구 윤보선길 38 WEB incenseilj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