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서가에 묻혀 있던 오래된 식물 도감, 먼지 쌓인 책 속에서 잊힌 동물 도해들.
그저 과거의 기록으로 남아 있던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헨리크 딥달의 예술 세계.

더 딥달 코의 스튜디오에는 잊힌 그림들이 다시금 생동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1998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시작된 ‘더 딥달 코 The Dybdahl Co.’는 오래된 책과 박물관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프린팅 공방이다. 창립자 헨리크 딥달 Henrik Dybdahl은 왕립 도서관 및 정보 과학을 전공하며 시각 유산의 가치를 연구했고, 이를 바탕으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예술적 프린트를 제작하고 있다. 그의 손을 거친 바랜 도판들은 다시금 생기를 얻고, 잊혔던 이미지는 새로운 시선을 만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과거의 아름다움을 오늘날의 감각으로 잇는 그의 작업 철학에 대해 알아봤다.
과거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오래된 이미지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첫눈에 강한 끌림을 느껴야 한다. 그것이 주제이든, 색감이든, 구성이든 상관없이 즉각적으로 시각적 매력을 느끼고
작업을 계속하고 싶게 만드는 이미지여야 한다.
역사적 서적을 탐색하면서 특별히 인상 깊었던 이미지가 있는가? 오래전에 야자수 그림이 가득 담긴 책을 우연히 발견한 적이 있다. 처음 접한 수준 높은 식물학 서적이었고, 더 깊이 탐구하고 싶다는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때 경험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50여 종의 아트 프린트를 출시하게 되었고, 여전히 그 책은 꾸준한 영감을 주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아트 프린트를 제작하기 위해 독일산 무광 아트지와 일본산 잉크를 사용한다고 들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작품의 가치가 변하지 않도록 고품질 소재에 인쇄한다. 자연스러운 질감을 가진 종이를 사용해 이미지의 깊이를 살리고, 색상의 선명함이 오래 유지되도록 아카이벌(기록 보존용) 잉크를 선택한다.

박물관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고서적의 해양 생물 도판이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하는 순간.

오래된 서적에서 또 다른 예술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헨리크 딥달의 모습.



헨리크 딥달의 아름다운 작품들은 마이알레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렇게 엄선된 재료가 최종적으로 작품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원본 이미지의 생생한 색감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책이 처음 제작되었을 때의 색상이 지금도 똑같이 빛나도록 디지털로 이미지를 보정하고, 세밀한 색조 조정을 거쳐 본래 아름다움을 재현한다. 또한, 고급 인쇄 공정을 통해 최종 작품에 생동감을 더욱 불어넣는다.
코펜하겐 왕립 도서관 및 정보 과학 학교에서의 학업이 오늘날의 디자인 철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5년 동안 공부하면서 점점 더 고전 이미지와 그래픽 자료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우리가 공유하는 시각적 역사와 이를 보존하는 기관들을 연구하면서, 과거의 작품이 단순히 흥미로운 것을 넘어 새롭게 해석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자료 조사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 방식을 배우면서 세밀한 연구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 과정 덕분에 숨겨진 명작을 발굴할 수 있었고, 작업에도 더욱 풍부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할 때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경험하기 바라는가? 경이로움과 향수를 동시에 느끼기 바란다. 작품은 익숙함과 신비로움 사이에 존재하도록 설계되었으며, 감상자들이 세밀한 요소들을 탐색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궁극적으로, 작품이 개인적인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키고,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바란다. 또한, 풍부한 자연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이 순간적으로라도 자연과 다시 연결되는 경험을 하기 바라며, 이 경험이 더 깊고 지속적인 자연과의 관계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예술가로서 바라본 한국의 모습은 어땠는가? 비록 짧은 방문이었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자연, 전통, 그리고 현대성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고대 사원이 네온사인이 빛나는 마천루와 공존하는 도시 경관은 마치 여러 개의 층위로 구성된 풍부한 시각적 서사를 제공하는 듯했다. 또한, 야외 조각 작품이 눈에 많이 띄었고, 자연이 실내외 공간에 유기적으로 스며드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한국은 강한 추진력과 끊임없는 창의적 에너지를 지닌, 매우 역동적이고 영감을 주는 곳이었다.
덴마크 디자인이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방식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오늘날 소비자들은 자신의 생활 공간을 좀 더 신중하게 조성하고 있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디자인을 넘어, 평온함과 편안함, 그리고 개인적인 연결성을 제공하는 디자인을 찾고 있다. 고품질의 내구성이 강한 소재,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미학, 그리고 스토리를 담은 작품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덴마크 브랜드는 이러한 가치를 오래전부터 실천해왔으며, 최근에는 지속 가능성, 장인정신, 인간 중심 디자인에 대한 더욱 강한 헌신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역시 고객들이 감성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더욱 선호한다는 점을 느낀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의미 있는 디자인을 창조하고, 그것이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웰빙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다.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는가? 새로운 형태의 예술적 실험을 시도하고 싶다. 특히, 평면을 넘어 입체적인 작품을 제작하는 데 관심이 많다. 조각이나 설치미술 시리즈를 구상하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시각적 스타일을 물리적 공간으로 확장해보고자 한다. 또한, 오래된 아카이브 이미지와 현대 광고 소재를 결합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구상하고 있다. 전통적인 학문적 접근과 현대적인 비즈니스 감각을 융합해, 색다른 방식으로 시각적 스토리텔링을 펼쳐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