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옥의 숨결 위에 차곡차곡 얹힌
감각과 시간. 사람, 자연, 시간의
관계 속에서 살아 숨쉬는 공간,
레이어 한옥의 이야기.

레이어 한옥 하우스 중앙에는 허명욱 작가가 옻칠 기법으로 완성한 아톰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다.

레이어의 송현빈 부사장.
북촌의 조용한 골목 어귀에 전통과 현대, 젊음과 연륜이 층층이 쌓인 공간 이 문을 열었다. 이름처럼 여러 겹의 시간과 감각이 교차하는 ‘레이어 한옥’은 전통 한옥의 뼈대를 보존한 채,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을 향한 철학을 입은 장소다. 여백의 미를 살린 곳이자 공간 자체가 이야기가 되는 곳에서 레이어의 송현빈 부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레이어 한옥을 기획하며 처음 머릿속에 그린 그림이 궁금합니다. 어떤 공간을 만들려고 하셨나요? 레이어는 사람, 자연, 시간의 관계 속에서 지속 가능한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공간 브랜드입니다. 레이어 청담 이후 다음 프로젝트를 고민하던 중,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가 한데 모인 북촌에서 모두의 경험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레이어 한옥 아뜰리에’는 전시와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젊은 작가들과 소통의 창구로 사용한다면, ‘레이어 한옥 하우스’는 스테이로 운영하며 정말 살아보고 싶은, 누군가에게 쓰임이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기 원했어요.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 이 공간에서 방문객들이 감각과 감정을 쌓아갈수록, 우리도 그들과 함께 변해가는 거죠.
기존의 한옥을 보수하며 특별히 신경을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한옥 용어로 병치라고 하죠. 건물과 자연이 나란히 있으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마루에 앉아 있을 때 들리는 자연 소리와 바깥 풍경이 잘 어우러질 수 있게끔 의도적으로 내부엔 그림을 많이 걸지 않았습니다. 지붕과 기둥 등 기존 한옥의 전반적인 프레임은 그대로 유지했어요. 십장생, 태양, 구름산, 소나무, 거북이 등의 그림이 그려진 대문의 벽화도 보수만 했을 뿐, 기존에 있던 작품이었어요. 새로 작업한 부분은 조경과 미장입니다. 북한산의 형태에서 모티프를 얻어 입구의 조경을 꾸미고, 다이닝 공간의 미장은 김진욱 명인이 작업했어요. 화학 제품이 안 들어가고, 쌀로 풀을 쑤고 산청백토로 손수 일일이 디자인하셨어요. 숨을 쉬는 마감재인 거죠.

북유럽 디자이너 폴 케홀름, 르 코르뷔지에 등의 가구로 장식한 레이어 한옥 하우스의 내부.

허명욱 작가의 오브제가 놓인 다이닝 공간.

레이어 한옥 아뜰리에 공간과 어우러진 고가구가 눈에 띈다.

다도 공간의 테이블, 벽면의 작품 또한 허명욱 작가의 작품.

작은 디테일까지 신경 쓴 아뜰리에 모습.
아뜰리에의 경우, 현대적인 공간이 아닌 한옥이라는 공간에서 전시를 전개 한다는 점이 신선합니다. 일반적으로 갤러리라 하면 진입 장벽이 있는 어려운 공간을 떠올리는데, 우리는 그 문턱을 낮추고 방문객들이 편히 들렀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요. 그중에서도 아뜰리에는 젊은 작가들과의 협업을 진행하는 곳이에요. 이제 시작하는 작가들의 유연한 사고를 받으면 우리도 같이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조금씩 전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김예지, 최상준 작가의 테이블웨어 브랜드 물터의 전시를 진행 중이에요.
덴마크 디자이너의 가구들과 허명욱 작가의 작품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뜰리에 곳곳엔 고가구도 배치되어 있고요. 이 시대를 살면서 세대나 동서양의 차이를 구분 짓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만들어갈 공간엔 이런 특징들이 어우러지기 바랐습니다. 추구하는 지향점만 같다면 동양이든 서양이든, 연륜 있는 작가든 젊은 작가든 가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고가구는 어떤 컬렉터로부터 기증받은 물건인데, 마침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우리 공간과 잘 맞아떨어져 아뜰리에에 배치해뒀어요.
허명욱 작가와의 협업을 진행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네요. 허명욱 작가의 작품에 담긴 철학은 우리와 많이 닮았어요. 허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수행하듯 켜켜이 진행되는데, 레이어 한옥도 이름처럼 여러 겹의 문화가 쌓이는 것을 추구하는 공간이죠. 작가가 자연 속에서 한 해 동안 칠하고 말리기를 반복하며 완성한 작품은 다도실의 중앙을 장식하고 있어요. 눈과 비를 맞고, 나뭇잎이 쌓이기도 한 작품의 윗면과 색채를 층층이 쌓아올린 아랫면이 중앙에서 만나는 것처럼, 레이어 한옥도 그런 공간이 되기 바랐습니다.
입구와 건물 중앙에 놓인 아톰 모형과 공간을 채운 가구부터 작은 공예품까지, 모두 허명욱 작가의 작업이라 들었습니다. 아톰 모형은 허 작가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상징적으로 만들었어요. 한옥 중앙을 꾸민 아톰 모형의 눈은 자개로, 몸통은 옻칠로 작업한 작품이죠. 다도 공간의 테이블은 금속을 손으로 두드려 탄생한 작업물입니다. 위에서 보면 울퉁불퉁한 텍스처가 돋보이는데, 그 위에 옻칠을 입혔어요. 옻칠은 장소의 온도와 습도, 그리고 사용하는 사람의 흔적에 따라서 색이 조금씩 바뀌어요. 같은 칠을 했는데 어떤 건 와인 빛이 돌고, 어떤 건 좀 더 검은 빛이 돌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레이어 한옥은 사용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 될 거예요.
말씀을 듣다 보니 레이어 한옥은 결국 방문객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꽉 찬 공간보다는 여백이 있는 공간을 지향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조금씩 비워진 공간에 사람의 온기와 흔적이 자연스레 얹혔으면 합니다. 이 한옥이 100년 넘게 이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시대에 맞춰 변화하면서도 따뜻한 생활감을 담은, 오래 머무는 공간이 되기 바랍니다.

레이어 한옥 아뜰리에에서는 물터의 감각적인 오브제를 조명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담장의 벽화는 한옥 복원 전부터 있던 작품.

조경과 어우러진 아뜰리에 전경.

여백의 미를 강조한 레이어 한옥 아뜰리에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