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요 그룹이 북촌에 지은 수경재. 이곳은 성복화 부회장의 미감과 철학, 그리고 리브랜딩을 통해
다시 정의된 광주요의 정신이 담긴 공간이다.

창문를 열면 한눈에 펼쳐지는 북촌의 풍경. 그 앞에 놓인 고요한 도자기들이 과거와 현재를 나란히 담아낸다.

한옥 지붕 너머로 남산타워가 펼쳐진다. 전통과 현대가 맞닿는 수경재의 마당 풍경.
1963년, 조선 왕실의 도자기 장인정신을 잇겠다는 뜻으로 시작된 광주요. 흙과불, 빛의전통을생활로옮겨온이들의여정은 60년넘게 이어졌다. 스테인리스 식기가 당연시되던 시절, 생활 도자기로 한국 식탁의 미감을 바꿔낸 2대 조태권 회장의 행보는 광주요를 한국 식문화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번 북촌 수경재 오픈과 아라리 론칭은 브랜드가 다시 처음을 바라보며 시작점의 정신을 현재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과정이었다.

입구에 놓인 청자와 장식 오브제들. 두 번째 칸에 있는 청자는 손주들의 띠에 맞게 특별 제작한 것이다.

벽면을 가득 채운 찻잔과 다기들. 성복화 부회장이 오랜 시간 수집해온 것이다.
창립자 조소수 선생의 ‘백자 진사 포도문 호’에서 영감을 받은 이번 리브랜딩은, 익숙한 형태를 깨고 자유롭게 흐르는 넝쿨과 포도송이를 담아냈다. 광주요의 첫째 딸이자 F&B 사업을 이끌고 있는 조윤경대표는 “광주요는 단순히 그릇을 만드는 브랜드가 아니라, 한국의 식문화와 미의식을 함께 이야기하는 브랜드예요. 수경재는 그 철학의 집약체이자 시작점이라 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현재 그녀는 수경재 1층에 자리한 디저트 카페 아라리를 총괄하고 있다. 성복화 부회장은 조태권 회장의 아내이자, 광주요 그룹의 뿌리를 지켜온 인물이다. 그녀는 수십년간 모아온 가구와 도자기, 기물들을 중심으로 지난 시간의 결을 공간으로 풀어냈다.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언젠가 내가 떠나도, 이 공간이 남아 누군가에게 광주요의 철학을 전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수경재는 ‘수화경행’에서 이름을 따왔다. ‘모여 조화롭게 한다’는 수화, ‘밝고 큰 길을 오가는 사람과 문물’을 뜻하는 경행, 그리고 ‘머무름’을 의미하는 재. 북촌의 높은 언덕 위에 사랑채, 대청, 안채, 누마루로 이어지는 전통 한옥 구조를 복원해 배치했다. 코로나19 시기에도 공사를 멈추지 않고 완성한 이곳은 단순한 한옥이 아닌, 성복화 부회장의 컬렉션과 철학이 녹아든 복합 문화 공간이다. 대문을 동쪽으로 옮겨 풍수적으로 가풍이 빠져 나가지 않도록 하고, 계단을 측면에 배치해 출입 동선의 불편도 해결했다. 기존 한옥의 목재를 해체한 후 위치와 결구 방식을 모두 기록해 다시 조립했다. 기와는 다시 얹고, 마당과 외벽에는 기존 석재를 재가공해 사용했다. 보와 기둥은 광주요 이천 가마 앞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기르던 80년된 밤나무로 제작했다. “부모님이 남긴 나무를 잘라 쓰는 게 죄송스러웠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함께 있는 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성복화 부회장은 생활과 실용성을 중요시 했기에 문화재급 전문가보다는 한옥 전문 건설사 참우리와 젊은 장인들에게 의뢰를 맡겼다. “문화재를 복원하려는 것은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편하게 머무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마루와 주방에는 빈티지 우드를 사용해 옹이의 문양과 목결이 공간에 깊이를 더하고, 모기장은 일반 삼베 대신 좀 더 촘촘한 추포를 사용해 실용성과 미감을 동시에 잡았다. 광주요에서 나온 도자기는 화장실 세면대 타일, 외벽 장식, 토판, 청기와 등으로 활용돼 광주요의 뿌리와 본질이 공간 곳곳에 스며든 점도 재미있다. 누마루에 오르면 북촌 한옥마을과 남산타워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대청의 천장에는 부회장이 직접 쓴 상량문이 수경재의 철학을 응축한다. 사랑채에는 성복화 부회장이 수십 년간 수집해온 다완과 찻잔, 소반, 고가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도자기만 있으면 식상하니까 대나무나 유리, 원목 같은 걸 함께 두면 공간이 더 살아나요.” 안채 주방에는 오래된 청자와 대나무, 유리 오브제가 어우러져 부드러운 깊이를 더하고, 마당과 누마루에는 계절마다 그녀가 농원에서 직접 고른 꽃들이 공간의 결을 완성한다. “공간이 원하는 꽃이 있어요. 플로리스트가 꽂은 꽃도 예쁘긴 한데, 이 집에는 그게 아니었어요.” 솜씨가 워낙 뛰어나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있는지 묻자, “어렸을 때 신부수업할 때 배운 게 다예요”라며 무심한듯 웃어넘겼다.

성복화 부회장이 직접 쓴 상량문.

핀율의 목재 테이블과 이배의 회화 작품이 어우러진 다이닝 공간.

오색실로 엮어낸 노리개 세 점과 한쪽에 놓인 조명이 공간에 섬세함을 더한다.

성복화 부회장과 광주요의 F&B 사업을 맡고 있는 조윤경 대표.
현재 수경재는 VIP와 그룹 행사를 중심으로 운영되며 광주요, 화요, 비채나, 아라리등 그룹의 철학과 역사를 하나로경험 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앞으로는 한식 체험, 쿠킹 클래스 같은 걸 통해 더 많은 분들이 한국의 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조윤경 대표가 말했다. 이 흐름은 수경재 1층의 한식 디저트 브랜드 아라리로도 이어진다. 가온과 비채나로 다져온 한식의 고급화를 이제 디저트로 확장하는 시도였다. 문을 연 지 1개월도 안 되었지만, 가파른 언덕 끝에 자리한 덕분에 북촌을 찾은 이들이 전통 디저트를 맛보며 경치를 즐기기 더없이 좋은 명소가 되었다. 결국 수경재는 리브랜딩으로 다시 정의된 광주요의 정신, 그리고 그릇과 음식, 술로 이어온 그룹의 철학과 앞으로 이어질 미래를 비추는 또 하나의 집이다.

다양한 형태와 꽃 문양이 새겨진 분청 그릇들이 그릇장과 서랍 안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천연석 세면대와 나무 창틀, 격자무늬 창이 어우러진 욕실. 자연의 빛과 바람이 고요히 스민다.

거울, 벽 수납 등 카페 곳곳에 놓인 금속 오브제는 윤여동 작가의 작품.

지하 1층은 광주요 쇼룸, 1층은 한식 디저트 아라리, 그리고 그 위에 수경재가 자리한다.

한옥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내는 미니멀한 바가 인상적이다.

톡 하고 터지는 맛이 매력적인 아라리의 시그니처 음료와 모나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