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하면 떠오르는, 밥 위에 생선이 올려진 스시가 스시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스시에 관한 깊고 흥미로운 이야기.

니기리 스시
흔히 스시(寿司) 하면 떠올리는 손으로 쥐어 만드는 스시는 ‘니기리 스시(握り寿司)’라 하여 도쿄 등지에서 시작된 초밥이다. 하지만 니기리 스시는 20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초밥이고 오사카의 ‘오시 스시(おし寿司)’는 1000년 역사를 가진 ‘하코 스시’이다. 일본어로 ‘상자’를 뜻하는 하코 스시는 상자 안에 밥을 넣고 그 위에 생선을 얹은 후 식초 등을 뿌리고 뚜껑을 눌러 압축해서 발효시킨 것이다. 스시는 적어도 8세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갓 잡은 생선을 저장하는 방법에서부터 출발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금방 상하기 쉬운 생선을 먹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하다가 만들게 됐다. 일본에서는 깨끗한 날 (生) 생선을 밥과 함께 소금이 깔린 판위에 놓고 그 위에 무거운 돌을 올리고, 몇 주 후에 보면 밥에 의해 발효된 생선은 먹기에 알맞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문헌은 생선과 밥을 나무통 안에 같이 넣는 방법을 썼다고도 한다. 밥이 발효될 때 유산균이 나오며 이 유산균이 생선을 보존시켰다고 한다. 스시에는 두가지 스타일이 있다. 간사이(関西) 스타일(일명 죠호식 ジョホ式)로 오사카의 간사이 지방에서 발전하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도쿄에서 발전한 에도 스타일(에도 마에 식 江戸前式)이다. 16세기까지는 간사이 지방의 눌러 만드는 오시 스시가 주류였으나 메이지유신 이후 지금의 도쿄가 개발되면서 만드는 데 오래 걸리는 것이 싫어 빨리 만들다 보니 크기는 작아지고 손으로 쥐어 만드는 ‘쥠 초밥’ 즉 니기리 스시가 크게 발달했다. 도쿄 앞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생선을 사용하므로 에도 마에 스시라고도 한다. 적어도 한 달에서 길게는 일 년까지 삭기를 기다렸다. 스시를 순식간에 먹을 수 있게 만든 요리 방식은 획기적인 것이었으며 성질 급한 에도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오시 스시
이렇게 만들어진 스시는 아이러니하게 두 차례의 큰 재난을 거치며 일본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첫 번째는 간토(관동 関東) 대지진인데, 그때 도쿄에 몰려 있던 스시 요리사들이 전국으로 흩어지면서 많은 일본 사람들이 스시를 먹게 되었다. 두 번째는 2차 세계대전이다. 종전 후 일본에 진주한 연합군 사령부가 식량공급을 통제하기 위해 긴급조치령을 시행하여 식당들이 정상영업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스시집에만 손님의 쌀 1홉과 초밥 10개의 물물교환을 허용하였다. 이를 계기로 초밥은 본격적인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된다. 그 이후 냉동, 냉장 기술의 발달은 참치와 다양한 어패류의 사용을 가능하게 하여 초밥은 지금의 화려한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간사이 지방은 메이지유신 이전 일본의 중심지였던 만큼 다양한 스시 문화가 꽃피었다.

지라시 스시
이 가운데 ‘지라시 스시(ちらし寿司)’도 스시의 원형 중 하나다. 흩뿌린다는 의미의 지라시는 밥 위에 생선 조각과 야채 등을 흩뿌리듯 올려놓는다. 색깔을 조화롭게 하거나 재료를 다양하게 올려놓음으로써 모양을 내는 등 보기만 해도 입맛을 당기게 한다. 하코 스시 중에 가장 유명한 ‘밧테라 스시(バッテラ寿司)’는 나무틀에 샤리(シャリ, 스시용 밥)와 초절임 고등어를 채워 넣고 꾹꾹 눌러 모양을 잡아 만든다. 초절임한 고등어에 단단히 모양 잡힌 샤리가 촘촘히 채워져 있고 위에는 백다시마가 고등어를 감싸고 있다. 일본의 밥은 우리나라보다 간이 센 편. 거기에 초절임 고등어가 올라가는 밧테라는 간이 무척 세게 느껴질 수도 있다. 밥 양 또한 니기리 스시보다 2배는 많고 비릿한 듯하면서도 입맛 당기는 풍미가 매력적이다. 지금은 오시 스시의 본고장, 오사카에서조차 일반 스시집이나 레스토랑에서 니기리 스시를 판매할 정도로 스시의 대명사가 되었다. 또 오시 스시는 니기리 스시보다 훨씬 높은 기술을 요하는 이유로 고급 일식 레스토랑에서 솜씨가 좋은 스시 장인이 만들어주는 오마카세(おまかせ)에서 한두 가지 선보일 정도로 그 입지가 좁아졌지만 아직도 스시 마니아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상온에서 오시 스시는 보존이 쉽고 형태가 잘 유지될 뿐 아니라 많은 양의 밥을 꾹 눌러 만들기 때문에 조금만 먹어도 쉽게 포만감을 느낄 수 있어 테이크아웃 메뉴나 피크닉 도시락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