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에 담긴 역사

사진 한 장에 담긴 역사

사진 한 장에 담긴 역사

역사적 헤리티지의 한가운데 서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포착해내는
프랑스 사진가, 기욤 드 로비에와의 대담.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대연회장, 프록터 홀.

모자이크 프레스코화가 돋보이는 독일 루트비히-막시밀리안대학의 강당, 아울라 Aula.

사진가 기욤 드 로비에.

세계적인 건축물과 역사적인 공간을 포착해왔는데, 자신을 어떤 사진가라고 정의 내리고 싶은가? 나는 라이프스타일 사진가라고 생각한다. 내 일은 감지하고 직관하며, 이미지에서 그 사람의 본질과 개별성을 발견해내는 일이다. 누군가의 개인적인 세계, 혹은 세계의 거대한 유산 속으로 들어가 고유함과 특이성을 담아내고, 유행이나 시대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는 예상하지 못한 디테일 속에서 깊은 개성이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라이프스타일 사진가로서 느끼는 일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속에서 각기 다른 문화가 얼마나 다양한 해법을 만들어내는지를 보는 것이 흥미롭다. 건물에 대한 예시를 들자면, 사용한 재료나 시대적 배경, 문화에 따라 원석, 점토, 목재, 시멘트, 혹은 종이박스까지도 전혀 다른 해답으로 이어진다. 일상의 초월을 향한 욕망은 종교적인 공간에서도 드러난다. 교회, 사원, 회당 등 모든 예배 공간은 인간이 자아를 넘어서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의도는 같지만, 건축과 빛의 해석 방식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이 비교는 더욱 매혹적이다.
당신 사진은 현장에 직접 가본 사람이든 가보지 못한 사람이든, 대중적인 시선으로는 보지 못한 장면을 포착해내던데. 베르됭에 있는 작은 수도원에서 진행한 작업이 있었다. 이 수도원은 제1차 세계대전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수녀들이 거위털 이불 만드는 일을 하는데, 그 작업 과정을 모두 촬영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다락에서 작업하던 수녀들이 나를 지켜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하는 일은 참 멋져요. 우리가 더이상 보지 못할 것들을 다시 보게 해주니까요.” 사진가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했다.
공간은 멈춘 듯해 보이지만 그 안의 시간은 계속 흐르곤 한다. 그 기다림의 끝, 당신이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언제인가? 예기치 않은 햇살이 사물이나 벽, 반사면에 닿는 순간, 그 안에서 감정이나 빛의 기운이 생긴다. 그 순간을 포착하고, 이후 글을 통해 하나의 내러티브와 이야기를 구성해나가야한다. 그래서 사진을 촬영할 때는 늘 기다림이 따른다.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프레이밍과 빛이다. 그 둘 사이에서 항상 균형을 맞춰야 한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이고, 빛과 구도가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순간 바로 그때 셔터를 누른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 제약도 있다. 시간은 흐르고, 주어진 시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제약이 따를 때면 현실과 어떻게 타협하는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촬영하고 싶었지만 관광객 때문에 촬영이 거의 불가능한 때가 있었다. 몇 개월에 걸쳐 바티칸 측과 협상한 끝에, 교황이 야외 광장에서 집전을 하는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로 성당 내부가 비워지는 단 두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오전 9시 1분, 숨겨진 옆문을 통해 성당에 들어가 정확히 두 시간 동안 사진을 찍었다. 머릿속은 극도로 집중하고 있었고, 빛의 이동과 태양의 각도, 시간의 흐름까지 모두 계산한 상태에서 프레임, 촬영, 이동의 리듬을 계속 이어간 기억이 난다.
당신을 계속 탐험하도록 이끄는 원동력은?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사건은 대부분 우울하다. 재난, 범죄, 파괴 등 힘든 이야기만 다루기에 인간성에 대한 회의가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세계 곳곳의 아름다움과 문화적 보물을 찾아다니다 보면, 아주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가 꿈꾸던 것을 실제로 구현해냈다는 사실을 실감할 때만큼 벅차 오르는 순간은 없다. 그럴 때면 인간이 가진 가능성과 창의성, 그 깊이를 다시금 믿게 된다. 절망을 위로해주는 순간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제되지 않은 수많은 사진이 쏟아지는 오늘날의 시대에서, 사진가로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인터넷을 통해 수십억 장의 이미지가 쏟아진다. 이런 시대에 사진가로 산다는 것은 도전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나는 하나의 이야기와 서사를 만들고자 한다. 단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는 이야기 말이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의 나열이 아니다. 하나 하나의 이미지가 다음 이미지를 향한 생각과 흐름으로 이어지며, 점차 독자가 의미에 도달하도록 이끄는 서사적 구조다.
INSTAGRAM @guillaumedelaubier

수개월에 걸친 바티칸 측과의 협상 끝에 촬영할 수 있었던 성 베드로 대성당.

이탈리아 볼로냐 아르키진나지오 궁전의 해부학 극장.

중후한 목재 패널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캐나다 맥길대학 내부.

포르투갈 코임브라대학의 과학 박물관은 섬세하게 조각된 목재 캐비닛과 나선형 계단을 갖췄다.

폴란드 야기엘론스키대학의 콜리지움 마이우스.

독일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의 로코코 홀.

반원형 계단식 구조를 가진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해부극장.

스웨덴 학문 및 정치사의 핵심적인 결정이 내려졌던 웁살라대학의 이사회 회의실.

화려한 천장화가 특징인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옛 강당.

대형 프레스코 벽화가 있는 프랑스 소르본대학의 그랜드 앰피.

CREDIT

에디터

TAGS
Layers of Life

Layers of Life

Layers of Life

전통 한옥의 숨결 위에 차곡차곡 얹힌
감각과 시간. 사람, 자연, 시간의
관계 속에서 살아 숨쉬는 공간,
레이어 한옥의 이야기.

레이어 한옥 하우스 중앙에는 허명욱 작가가 옻칠 기법으로 완성한 아톰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다.

레이어의 송현빈 부사장.

북촌의 조용한 골목 어귀에 전통과 현대, 젊음과 연륜이 층층이 쌓인 공간 이 문을 열었다. 이름처럼 여러 겹의 시간과 감각이 교차하는 ‘레이어 한옥’은 전통 한옥의 뼈대를 보존한 채,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을 향한 철학을 입은 장소다. 여백의 미를 살린 곳이자 공간 자체가 이야기가 되는 곳에서 레이어의 송현빈 부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레이어 한옥을 기획하며 처음 머릿속에 그린 그림이 궁금합니다. 어떤 공간을 만들려고 하셨나요? 레이어는 사람, 자연, 시간의 관계 속에서 지속 가능한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공간 브랜드입니다. 레이어 청담 이후 다음 프로젝트를 고민하던 중,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가 한데 모인 북촌에서 모두의 경험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레이어 한옥 아뜰리에’는 전시와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젊은 작가들과 소통의 창구로 사용한다면, ‘레이어 한옥 하우스’는 스테이로 운영하며 정말 살아보고 싶은, 누군가에게 쓰임이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기 원했어요.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 이 공간에서 방문객들이 감각과 감정을 쌓아갈수록, 우리도 그들과 함께 변해가는 거죠.
기존의 한옥을 보수하며 특별히 신경을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한옥 용어로 병치라고 하죠. 건물과 자연이 나란히 있으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마루에 앉아 있을 때 들리는 자연 소리와 바깥 풍경이 잘 어우러질 수 있게끔 의도적으로 내부엔 그림을 많이 걸지 않았습니다. 지붕과 기둥 등 기존 한옥의 전반적인 프레임은 그대로 유지했어요. 십장생, 태양, 구름산, 소나무, 거북이 등의 그림이 그려진 대문의 벽화도 보수만 했을 뿐, 기존에 있던 작품이었어요. 새로 작업한 부분은 조경과 미장입니다. 북한산의 형태에서 모티프를 얻어 입구의 조경을 꾸미고, 다이닝 공간의 미장은 김진욱 명인이 작업했어요. 화학 제품이 안 들어가고, 쌀로 풀을 쑤고 산청백토로 손수 일일이 디자인하셨어요. 숨을 쉬는 마감재인 거죠.

북유럽 디자이너 폴 케홀름, 르 코르뷔지에 등의 가구로 장식한 레이어 한옥 하우스의 내부.

허명욱 작가의 오브제가 놓인 다이닝 공간.

레이어 한옥 아뜰리에 공간과 어우러진 고가구가 눈에 띈다.

다도 공간의 테이블, 벽면의 작품 또한 허명욱 작가의 작품.

작은 디테일까지 신경 쓴 아뜰리에 모습.

아뜰리에의 경우, 현대적인 공간이 아닌 한옥이라는 공간에서 전시를 전개 한다는 점이 신선합니다. 일반적으로 갤러리라 하면 진입 장벽이 있는 어려운 공간을 떠올리는데, 우리는 그 문턱을 낮추고 방문객들이 편히 들렀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요. 그중에서도 아뜰리에는 젊은 작가들과의 협업을 진행하는 곳이에요. 이제 시작하는 작가들의 유연한 사고를 받으면 우리도 같이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조금씩 전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김예지, 최상준 작가의 테이블웨어 브랜드 물터의 전시를 진행 중이에요.
덴마크 디자이너의 가구들과 허명욱 작가의 작품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뜰리에 곳곳엔 고가구도 배치되어 있고요. 이 시대를 살면서 세대나 동서양의 차이를 구분 짓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만들어갈 공간엔 이런 특징들이 어우러지기 바랐습니다. 추구하는 지향점만 같다면 동양이든 서양이든, 연륜 있는 작가든 젊은 작가든 가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고가구는 어떤 컬렉터로부터 기증받은 물건인데, 마침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우리 공간과 잘 맞아떨어져 아뜰리에에 배치해뒀어요.
허명욱 작가와의 협업을 진행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네요. 허명욱 작가의 작품에 담긴 철학은 우리와 많이 닮았어요. 허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수행하듯 켜켜이 진행되는데, 레이어 한옥도 이름처럼 여러 겹의 문화가 쌓이는 것을 추구하는 공간이죠. 작가가 자연 속에서 한 해 동안 칠하고 말리기를 반복하며 완성한 작품은 다도실의 중앙을 장식하고 있어요. 눈과 비를 맞고, 나뭇잎이 쌓이기도 한 작품의 윗면과 색채를 층층이 쌓아올린 아랫면이 중앙에서 만나는 것처럼, 레이어 한옥도 그런 공간이 되기 바랐습니다.
입구와 건물 중앙에 놓인 아톰 모형과 공간을 채운 가구부터 작은 공예품까지, 모두 허명욱 작가의 작업이라 들었습니다. 아톰 모형은 허 작가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상징적으로 만들었어요. 한옥 중앙을 꾸민 아톰 모형의 눈은 자개로, 몸통은 옻칠로 작업한 작품이죠. 다도 공간의 테이블은 금속을 손으로 두드려 탄생한 작업물입니다. 위에서 보면 울퉁불퉁한 텍스처가 돋보이는데, 그 위에 옻칠을 입혔어요. 옻칠은 장소의 온도와 습도, 그리고 사용하는 사람의 흔적에 따라서 색이 조금씩 바뀌어요. 같은 칠을 했는데 어떤 건 와인 빛이 돌고, 어떤 건 좀 더 검은 빛이 돌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레이어 한옥은 사용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 될 거예요.
말씀을 듣다 보니 레이어 한옥은 결국 방문객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꽉 찬 공간보다는 여백이 있는 공간을 지향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조금씩 비워진 공간에 사람의 온기와 흔적이 자연스레 얹혔으면 합니다. 이 한옥이 100년 넘게 이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시대에 맞춰 변화하면서도 따뜻한 생활감을 담은, 오래 머무는 공간이 되기 바랍니다.

레이어 한옥 아뜰리에에서는 물터의 감각적인 오브제를 조명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담장의 벽화는 한옥 복원 전부터 있던 작품.

조경과 어우러진 아뜰리에 전경.

여백의 미를 강조한 레이어 한옥 아뜰리에 내부.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이예린

TAGS
London Craft Week 2025

London Craft Week 2025

London Craft Week 2025

올해로 11회를 맞은 런던 크래프트 위크는 지난 10년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단단해져서 돌아왔다.
세계 최대 공예 비엔날레 호모 파베르가 메인 스폰서로 참여하며,
규모와 수준이 한 단계 도약한 현장을 직접 다녀왔다.

애쉬 & 플럼 Ash & Plumb이 뉴 크래프트메이커 The New Craftmaker를 위해 독점 제작한 패티네이트 오크 용기. © Ash & Plumb × The New Craftmaker

공예와 디자인, 예술 애호가들을 위한 축제인 런던 크래프트 위크 London Craft Week(이하 LCW)가 지난 5월 12일부터 18일까지 열렸다. 런던 전역에서 400여 개의 전시, 마스터클래스, 시연이 펼쳐졌으며, 세계 각국에서 온 1000여명의 장인과 디자이너가 참가해 런던이 유럽 공예의 중심지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V&A박물관,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웨스트민스터 사원 등 주요 랜드마크는 물론 평소에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퓨터러스 홀, 아이언몽거스 홀 같은 전통 수공예 장인의 길드 공간도 개방됐다. 또한 행사 기간에 맞춰 소실위기에 처한 영국의 전통 기술을 등재한 ‘헤리티지 레드 리스트 Heritage Red List’를 발표하면서, 디자인 축제를 넘어 공예의 가치를 환기시키는 의미 있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두 번째로 개최된 시크릿 세라믹스. 유명 작가와 신진 작가가 익명으로 작품을 출품해 구매 후에만 작가의 이름을 알 수 있다.

Secret Ceramics
유서 깊은 영국 미술 경매 회사 크리스티 Christie’s에서 열린 ‘시크릿 세라믹스’은 유명 및 신진 도예가 100명의 작품을 익명으로 출품해 동일한 가격에 판매하는 흥미로운 기획이다. 세계적인 작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에드먼드 드 왈 Edmund de Waal, 2024 로에베 재단 공예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 앤 반 후이 Ann Van Hoey,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일본 작가 히토미 호소노 Hitomi Hosono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알아보는 안목만 있다면,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판매 수익금은 어려운 환경에 있는 영국 청소년들이 도자기 공예를 통해 삶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자선단체 파이어드업4 FiredUp4에 기부된다. 또한 평소 접하기 힘든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도 LCW 기간에 대중에게 공개되며, 온라인 옥션도 함께 진행된다.

잼에서 도자기 화병 작업을 선보인 이사투 하이드 작가. © Dan Weill Photography

하우에서 공개한 앤티크 가구와 새로운 트림블 프린트.

상쾌한 그린 컬러가 돋보이는 오우커의 마레아 조명.

Pimlico Road
첼시와 빅토리아 사이에 위치한 핌리코 로드는 런던에서 가장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앤티크, 디자인 숍이 모여 있는 거리다. 하이엔드 매장뿐 아니라 영국 수공예 전통과 현대 디자인이 공존하는 ‘Made in Britain’ 정신을 보여주는 곳이다. 영국 빈티지의 상징과 같은 하우 Howe는 LCW 기간에 새로운 ‘트림블 프린트’를 공개했고, 시빌 콜팩스 & 존 파울러 Sibyl Colefax & John Fowler는 고급 원목 마카사르 에보니로 제작하는 ‘Cockpen’ 테이블의 제작 과정을 오픈 스튜디오 형식으로 선보였다. 잼 Jamb은 도예가 이사투 하이드 Isatu Hyde의 18세기 도자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시리즈를, 오우커 Ochre는 무라노 전통 유리공예로 제작한 새로운 조명 컬렉션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까르띠에 등 럭셔리 브랜드들이 보인 슬론 스트리트에도 공예 행사가 펼쳐졌다. © Hufton+Crow

셀레리아 핸드 스티치를 시연한 펜디.

카푸신 백 제작 과정을 선보인 루이 비통.

Sloane Street
럭셔리 브랜드가 모인 슬론 스트리트에서는 루이 비통, 구찌, 펜디, 보테가 베네타, 페라가모 등 전통과 장인정신을 중요시하는 브랜드들이 각자의 특별한 공예 기술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구찌는 1950년대부터 이어온 ‘풀라르’를 중심으로 실크 공예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토크를 열었고, 펜디는 이탈리아 장인이 ‘셀레리아’ 핸드스티치를 직접 시연했다. 루이 비통은 방돔 아틀리에의 장인이 참여해 250단계에 달하는 ‘카푸신’ 백의 제작 과정을 현장에서 선보였다. 브랜드 철학과 공예의 가치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데이비드 호란의 작품을 선보인 베통 브루트.

세바스찬 콕스 스튜디오와 낫 막스가 협업한 타이드 컬렉션.

카탈리나 스윈번의 전시를 선보인 몰테니앤씨. 종이를 매체로 역사적 문화와 상징적 텍스트를 조형적으로 풀어냈다.

에브 & 플로가 선보인 카티 테이블.

우드 베니어 조각을 활용한 브로디 네일의 우드스트로크 컬렉션.

No.9 Cork Street
프리즈 런던의 상설 갤러리이자 전 세계 갤러리들의 전시 플랫폼인 No.9 코르크 스트리트도 올해 처음으로 LCW에 참여했다. 호주 출신 디자이너 브로디 네일 Brodie Neill은 산업 폐기물 베니어 조각을 활용한 ‘우드스트로크 Woodstroke’ 컬렉션을 선보였으며, 추상표현주의에서 영감을 받아 목재를 회화적이고 유기적인 형태로 풀어냈다. 디자인 갤러리 베통 브루트 Béton Brut는 <Forge to Fold: Hands at Work from Iron to Paper> 전시에서 데이비드 호란 David Horan의 종이 가구 컬렉션을 소개했다. 프랑스의 데쿠파주 기법과 일본 민예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키슈 와시 등 일본 전통 종이를 활용해 ‘비건 벨럼’ 시리즈와 ‘드래곤 스킨’ 시리즈를 제작했다. 유리와 금속의 이질적 조합을 통해 자연의 흐름을 표현한 ‘에브 & 플로 Ebb & Flow’는 무라노의 얄리 글라스 Yali Glass와 일본 키타웍스 Kitaworks가 협업한 ‘카티 Kati’ 테이블을 선보였다. 스위스 엥가딘의 빙하와 베네치아 석호에서 영감받은 유기적 디자인이 특징이다. 영국 디자인계의 권위 있는 칭호인 RDI에 선정된 세바스찬 콕스 Sebastian Cox 스튜디오는 마블링 아티스트 낫막스 Nat Maks와 함께 ‘TIDE’ 컬렉션을 선보였다. 영국산 단풍나무 테이블에 일몰과 바다에서 영감을 받은 색조의 마블링이 더해졌다.

이천 도자기 명장 한도현의 청자.

편예린 작가의 ‘Poem for Ephemeral Moments’.

 

유리와 옻칠의 조화가 독창적인 이규홍 작가. © Charles Burnand Gallery

V&A 뮤지엄에서 말총 엮기 기술을 시연한 정다혜 작가.

김대성 장인이 만든 합죽선. © Korea Heritage Agency

찰스 버나드 갤러리에서 선보인 김희찬의 작품.

Korean Craft in LCW
이번 LCW에서는 한국의 활약이 돋보였다. 처음 참가한 국가유산청(국가유산진흥원)은 ‘Object of Beautification: 한국의 장신구’를 주제로,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와 현대 디자이너가 협업한 공예품을 K.Craft라는 브랜드로 선보였다. 조각장, 입사장, 금박장, 누비장 등 전통 기술과 실용적 디자인이 만나는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 전승 공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한 컬렉션 Han Collection에서는 이천시가 선정한 6개 공방의 작품 15점이 전시되었다. 뉴욕 MOMA 최초의 한국 작가 김대성, 2024 대한민국분청공모전 은상 수상자 나용환, 도자기 명장 한도현, 도자와 회화를 결합한 김현종, 백자로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이우진, 분청사기의 정수를 보여주는 김상기 등이 참여했다. 찰스 버나드 갤러리 Charles Burnand Gallery에서는 목재로 유기적 조형을 만드는 김희찬, 금속 세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김계옥의 작품이 소개됐다. 두 작가 모두 로에베 재단 공예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 출신이다. 가장 주목받은 전시는 더 레이버리 The Lavery에서 열린 솔루나 파인 크래프트의 <Landscape of Materials: 재료의 풍경>. 인터내셔널 파빌리온 중 한국관으로 참여해 현대 공예의 조형성과 재료 탐구를 깊이 있게 보여주며, LCW 관계자와 많은 관람객의 호평을 받았다. 사라져가는 말총 공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정다혜, 금속 위에 옻칠을 입힌 천우선, 자연석 질감을 도자로 표현한 편예린, 빛을 끌어들이는 유리 공예의 이규홍, 개인의 서사를 담은 최기용까지 총 5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재료와 감각으로 한국 공예의 현재를 보여주었다.

CREDIT

에디터

WRITER

장수연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