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기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사이 서 있는 대담한 건축의 세계.

조경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의 설계에 따라 다양한 식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아파트 발코니.

조각을 연상케 하는 비정형 석재 구조로 완성된 밸리의 독창적인 외관.

건물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 통로. © Ossip van Duivenbode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공 테라스로 이어지는 동선. © Ossip van Duivenbode

상공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마치 초록빛 계곡을 연상시킨다. © Ossip van Duivenbode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인상을 주는 입면 디자인. © Ossip van Duivenbode
건물 사이를 굽이치는 초록 계곡, 밸리
네덜란드의 건축 그룹 MVRDV가 암스테르담 자우다스 Zuidas에 선보인 밸리 Valley. 자연과 도시, 구조와 유기체의 경계를 허문 대담한 실루엣은 공개와 동시에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그 해 엠포리스 Emporis에서 ‘세계 최고 신축 마천루’로 선정되며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밸리는 상업 시설, 오피스, 주거 기능이 결합한 주상복합 건축물로서, 하나의 매스로 묶인 저층부 위로 67m, 81m, 100m 높이의 세 개 타워가 불규칙한 계단식 형태로 솟아오른다. 마치 거대한 암석 덩어리를 층층이 쌓아올린 듯한 독창적인 외형은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다양한 형태와 패턴을 도출하는 파라메트릭 Parametric 기법의 결과물이다. 외관뿐 아니라 내부 역시 석재로 마감된 바닥, 벽, 천장을 통해 일관된 조형미를 구현했다. IP 기반 빌딩 자동화 시스템과 실시간 에너지 모니터링 센서 등을 통해 지속 가능한 저탄소 건축의 방향을 제시한다. 4층과 5층 사이에 조성된 공공 테라스는 외부 계단을 통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건물 전체는 영국의 친환경 건축 인증 제도인 BREEAM 인증을 획득하고, 에너지 성능 계수 –0.30을 달성하는 등 지속 가능한 고성능 건축으로서 기준도 만족시킨다. 건물 외곽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테라스와 발코니, 그리고 5층에 자리한 녹색 정원은 세계적인 조경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 Piet Oudolf의 섬세한 손길로 완성되었다. 1만3500여 그루의 식물과 나무가 빼곡히 심겨 있어 회색 도시 한복판에 자리한 푸른 오아시스이자 벌, 새, 곤충 등 도시 생태계가 다시 숨 쉴 수 있는 새로운 서식처가 되어준다.

9층 모던 타워 위에 전통 저택을 얹은 메종 헬러의 상징적 외관. 필립 스탁의 초현실적 구상이 도심에 기묘한 풍경을 만든다.

대리석 패널과 노출 콘크리트, 여성스러운 조명이 어우러진 객실 인테리어.

미니멀한 구조 속 아라 스탁의 스테인드글라스 디테일이 만프레드 헬러의 상상 속 세계로 이끈다.
하늘 위로 떠오른 저택, 메종 헬러
프랑스 메츠의 앙피테아트르 지구 한가운데, 9층 높이의 현대적 건물 위 전통 로렌 양식의 저택이 얹혀 있다. 필립 스탁이 설계한 메종 헬러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장면을 실현하며, ‘하늘로 떠오른 집’이라는 초현실적 상상을 건축으로 옮겨왔다. 이 호텔은 스탁이 직접 구상한 이야기 를 바탕으로 한다. 이야기 속 주인공 만프레드 헬러의 상상력과 사랑, 그리고 그의 집이 공중으로 부양하는 환상을 건물 전체에 녹여냈다. 외관은 현대적 모놀리스를 토대로 해 19세기 로렌 스타일의 저택을 얹은 형태로, 멀리서 바라보면 도시의 스카이라인 위에 한 장의 초현실주의 회화가 떠 있는 듯하다. 104개 객실과 스위트는 대리석 패널, 부드러운 카펫, 천연 가죽 등 ‘기능적 우아함’을 강조한 미니멀한 감각으로 꾸며졌다. 공간 곳곳에는 고대 동전, 시적인 문구, 비밀스러운 알파벳 같은 디테일이 숨겨져 있어, 투숙객이 만프레드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호텔의 중심인 브라세리 ‘라 퀴진 드 로즈’는 만프레드의 사랑, 로즈를 향한 헌사를 담았다. 부드러운 핑크 톤과 짙은 목재 가구가 어우러진 공간에서, 현지 식재료로 만든 창의적인 메뉴를 즐길 수 있다. 최상층에 자리한 ‘라 메종 드 만프레드’는 가족의 집처럼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도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다이닝 공간이다. 이곳을 수놓은 아라 스탁(필립스탁의 딸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을 받아 다채로운 색채를 도시 위로 흩뿌린다. 전통과 현대, 현실과 환상을 가로지르는 메종 헬러. 이곳에서 머무는 시간마저 초현실적인 상상의 공간에 들어선 듯하다.

홍해 위에 초승달 모양으로 펼쳐진 셰바라 리조트의 전경. © Red Sea Global 2025

유리처럼 반짝이는 외관과 전용 풀장이 인상적이다. © Red Sea Global 2025

바다 위에 떠 있는 구체형 셰바라 리조트. © Red Sea Global 2025

전용 풀과 바다가 이어지는 빌라의 거실과 유기적인 곡선 벽면이 인상적인 욕실. © Red Sea Global 2025

바다에 착륙한 우주선을 연상케 한다. © Red Sea Global 2025
홍해 위에 뜬 진주, 셰바라 리조트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홍해 한가운데, 유리처럼 반짝이는 은빛 구체들이 초승달 모양으로 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미래 관광을 위해 야심차게 추진하는 ‘비전 2030 프로젝트’ 중 하나인 셰바라 리조트는 두바이를 기반으로 한 건축 스튜디오 킬라 디자인 Killa Design이 설계했다. 이곳은 ‘에코투어리즘의 목적지’라는 말 그대로, 여행이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자연을 보존하고 되살리는 경험이 되도록 설계됐다. 73개의 독립 빌라는 바다 위로 살짝 띄운 듯 설치되어, 발 아래로 산호초가 살아 숨 쉬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모든 건물은 스테인리스 스틸 외피로 둘러싸여 있어 하늘과 바다를 그대로 비추고, 보는 각도에 따라 색과 빛이 달라진다. 마치 건물이 사라지고 풍경만 남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시공 과정마저 자연을 위한 배려였다. 섬에서 공사를 벌이지 않고 모든 빌라를 해상에서 완성한 뒤 옮겨 설치해서 산호와 모래 언덕, 야생 서식지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았다. 내부에 들어서면 곡선이 부드럽게 흐르는 벽과 창 너머의 바다가 맞닿아, ‘실내’와 ‘실외’의 경계가 무의미해진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셰바라는 태양광 발전소, 해수를 담수로 바꾸는 정수 시설, 100% 전기 운송수단을 갖춘 자급형 시스템으로 운영된다는 사실. 투숙객은 바다거북이 알을 낳는 모래사장을 지키고, 산호를 심고 해안 생태계의 핵심인 맹그로브 숲을 더 넓히는 활동에도 동참할 수 있다. 밤이 되면 바다 위 구체들이 별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고, 낮에는 수평선과 구분되지 않는 환상의 건축물이 되는 셰바라 리조트. 이곳은 바다 위에서 꿈꾸는 미래를 현실로 만든 한 편의 영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