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그린 바다

흙으로 그린 바다

흙으로 그린 바다

보드라운 모래를 굳혀 내면의 바다를 완성한 오다교 작가의 캔버스. 자연 소재로 만든 물결은 우아하게 굽이치면서도 힘이 느껴진다.

커다란 캔버스가 세워져 있는 작업실 전경. 오는 4월에 선보일 단체전을 준비 중이다.

거친 질감을 가졌지만 유연한 움직임이 그려진다. 투명한 모래 위로 밀려오는 고요한 물결을 그린 <스틸 Still>, 이와 대비되어 역동적인 파도의 움직임을 담아낸 <워크 온 워터 Walk on Water>. 때로는 짙은 이끼 향이 날 것 같은 숲의 잔상을 표현한 <포레스트 Forest> 등 자연 재료를 사용해 평면 작업을 선보이는 오다교 작가는 자연이 주는 에너지에 주목한다. “식물을 키우며 흙을 자주 만지곤 했는데, 무궁무진한 자연을 만들어가는 흙의 힘이 신비로웠어요. 어떤 생명이 탄생하는 자연의 재료잖아요. 그래서 이 흙으로 그림을 그리면 또 다른 생명이 탄생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파리 유학 시절, 작가는 생명과 예술의 근원에 대해 탐구하며 흙의 물질 개념을 다양한 매체로 표현했다. 설치 작품, 영상, 사진 등 여러 번의 과정 끝에 그는 흙에 아교를 섞어 페인팅으로 시도했다. 오랜 과거의 고분 벽화처럼 캔버스만의 생명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바다의 물결을 그린 작품이 걸린 작업실.

“흙과 모래에 아교를 배합해 마대에 뿌리거나 칠하는 방식으로 작업해요. 본드처럼 단단하게 고정되지 않고 흘러내리는데 자연스러운 느낌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캔버스를 눕혀서 작업합니다.” 작업 과정을 듣고 보니 커다란 캔버스가 뉘여 있는 작업실이 이해되었다. 그는 오는 4월에 성남큐브미술관에서 선보일 단체전을 준비 중이다. 기후 위기를 마주한 예술가의 시선을 조망하는 전시로, 죽어가는 자연에 대해 표현하고자 했다. “환경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어요. 작업 과정에서도 내 작품이 지구에 누가 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고요. 최대한 자연 소재에 집중하거나, 본드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도 그러한 고민 중 하나죠.”

작업실 벽면에 가지런히 정돈된 작업 도구들.

환경에 대한 고민은 멀게 느껴지다가도 일상에서 문득 크게 와닿는다. 매 순간 빛이 달라지는 가로수나 산책할 때 느껴지는 포근한 바람이 때로는 가장 큰 위안을 주는 것처럼, 작가는 자연에 대한 감상을 소중히 하며 그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 특정 시기나 계절마다 느껴지는 인상을 꾸준히 포착하려는 이유다. “스케치로 구성한다기보다는 그리고 싶은 장면을 먼저 사진으로 포착해요. 그러고 나서 확대하거나 단순화하며 프레이밍하죠. 그 순간의 감상을 섬세히 바라보려 해요.”

그런 그가 가장 애정하는 작품은 ‘물’을 표현한 시리즈다. 작업실에 걸어놓은 작품들 역시 고요한 바다나 잎이 떠다니는 물웅덩이를 그린 것이다. 작년 말 서정아트 부산에 이어 지난 1월부터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에서 진행하고 있는 개인전 ‘Oh Dakyo: Undine’는 ‘물’을 주제로 작업한 작품을 모아 물이라는 자연 요소의 평온함을 그려냈다. 서양 연금술에 등장하는 물의 정령 운디네를 타이틀로 내세워 신비로움을 더한다.

자연 소재를 평면 작업으로 선보이는 오다교 작가.

“내 안에 언제나 바다가 있다고 느껴요. 물을 표현한 작품, 특히 바다 시리즈는 그런 나의 내면을 닮았다는 생각을 해요.” 바다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물은 만물의 근원처럼 느껴졌다. 물방울처럼 고정된 형태가 없던 부드러운 흙가루가 단단한 형태를 만들어가며 물결을 이뤄내는 작업은 그에겐 내면을 채워가는 과정이다. 작가는 단단히 굳힌 흙에 이어 또 다른 여정을 준비 중이다. “흙으로 이렇게 많이 작업할 줄은 몰랐어요.(웃음) 흙이라는 소재로 충분한 작업을 했으니 다른 소재도 구상해보고 있어요. 사실 처음에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빛이었어요. 이처럼 물이나 공기, 불 등 또 다른 자연 요소를 표현해보고 싶어요. 바람이나 안개도 흥미로울 것 같아요.”

 

SPECIAL GIFT

오다교 작가에게 증정한 끌레드뽀 보떼의 더 세럼은 피부 본연의 힘을 일깨워 생기 있고 매끄러운 피부를 완성시켜준다. 또한 피부에 고르게 퍼지고 빠르게 흡수되어 24시간 보습 효과를 유지시킨 후 피부의 길을 열어 다음 단계 제품의 흡수를 높여준다. 50mL, 3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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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주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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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IC OBJ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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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웨어 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브랜드를 파리에서 만났다.

에르메스의 뉴 테이블웨어 컬렉션

파리에서 진행된 ‘트레사주 에퀘스트르’ 컬렉션 전시 전경. © Maxime Verret

이번 컬렉션의 컨셉트는 ‘에르메스 트레사주 에퀘스트르 Hermès Tressages Equestres’. 에르메스의 기원이 된 마구 장식과 브레딩 Braiding 기법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새롭게 선보인 ‘할로 플레이트 Hollow Plate’ 10개를 포함해, 총 27개로 구성됐는데 면과 가죽 실이 서로 얽혀 있는 모티브는 에르메스 장인의 손길뿐만 아니라 말과 기수,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관계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번 전시는 테이블웨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베누아 피에르 에머리 Benoît Pierre Emery 지휘 아래 에르메스 스카프 디자인을 주로 맡아온 비르지니 자맹 Virginie Jamin이 디자인을 맡아 화제가 됐다. 정교하고 치밀한 선으로 작품에 볼륨감을 부여하는 그녀의 디자인은 생명력 넘치는 형태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INTERVIEW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베누아 피에르 에머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베누아 피에르 에머리. © Denis Boulze

트레사주 에퀘스트르 컬렉션은 마구 제작에 사용되는 ‘땋은 장식’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마다 색상과 디자인이 모두 다른 끈의 묘사가 흥미로웠다.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는가?

이번 컬렉션 디자인은 에르메스 하우스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작업이자, 에르메스를 구성하는 다양한 작업의 연결고리인 드로잉 Drawing에 대한 헌사라 할 수 있다. 특별한 효과를 가미하지 않은 선명하고 단순한 선들은 오브제에 생기를 불어넣고 특유의 아름다움을 발산시킨다. 예를 들면 때때로 말의 배 밑으로 묶여 드러나지 않는 스트랩의 아름다움 같은 것이다. 절제되고 섬세하면서도 매혹적인 드로잉은 디테일과 인내로 만들어진다. 땋은 실 Braids의 모듈 같은 유연한 구조는 볼륨감이 살아 있는 포슬린 소재 위에서 스토리텔링과 추상적 아이디어의 접점을 그래픽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 완벽하다.

파리에서 진행된 ‘트레사주 에퀘스트르’ 컬렉션 전시 전경. © Maxime Verret

이번 컬렉션은 비르지니 자맹과 함께한 협업으로 선보였다. 이번 작업을 통해 담아내고 싶었던 것은?

우리는 멋지고 유니크한 드로잉을 구사하는 비르지니 자맹과 협업하기를 오랫동안 원해왔다. 그녀는 전통과 모던함 사이에서 밸런스를 추구하며, 에르메스 고유의 스타일을 구현하는 능력이 있다.

에르메스 특유의 예민한 색채 감각이 돋보였다. 어떻게 탄생했는가?

컬러 또한 에르메스의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다. 컬러는 몇 가지 전제를 반영했다. 스트링 라인의 라이트 그레이 컬러는 연필을 떠오르게 하는데, 단순하지만 포슬린 소재와 가장 잘 어울린다. 테라코타는 대지를 연상시키며 컬렉션 전체에 리듬과 온기를 부여한다. 블루, 그린, 옐로의 활기찬 터치는 마치 문장의 구두점처럼, 신선함과 놀라움을 선사함과 동시에 시간이 지나도 제품의 멋스러움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바카라와 메종&오브제의 만남

리큐르와 바카라 바 웨어의 시그니처 디자인을 조화시킨 칵테일. © Laurine Paumard Photographe

바카라 잔들이 영상 퍼포먼스로 벽과 바닥을 장식하고 있다.

창립 260주년을 맞은 바카라는 오랜 역사와 명성에 걸맞게 올해 전시 규모를 대폭 확장해, 몰입형 전시 <연금술, 몰입형 경험 Alchemy, the Immersive Experience>를 선보였다. 전시장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품 바카라 아이코닉 컬렉션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은 매력적인 작품들이 그 자체로 존재감을 뿜어냈다. 마치 큐브를 연상하게 하는 전시 공간에서 펼쳐지는 영상 퍼포먼스는 로레인 Lorraine 공방에서 시작된 바카라의 모험과 여정, 장인정신을 차례로 소개한다. 파사드를 따라 공중 부양하는 총천연색의 바카라 잔을 보다 보면 시공간을 초월해 1764년 바카라가 탄생한 작업실로 타임슬립한 듯한 신비로운 착시 현상마저 일으킨다.

 

INTERVIEW
바카라 코리아 강준구 대표

메종&오브제에서 열린 바카라의 몰입형 전시 <연금술, 몰입형 경험>.

메종&오브제 기간에 선보인 <연금술, 몰입형 경험> 전시에 대해 설명해달라.

한 편의 시와 같이 바카라의 작업실로 떠나는 여정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영상을 통해 바카라 크리스털 공예의 마법 같은 전 과정을 공개함은 물론 특별한 몰입형 경험을 선사한다. 자연의 네 가지 요소인 흙, 공기, 불, 물을 유례없이 순수한 크리스털로 변화시킨 장인들의 놀라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시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10년 전 바카라에 빠져들게 된 때가 떠올랐다. 그 경험을 많은 이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할 수 있어서 기쁘다.

바카라 코리아의 수장으로서 창립 ‘260년’이라는 숫자를 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260년이라는 시간을 지내오면서 끊임 없이 새로운 기술과 함께 발전하면서도 고유의 가치를 잃지 않는 바카라와 이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이 소중한 가치를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끊임 없이 고민하면서 특별한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

바카라 코리아 강준구 대표.

메종&오브제 전시 작품을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다고 들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영상 퍼포먼스는 2월 중순부터 메종 바카라 서울에서 재연된다. 국내에서는 ‘바카라, 연금술사의 방’이라는 부제로 공간을 꾸밀 계획이다. 혹시라도 이번 메종&오브제에서 볼 기회를 놓쳤다면 꼭 방문해 관람하기 바란다.

바카라의 유산을 하나로 이어주는 철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60년에 걸쳐 이어진 바카라의 유산은 변함 없는 품질과 뛰어난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약속에서 비롯됐다. 프랑스 동부 작은 마을의 명칭인 ‘바카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프랑스식 축하와 삶의 기쁨을 가리키는 상징이 되었다. 우리는 이를 통해 고객에게 최고의 경험을 제공할 것이며,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바카라의 핵심 철학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다양한 협업을 통해 삶 속의 예술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바카라를 통한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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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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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부터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공간을 고치고 매만져온 인테리어 디자이너 신경옥. 그는 올해 칠순을 맞이해서 책 한 권을 냈다. 한동안 미뤄둔 ‘집’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싶어서.

신경옥작업실의 일하는 공간 전경.

패브릭 제품이나 소품을 제작하는 지하 작업실.

신경옥은 1세대 인테리어 디자이너라 불린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생겼을까? 리빙 매거진이 부흥기를 맞으며 스타일리스트의 활동이 늘어나고, 라이프스타일이 중요해지면서 인테리어가 일상이 된 지금. 그의 커리어는 그 흐름과 함께 흘러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첫 시작은 자신의 집을 꾸미는 일이었다. 직접 꾸민 신혼 집의 독특한 창문 디자인을 보고 연락한 기자 덕에 스타일리스트 일을 하게 되었다. 잡지에 실린 집을 계기로 남들의 공간을 꾸며주게 되었고, 좋아서 혼자 하던 일은 어느새 남을 위해 일하는 업이 되었다. 그렇게 신경옥은 40년 가까이 공간을 통해 일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지하층에서는 작업하기 편하도록 테이블 세 개를 붙여서 작업한대로 활용한다. 테이블과 조명 모두 신경옥작업실에서 제작한 것.

4층은 일하다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든 소파 공간.

신경옥 스타일을 촘촘하게 집약한 책 <작은 집이 좋아> 이후 10여 년 간의 행보를 담은 새 책의 제목은 <집으로부터>.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 시작했어요.” 책이 나올 때마다 사실은 내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하던 그가 이번에는 꼭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담당자가 초안을 가지고 왔는데, 후루룩 읽다 보니 어쩐지 출판사 식구들의 러브레터를 받은 느낌이었어요. 새 책이 나오기까지 몇 해가 지났으니 그 사이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결국엔 지금 이 시기에 나오려 그랬던 것 같아요. 마치 내 70세 생일을 축하하는 것처럼. 한동안 쌓여 있던 수많은 작업 공간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한 건 그들이라 가능했습니다. 내가 스타일리스트로 일할 때부터 함께 일해온 사이였으니까. 뭐 그리 대단하진 않아도 나와 내 공간을 이렇게 깊은 속까지 세세히 알고 있는 이는 그들밖에 없거든요.” 평소에도 말을 먼저 꺼내는 법이 없고, 무엇이든 설명하기를 꺼리는 그가 집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궁금했다.

지하 작업실 한쪽에는 작은 티테이블을 두었다.

3층 작업실에 앉아 메모 중인 신경옥. 이 테이블 또한 빈티지 책상을 리폼한 것.

책에 실린 작업실 모습이 조금 바뀌었어요.

한동안 지하층을 작업실로 사용했는데 지난해 여름부터 3, 4층도 함께 사용하고 있어요. 이전에는 여기가 살림집이었는데, 침대 빼내고 문을 하나로 만든 거 말고는 바뀐 게 별로 없어요. 직원들이 일할 큰 테이블 하나, 회의하고 밥 먹을 큰 테이블 하나 놔야겠다는 생각에 만들었지요. 공간이 너무 하얗기만 하면 재미없으니, 오랜만에 블랙 테이블을 만들었어요.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며 일하고, 일하는 공간이라도 마음 편한 집 같았으면 해서 4층은 쉬는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졸리면 올라와서 잠도 좀 자고 멍도 때리고 영화도 보고 하라고요. 지하에는 테이블 세 개를 합쳐서 어떤 작업이든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뒀지요. 그림도 그리고 재봉도 하고 뭐든 쉽게 만들라고. 그랬더니 막내 직원 주현이가 이제는 여기 오면 고향집 온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내심 행복했습니다.

신경옥의 새 책 <집으로부터>.

작업실의 가구나 소품은 모두 자체 제작한 건가요?

요즘은 물건들이 잘 만들어져 나와 기성품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지만, 그런 건 재미없잖아요? 무엇보다 내 공간이니까 내가 만들어보고 싶던 거 다 만들어보고 여기에 두는 거예요. 여기서 테스트해봐야 남의 공간에 적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좀 엉망인 것도 있어요. 하지만 다 애정이 가죠. 이건 이러려고 만들었지, 저건 만들다 고생 좀 했지, 이런 저런 기억이 떠올라 공간이랑 더 친해져요. 잘 빠진 디자인의 가구도 좋지만, 그것만으론 어쩐지 공간이 좀 딱딱해지고 재미없어요. 그러면 일할 때 긴장하게 되는 것 같고요. 안 그래도 일 자체가 스트레스인데 일하는 공간만큼은 집처럼 편안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오랫동안 모아둔 디자인 서적을 켜켜이 쌓아두었다. 그중 마음에 드는 표지의 책을 골라 한 벽면을 꾸몄다.

4층 벽면에 걸어둔 김원숙의 작품. 그 아래 빈티지 네스트 테이블을 놓고 이헌정의 그릇을 올려두었다.

지금의 작업실도 집으로부터 온 거네요. 집은 신경옥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하루는 미술치료 공부 하던 딸이 초기 기억화라는 걸 그려보라고 했어요. 최초 기억을 그려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옛날 어릴 때 살던 집을 그렸어요. 기억이 생생하게 나서 하나하나 아주 자세하게 그리게 되더라고요. 다 그리고 보니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공간과 똑같은 거예요.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그 집에 살던 때가 정말 행복했는데, 새로운 공간을 만들 때마다 그것을 다시 재현하고 있는 거래요. 딸아이 해석이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신기했어요. ‘집은 내 원천이구나. 내 공간의 모든 게 그 집에서 시작했구나’ 했습니다.

어떤 집이었나요?

아주 옛날이었으니 적산가옥 구조였는데, 매일 흙장난하며 놀던 조그마한 마당이 있고 방이 세 개 있었어요. 부뚜막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엄마가 매일 밥을 짓던 것이 생각나요. 앞에는 우물 하나가 있었고요. 뭐 지금 집들처럼 예뻤겠어요? 그때 거기서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살던 행복한 시간이 제게 공간의 따뜻함으로 다가온 것 같아요. 그때 공간에 대한 감각도 생긴 것 같고요.

나무색이 진한 빈티지 찬장을 하얗게 칠해 리폼했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거군요. 집에서 특별히 신경 쓰는 것이나 규칙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해요.

특별한 규칙은 없지만 내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해요. 예쁜데 왠지 불편한 의자라든지, 감촉이 좋지 않은 패브릭이라든지, 세탁하기 어려워 오랫동안 더러워진 커튼. 뭐 그런 것들이죠. 너무 비싸게 주고 산 것도 가끔 눈에 거슬려요. 저 가구나 물건이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나 고민하면서. 가끔은 못생겨도 나와 내 가족이 편하게 사용하는 것이라면 눈감아주기도 합니다. 예쁘게만 하고 살려면 그게 강박이 되고 불편해지거든요. 나와 내 가족이 불편해지지 않는 것, 그게 규칙이라면 규칙이겠네요.

지하 작업실에서 미싱 작업 중인 신경옥. 파자마를 만들어 선물하는 오랜 취미가 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집을 만드는 게 진짜 집인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런 집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마디 조언해주시면?

나는 좀 내 마음대로라 정답이 없는 것 같은 때가 있는데, 결국 답은 집에 있는 것 같아요. 내 집, 내가 가장 편하게 기대고 쉴 수 있는 집이죠. 누구에게나 그런 공간이 있잖아요. 공간 일을 오래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친밀하게 만나게 됐는데, 결국에는 자신에게 편안한 공간미를 찾아가는 것 같더라고요. 아름다운 것을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깨끗한 것을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흩어지고 복잡한 게 편한 사람도 있고요. 그러니 천편일률적으로 남이 좋다는 것만 하지 말고 내가 편한 게 뭔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공간에 대한 즐거운 감각이 키워지지 않을까요? 이번 책에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팁을 좀 담아봤는데, 그걸 보면서 내가 편한 집은 어떤 집인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지하 작업실의 작은 주방.

4층 손 씻는 곳 위로 선반을 올렸는데 빈티지 거울이 맞춘 것처럼 딱 들어맞는다.

질문과 답변을 몇 개 주고받는 사이에도 신경옥은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실의 나무와 화분을 매만졌다. “내가 가만히 못 있어요. 사실 여기 작업실도 직원들만 왔다 갔다 하지 나는 거의 나오지 않아요. 별로 올 필요도 없거든요. 직원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 하고요.” 하지만 인터뷰하는 동안 끊임없이 물건들을 옮기고 식물을 매만지는 그의 손길에서 이 공간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아름다운 공간이란 어쩌면 애정에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경옥이 집을 생각하는 마음처럼.

CREDIT

에디터

writer

김한나

photographer

이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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