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흘러가는 한국의 시간 속에서 소울의 김희은, 윤대현 셰프는 지금 이 순간의
한식을 고민한다. 오늘의 한식이 곧 내일의 전통이 될 수 있도록.

봄 신메뉴 중 하나인 맞이 음식. 소울의 로고를 형상화해 만든 목기에 육회 타르타르, 월과채, 서여향병을 담았다.

바 형식으로 구성된 소울의 내부.
지난 2월 말, 소울과 촬영 스케줄을 잡고 얼마 후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5 선정 레스토랑이 발표됐다. 2023년 첫 미쉐린 스타를 받은 소울은 3년 연속으로 1스타의 자리를 지켜냈다. “유지라는 게 사실 제자리걸음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이 달려왔다는 뜻이고, 실제로 더 성장하려 노력해왔기 때문에 이를 유지했다는 데에 감사하죠. 처음 1스타를 받았을 때 느낌이 매년 계속 떠올라요.” 교통이 좋지 않은 해방촌의 골목에 자리한 소울인 만큼, 미식을 평가하는 평가서인 동시에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북 역할을 하는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된 것은 이들에게 더욱 뜻깊은 일이었다.

소울의 윤대현, 김희은 셰프.
한식을 공부한 아내 김희은 셰프와 이탈리아 요리를 공부한 남편 윤대현 셰프가 2019년 함께 문을 연 소울은 컨템포러리 한식을 선보이는 레스토랑이다. 한국 음식이 지금처럼 주목받기 훨씬 전인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이들은 꾸준히 자신들의 교집합을 활용해 소울만의 한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은 빠르게 변화하고 매번 유행이 바뀌는데, 소울의 색깔만은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울의 색은 단순 요리뿐만 아니라, 각 음식에 스토리텔링을 더하고 한국의 식문화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우러난다. 전통 한식이 아닌, 지금의 한식. 현재 우리 세대가 만들어가고 있는 오늘날의 식문화말이다. “우리가 오늘날의 식재료를 활용해서 요리한 음식을 잘 차려냈을 때, 서로 간의 공감대가 더 잘 느껴질 거라 생각했어요. 지금의 한식을 또 잘 요리해야 50년, 100년이 지난 후엔 전통이 될 것이고요. 이 시대의 한국엔 이런 식문화가 있었고, 이런 음식을 먹었다는 기록을 잘 남기고 싶은 거죠.” 생일을 맞은 손님이나 임신부가 방문했을 때 미역국을 주는 소울만의 ‘전통’도 이 때문이다. 소울을 말할 때 위트 있는 메뉴명도 빼놓을 수 없다. 대표 메뉴 중 하나인 ‘미세스 김전복’, 올봄 신메뉴인 ‘한우 삼위일체’도 그중 하나다. 파인다이닝 하면 떠오르는 경직된 분위기를 풀고, 손님들에게 더욱 다가가기 위한 노력에서 탄생한 결과다. 바 손님과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주방에는 단차도 있다. “어떤 사람과 어떤 환경에서 식사를 하느냐에 따라 컵라면이 맛있는 음식이 되기도 하고, 아무리 훌륭한 정찬 요리여도 뭘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나기도 하잖아요. 과한 친절함은 또 부담스러우니까, 메뉴 이름으로 손님의 긴장을 풀어주고, 때로는 어떤 재료가 들어갔을지 퀴즈도 내보고, 후식 국수가 나갈 때는 손님 옷 색깔에 맞춰 젓가락을 내주기도 해요. 대부분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식당을 방문해주시는 것일 텐데, 그 특별한 날에 좋은 기억을 만들어드리고 싶은 마음인 거죠. 그렇게 손님들의 좋은 피드백을 받으면 우리도 힘이 나고요.”

한국적인 인테리어로 장식된 소울의 공간.

분주하게 요리하는 윤대현, 김희은 셰프.
전공한 분야도, 출신지도 다른 두 사람이 만든 소울의 메뉴는 그들의 공통된 경험에서 탄생한다. 연애 시절 먹던 맛의 데이터에서부터 축적된 경험이다. “감각과 경험, 그러니까 오감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들이 있어요. 메뉴에 대한 큰 틀을 잡을 때는 비율을 수치화하고 계산하기보다는 맛의 베이스를 카테고리별로 쪼개서 우리만의 맛으로 재해석하는데, 그게 신기하게 되게 잘 맞아요. 연애까지 포함하면 10년을 함께했기에 입맛도 서로 닮아가는 거죠.” 단순히 부부라서가 아니라, 실제로 공통분모가 많은 두 사람은 요리에 본능적으로 끌려 처음 이를 시작한 순간마저 비슷했다. 미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잠시 도예를 공부했던 김희은 셰프는 그릇을 보면 그곳에 음식을 담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요리사의 길을 심하게 반대하던 집안과 몇 년간 연을 끊으며 스스로 학비를 벌어 호텔 조리학과의 학비를 충당했다. 한때 선교사를 꿈꾼 윤대현 셰프는 어려운 국가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던 교회 선교사의 이야기를 듣고는, 어린 마음에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집안의 도움이 없었다, 이게 정말 큰 포인트인 것 같아요.” 윤대현 셰프는 학비가 만만치 않은 조리고등학교의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수능시험이 끝난 지 2주가 채 안 되어 주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도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때 경험이 있어 지금의 소울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한다. 오픈한 지 1년이 채 안 되어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고, 지난 6년간 크고 작은 일이 있었지만 좋은 요리를 손님들에게 내보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꿋꿋하게 버텨냈다. 두 셰프가 생각하는 좋은 요리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특이하거나 값비싼 식재료로 요리하기보다는,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식재료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들어서 손님들에게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무나 버섯같이 항상 먹는 식재료를 어떤 식으로 조리하느냐에 따라 특별하고 맛있다고 느낄 수 있죠. 사실 좋은 식재료엔 요리사가 할 일이 별로 없어요. 최대한 원물을 건드리지 않고 그 상태를 오롯이 잘 보존해 적당하게 익히거나 손질해내는 것도 요리사의 역할이지만,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요리사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행복한 마음으로 음식을 요리해야 하고요.” 요리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삶 자체에 요리사라는 직업이 녹아든,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두 사람은 오늘도 행복한 마음으로 손님들에게 음식을 내어준다.

‘한우 삼위일체’. 한우의 세 부위를 다른 조리법으로 조리해 한 상 차림으로 만들었다.

소울의 공간을 장식한 셰프복과 무자기의 도예 작품들.

물회 요리엔 직접 키운 방아와 토마토를 착즙한 육수를 활용했다.

소울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감자전과 정과, 술을 한 상에 내놓는 ‘잔칫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