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 가구의 대명사 피에르 폴랑의 유산이 이어지는 공간 속으로.
1969년 10월 국가에서 관리하는 가구 수납고인 모빌리에 나쇼날 Mobilier National을 방문한 조르주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은 이탈리아가 모던 가구 시장을 독점하지 않도록 프랑스도 디자인 연구에 집중할 것을 당부하면서 엘리제 궁에서 사용할 새로운 가구를 의뢰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엘리제 궁 1층을 새롭게 단장할 가구 디자이너가 공식적으로 선임된다. 그가 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모더니즘 가구의 대명사 피에르 폴랑 Pierre Paulin이다. 비록 2009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수 많은 디자인은 그의 아내 마이야 폴랑과 아들 벤자민 폴랑 그리고 며느리인 알리스 르모안이 이끄는 가족 프로젝트 ‘폴랑 폴랑 폴랑 Paulin Paulin Paulin’에 의해 2013년부터 지속적으로 생산과 보존이 유지되고 있다.

빅 Big C 소파, 문 Moon 테이블의 둥근 라인과 직선의 계단이 형성하는 콘트라스트. 오렌지색과 대비를 이루는 파란색 그림은 미국 작가 래리 벨 Larry Bell의 작품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폴랑’이라는 이름은 이제 세상에 없는 오마주의 대상이 되었어요. 제 입장에서 디자인은 여전히 숨 쉬고 있고 사라지지 않는 존재인데, 그렇게 죽은 사람 취급하며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싫었죠. 그래서 ‘폴랑 폴랑 폴랑’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메아리처럼 멀리 퍼져나가는 듯한 단어의 반복은 세대 간 계승을 의미해요. 사람들은 저와 아내, 어머니 세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착각하곤 하는데 그런 의미는 전혀 아니고요.” 벤자민과 알리스 부부는 지난해 파리 12구의 주택으로 이사하면서 파리+아트바젤 기간 동안 집의 일부 공간을 현대미술 전시를 위해 외부에 공개했다. 파리에서 보기 드문 현대식 주택 건물에 폴랑 가구로 채워진 내부는 당시 가장 주목받는 전시로 입소문을 탔는데, 그도 그럴 것이 피에르 폴랑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한번에 이만큼 많이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내딸을 안고 있는 벤자민 폴랑과 그의 아내 알리스 르모안.
그리고 작년 가을 이후 다시 방문한 이곳은 가구의 배치가 조금 바뀐 것과 2살짜리 막내딸을 안고 편안한 복장으로 맞이해준 부부의 모습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전설적인 유산이 내뿜는 모던한 아우라가 감탄사를 이끌어냈다. 대문을 열고 중전을 지나 건물로 들어서면 1층은 주방과 거실, 2층은 사무실, 3층은 가족 침실이 있는 구조다. 지하에는 영화를 볼 수 있는 프로 젝션룸과 여러 손님과 만찬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1980년, 프랑스 건축가 피에르-루이 팔로치 Pierre-Louis Faloci와 장-미셸 빌모트 Jean-Michel Wilmotte에 의해 지어진 이 건물은 장-미셸 빌모트가 42년간 거주했으며, 최근 빌모트로부터 이 집을 구입하면서 지금은 폴랑 가족의 쉼터가 되었는데 여기에는 흥미로운 스토리가 있다.

각 층으로 연결되는 직선 계단이 보여주는 공간 분할로도 팔로치와 빌모트가 설계한 건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거실에 놓인 베이지 빅 C 소파와 파란색의 클럽 Club C, 노란색 F572 의자의 조화가 아름답다.

알리스가 가장 선호하는 현관의 모습. 벽난로 앞 데클리브 Déclive n°3 롱 체어에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거실 계단 아래 책장 옆 공간에 타피-시에주 소파를 놓아 아이들이 편안하게 독서와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이사를 위해 집을 알아보던 중 알리스가 이 집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찾아 가보니 신기하게도 어릴 적 놀러가본 친구네 집이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친구의 아버지가 살고 계셨던 거였죠. 훌륭한 건축가가 지은 건물인 만큼 우리가 원하는 구조와 공간을 갖추고 있어 바로 이사를 결정했고 약간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아주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어요.” 빅C, 베이비 C 소파를 비롯해 많은 의자가 놓인 거실은 벤자민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며, 알리스는 빛이 잘 드는 현관의 벽난로 옆 롱 체어에 기대어 있는 걸 선호한다.
물론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 야외 중전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곳에는 2014년 마이애미에서 열린 루이 비통 전시 때 제작된 마이애미 Miami 테이블이 있어 가족이 모두 이곳에 둘러앉아 놀이와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거실 책장 앞 타피-시에주 Tapis-Siège 소파 위에서 자유롭게 뒹굴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이 집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광경이다. 타피-시에주는 프로토타입이 퐁피두 센터에 소장되어 있고 피에르 폴랑 살아생전에 제품화되지 않은 디자인이기 때문에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세 명의 자녀와 함께 생활하는 지극히 사적인 가족 공간이지만 이전에 전시를 선보였던 것처럼 일부 공간은 외부에 공개해 피에르 폴랑 가구가 실생활에 어떻게 쓰이는지 보여주려는 계획도 이들 부부는 가지고 있다. 하지만 쇼룸으로 불리거나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폴랑 폴랑 폴랑 프로젝트의 목적은 피에르 폴랑 디자인의 가치를 오래동안 지속시키는 것.

알파 Alpha 소파, 알파 클럽 Alpha Club 체어와 로자스 Rosace 커피 테이블을 매치했다. 벽에는 한지에 골드 페인팅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 오베르탕 Bernard Aubertin의 작품을 걸었다.

프로젝션룸에는 듄 앙상블과 붉은색 엘리제 조명을 놓았다. 가족들이 정기적으로 이곳에 모여 영화를 관람한다. 뒷면의 사진은 독일 사진가 칸디다 호퍼 Candida Hofer가 찍은 루브르의 모습이다. 사진 속 원형 소파 역시 피에르 폴랑이 디자인했다.

듄 앙상블 Dune Ensemble 반대편으로 피에르 폴랑의 빈티지 제품인 뮐티모 Multimo 소파와 엘리제 테이블이 보인다. 그림은 스웨덴 작가 벵트 린드스트룀 Bengt Lindström의 작품.

노란색 캬테드랄 Cathédrale 테이블, 파란색 F050 의자와 어울리는 스위스 작가 필립 데크로자 Philippe Decrauzat의 작품. 책장은 모듈 렉탕글 Module Rectangle.
그래서 직접 운영하는 공방 제작 시스템을 통해 무분별한 생산과 판매를 차단하고, 유통 역시 가치를 알아보는 사용자에게만 갈 수 있도록 구입 목적과 제품이 놓일 장소까지 세세히 알아본다고 한다. 마치 갤러리에서 예술 작품을 다루듯 말이다. 그렇다고 이를 편협한 운영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전 세계를 이동하며 전통 가옥에 폴랑 가구를 전시해 체험할 수 있는 ‘템포러리 Temporary 홈’ 프로젝트는 작년 일본을 시작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다음은 멕시코를 염두에 두고 있다. 판매실적을 높이는 것이 아닌 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벤자민과 알리스는 자신들의 다음 세대와 그 다음 세대로까지 아버지 피에르 폴랑의 디자인 유산이 명성과 함께 이어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중정을 통해 바라보는 거실의 창

대문을 열고 중정에서 집 안으로 들어올 때 보이는 현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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