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담긴 집

개인의 취향이 묻어나는 클래식 하우스

개인의 취향이 묻어나는 클래식 하우스

 

선혁 김용남 대표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클래식 하우스를 찾았다. 구석구석 이야기가 가득하다.

 

현관을 마주한 벽에는 하나, 둘 수집해온 목판을 액자처럼 걸었다. 아래 놓인 테이블은 김용남 대표가 직접 디자인한 것.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 모습. 서해안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일몰 시간이 되면 집 안을 물들이는 노을이 장관을 이룬다.

 

건축가 에로 사리넨은 말했다. “신문, 잡지 기자처럼 토끼 단위의 시간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건축처럼 코끼리 단위로 시간을 재는 분야를 이해하기 힘들겠죠.” 그렇다. 매달 돌아오는 마감의 삶을 사는 이로서 1년에 한두 개의 마감을 쳐내는 이들의 삶을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하이엔드 주거&오피스 인테리어를 선도하고 파올라 렌티, 데지레, 포졸리 등 수입 가구 브랜드 전개하는 선혁의 김용남 대표의 삶이 꼭 그렇다. 그는 지금도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26년 차 공간 디자이너. 신발장을 짜기 위해 클라이언트가 즐겨 신는 신발 종류까지 모조리 파악해야 하는 섬세함과 완벽주의는 지금의 선혁을 있게 한 토대가 되었다. 지난 4월 그가 약 1년간 공을 들인 공간이 문을 열었다. 대부도 아일랜드CC에서 새롭게 조성한 프리미엄 레지던스 더 헤븐 아일랜드 리조트다. “전체 인테리어 코디네이션과 디자인 컨설팅을 했어요. 카페 디자인, 펜트하우스, 로비, 수영장 등 커뮤니티 시설의 세팅과 코디도 담당했고요. 여기가 제주보다 공기가 더 좋대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이곳에 오다 보니 결국 한 객실을 취향껏 꾸미게 됐어요. 클라이언트 미팅도 이곳에서 종종 하고요. 분양을 위한 평형대를 보여주는 모델하우스가 아니라, 저의 자연스러운 선택을 보여주는 공간이에요. 그동안 컬렉션한 작품이나 소품, 제가 직접 디자인한 고재 가구들로 채운 거죠.”

 

 

 

크게 거실 겸 주방과 마스터룸, 작은 방으로 나뉜 공간 구석구석에서 김용남 대표의 취향이 묻어난다. 신축이라는 특성상 크게 공사하지는 않았지만 두 부분에 손을 댔다. 거실을 향해 난 두 개의 안방 문 중 하나를 막고 드레스룸의 유리문에 벽지를 발라 마치 벽장 같은 느낌을 구현한 것. 문을 막아 생긴 벽과의 단차에 선반을 달고 직접 디자인한 고재 테이블을 배치하자 작은 서재 공간이 생겼다. 서해 바다를 벗삼아 이곳에서 책을 읽는다. 직접 제작한 침대 헤드 부분에는 샬롯 페리앙의 사진부터 뉴욕에서 활동 중인 엔조 리의 회화, 루이스 부르주아의 각기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 걸려 있다. 공간은 하나의 스타일로 규정짓기 어렵다. 클래식하기도, 모던하기도, 미니멀하기도, 따뜻하기도 하지만 왜인지 조화롭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피에르 샤포의 스툴, 지오 폰티의 테이블, 조지 나카시마의 다이닝 체어, 직접 디자인한 춘향목 고재 가구, 빈티지 조명 등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가구와 소품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그의 어린 시절 주위에는 늘 골동이 있었다. 인사동에서 가구숍을 운영하셨던 아버지, 매일 걷던 안국동 풍문여고 등하굣길에는 언제나 오래된 것이 자리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물건에 담긴 이야기와 훈기에 마음이 동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저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세팅할 수 있는 그런 집에는 별 흥미를 못 느껴요. 옛날에 쓰던 물건을 보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잖아요. 굉장히 클래식하죠? 우리나라에서는 클래식이 촌스럽다고 잘못 인식되어 있어요. 대신 디테일과 퀄리티가 중요해요.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디테일에 신이 있다’고 말했거든요. 그 디테일만 잘 구현한다면 심플함이 따라오지 못하는 깊이가 생겨요. 몰딩의 깊이나 시공 방법에서 그 차이가 오거든요. 자칫 잘못 흉내내면 유치하고 마치 세트장 느낌처럼 졸부스러워지는 거죠.”

 

 

벽에 걸린 회화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엔조 리 작가의 작품. 흰 소파는 데지레, 티 테이블은 춘향목 고재를 직접 디자인해 만든 것.

 

 

옛 물건에 대한 천착은 그의 작품 활동까지 가닿았다. 그는 옛 전통 2단장을 현대 물성인 유리로 표현한 작품으로 2년 전 광주 비엔날레에서 수상한 이력을 지닌 신생 작가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클라이언트를 위한 가구를 디자인했어요. 완성품은 제 손을 떠났죠. 그게 그렇게 아쉽더라고요. 유리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건 5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오랜 꿈이었거든요. 저는 지금 너무 즐기면서 일하고 있어요.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제가 디자인하고 완성하는 그 과정이 아직도 설레요. 하루하루 경험도 쌓이고요. 설레지 않을 그날까지 일을 해나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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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포토그래퍼

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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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미학

주한 스위스 대사관의 한옥 인테리어

주한 스위스 대사관의 한옥 인테리어

 

주한 스위스 대사관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실용과 예술의 그 경계 어딘가에 서 있었다.

 

스위스 출신 예술가 레나 마리아 튀링의 워터 커넥션. 돌은 스위스에서 가져온 것으로 마당에 난 물길은 한강의 흐름을 형상화했다.

 

한양도성 서쪽에는 돈의문이 있었다. 서대문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돈의문은 1915년 일제의 도시 계획이라는 명목 아래 철거됐지만, 그곳에 뿌리내린 삶의 터전만큼은 지금까지도 굳건하게 자리한다. 새문안라 불리던 그 동네는 2003년, 돈의문 뉴타운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재개발이 시작 됐다. 대형 아파트 단지가 하나둘 들어섰고, 옛 흔적은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라는 시설을 찾아야만 볼 수 있는 유물이 되었다. 1974년부터 이곳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하던 주한 스위스 대사관은 마을이 조금씩 삭막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몸소 경험했다. 고층화와 과밀화는 재개발과 떼어놓을 수 없는 필요 충분 조건이었다. 2012년 국제현상응모를 진행한 주한 스위스 대사관은 전 세계에서 제출한 70여 개의 설계안 중 스위스 건축사 버크하르트+파트너 Burckhardt+Partner와 손을 잡았다. 도심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한국의 전통 가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컨셉트. 건축을 통한 가장 이상적인 외교가 아닐까. 국내에서는 생소한 철근 콘트리트와 집성목의 합성 구조, 친환경 시설의 도입 등으로 인해 설계부터 준공까지 무려 6년의 시간이 걸렸다. 2019년, 그렇게 국내 최초의 한옥 대사관이 문을 열었다.

 

귀빈을 맞이하는 응접실로 사용하는 공간. 정면에 걸린 작품은 안드레아스 크리스텐의 부조.

 

 

대사관은 주변 풍경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장인이 만든 듯한 저층의 편자 모양 건물은 병풍처럼 에워싼 고층 아파트 숲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주변과 고립되는 것을 경계하며 건물 주위로 소나무와 은행나무를 둘러 심었다. 덕분에 길 건너 자리한 경희궁 공원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다소 차가워 보이는 콘크리트 담장을 지나면 중정을 품은 ㄷ자 모양의 목 구조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스위스 전통 가옥 샬레와 한옥이 동시에 연상되는 따뜻한 느낌.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뤄진 건물에는 대사의 관저와 사무 공간, 회의실, 카페테리아, 다목적실 등이 자리한다. 관저 옆에는 귀빈 방문 시 사용하는 응접실과 회의실 공간도 따로 마련돼 있다. 대사관에 있는 가구의 컨설팅은 스위스 디자인 스튜디오 아틀리에 오이가 맡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실 천장에 걸린 퓨전 Fusion 조명, 종이를 접어 만든 혼미노시 가든 Honminoshi Garden, 포이 Poi 암체어 등 아틀리에 오이의 작품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이유다.

 

대사관 직원들을 위한 카페테리아. 오른쪽 벽면에 책장을 배치해 작은 도서관 역할도 함께한다.

 

스위스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 제로를 달성하는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한다. 이는 스위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위치한 정부 건물과 시설에도 적용된다. 대사관에도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친환경 기술과 지속가능성이 구석구석 숨어 있다. “지붕에 설치한 태양 전지판을 통해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해요. 지열을 이용한 냉난방 시스템도 사용 중이고요. 무엇보다 마당에 설치한 워터 커넥션이 집수 시설과 연결돼 빗물을 이용한 청소와 정원 관리가 가능합니다.” 윤서영 문화공보담당관의 설명이다. 마당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세 개의 돌이 처마와 체인으로 연결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스위스 출신의 예술가 레나 마리아 튀링 Lena Maria Thüring의 작품으로 비가 내리면 물이 체인을 타고 내려와 바닥에 난 홈을 따라 한곳으로 모이게 되는 구조다. 물길은 한강의 흐름을 형상화했으며, 바닥에 놓인 세 개의 돌은 각각 라인 강, 론 강, 티치노 강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처럼 섬세한 부분에서도 느껴지는 한국과 스위스 양국의 교류 덕분에 올해로 수교 60주년이라는 뜻깊은 시간을 맞이했다. 그동안 주한 스위스 대사관은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해 폐쇄성과 높은 장벽을 과감하게 허물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개관 2주년을 기념하며 2021년에 개최한 사진전 <숨쉬는 벽>, 2022년에 개최한 <스페이스리스 Spaceless> 사진전 등이 바로 그 예. 더욱 친근하게 다가올 주한 스위스 대사관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INTERVIEW

아틀리에 오이_패트릭 레이몽 Patrick Reymond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목적은 무엇인가?

주한 스위스 대사관에서 60주년 기념 행사가 있어 참석차 왔다.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내게 매우 중요하다. 각 나라가 지닌 문화의 차이를 느끼는 것에서 영감을 받기도 한다. 이번에는 비록 짧은 방문이지만 9월경 다시 방문해 좀 더 오래 머물 예정이다.

 

주한 스위스 대사관 곳곳에 아틀리에 오이의 작업이 있는데, 첫인상은 어떠했나?

이번이 처음 방문했지만 수많은 미팅을 했기에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전형적인 스위스와 한국 전통 가옥의 모습이 동시에 느껴져서 매우 흥미로웠다. 동서양의 조화가 잘 나타나는 것 같다.

 

스위스라는 국가의 정체성이나 자연환경이 당신의 디자인 철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스위스의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은 작품 활동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 스튜디오는 스위스의 작은 마을 라 누베빌 La Neuveville에 위치한다. 유럽의 북부와 남부의 중간 지점이자 언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곳이다. 호수와 산 등 자연환경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으며, 그 자연의 변화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준다.

 

어떤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나?

좋은 디자인은 사랑에 빠지는 감정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 제품을 사용할 때 드는 감정과 분위기,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좋은 디자인은 평생 함께할 수 있는 친구이자 동료가 되어줄 것이다. 이는 굉장히 전형적인 스위스스러움이다. 평생 사용할 수 있는 까렌다쉬 펜슬이 그렇다. 나는 지금도 1968년에 생산된 올드카를 타는데, 굉장히 흔한 일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협업을 진행해왔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협업이 있나?

2006년 포스카리니와 함께 작업했던 조명 디자인 전시다. 밀라노에서 전시를 진행했는데, 조명임에도 불구하고 사운드를 이용해 전시했다. 전시장 분위기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분야에 제약이 없다면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디자인 영역이 있나?

호텔을 꼽고 싶다. 교토와 프라하에서 호텔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호텔을 디자인하는 일은 굉장히 복합적이다. 일반적인 건축이나 인테리어, 제품 디자인을 넘어 스토리와 장면, 분위기, 총체적인 경험을 아울러 디자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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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이현실(인물), 이예린(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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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가의 집

오디오룸이 있는 콘서트홀 같은 집

오디오룸이 있는 콘서트홀 같은 집

 

공통된 코드를 가진 클라이언트와 전문가가 만나 완전한 협화음을 만들어냈다.
JTK 랩 강정태 소장이 18년 된 때 묻은 집에 부린 마법 같은 변신.

 

콘서트홀을 옮겨온 듯 완벽한 시설을 갖춘 오디오룸.

 

간혹 한눈에 반할 정도로 멋진 집을 만나곤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머물며 샅샅이 그 속내를 들여보다보면 숨은 허점이 보이기 시작하는 집이 더러 있다. 설렘을 가득 품고 들어섰지만 되레 아쉬움으로 바뀌어 현관문을 나설 때면 공간 역시 보이는 게 다가 아니구나 싶다. 번지르르한 겉과 달리 실속 없는 집과는 결코 견줄 수 없는 내실이 탄탄한 집을 만났다. 기본기부터 다진 모범생처럼 말이다. 오랜 노하우와 실력을 바탕으로 이유 있는 고집을 부리는 JTK 랩 강정태 소장의 손길이 닿았기 때문이다. 굳이 여러 말 하지 않아도, 그의 능력을 단번에 알아봐준 클라이언트의 안목이 있었기에 18년 동안 살아온 집을 리노베이션하는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오디오 청음회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소장님께서 시공한 지인분의 집에 함께 놀러 갔는데, 아파트인데도 불구하고 천장 라인이 매우 독특했어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어 저희 집 리노베이션을 부탁했죠.” 집주인 박용석 씨가 입을 열었다. 사실 그는 현재 은퇴해 그저 음향 애호가일뿐이라며 자신을 담백하게 소개했지만, 20년 넘게 음향 디자이너로 일해온 전문가다. 그의 아내 박성희 씨는 1세대 여성 음향 엔지니어 출신.

 

오디오 애호가인 박용석 씨의 로망을 실현시킨 이곳에서 매일같이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다.

 

“취향이 워낙 섬세하고 확고했어요. 피규어부터 책, 음악 CD 등 컬렉션도 정말 많았고요. 밀도가 굉장히 높은 상태라 정리가 필요했어요. 설득하는 부분을 빠르게 캐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저와 코드가 굉장히 잘 맞는 클라이언트라서 수월하게 작업했던 것 같습니다.” 강정태 소장이 말했다. 두 부부와 장성한 큰딸과 아들이 함께 살고 있는 이 집에는 18년간의 추억과 가족의 역사가 담겨 있다. 마침 군대 간 아들이 집에 없기도 했고, 코로나19로 인해 인테리어 공사에 관심이 생겼던 차에 아주 평범한 한국식 아파트에서 벗어나보고자 리모델링을 결심했다. 158m² 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넓은 개방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고, 천장 구조에 변화를 줬기 때문이다. 겉으로 튀어나오거나 시각적으로 거슬리는 요소 하나 없는 모습.

 

최소한의 면적으로 최고의 편안함을 줄 수 있는 까시나 LC3 소파야말로 이 집 거실에 꼭 맞는 선택이었다. 크바드랏의 특수 천으로 주문 제작한것.

 

“제가 에어컨 카세트를 싫어하거든요. 매립형 에어컨이라고 보통 백화점 같은 상업 공간에서 많이 적용돼요. 겉으로는 에어컨 그릴밖에 보이지 않은 형태인데, 저게 바로 에어컨 겸 환기 시스템이에요. 이렇게 시공하려면 천장이 조금 낮아질 수밖에 없어요. 박공을 하면서 낮은 부분에 배관을 심고 올릴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끌어올렸어요. 그리고 간접조명으로 라인을 형성해 샹들리에 없이도 은은하게 불을 밝힐 수 있어요.” 강정태 소장이 설명했다. 자세히 보면 말끔하게 정리된 천장만큼이나 바닥과 벽, 책장의 끝 부분 등이 시각적 막힘 없이 쭉 뻗어 있는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시선의 연결성을 주기 위한 장치다. 바닥재와 동일한 소재로 천장에 포인트를 주고, 각 방의 침대 헤드보드로도 적용했다. 또 사람의 시선은 늘 끝을 향하게 되어 있기에 직선이 맞물리는 모든 부분에 약간의 틈을 뒀다.

 

아내를 위해 마련한 주방 한 켠의 차실. 바닥 아래 전선을 깔아 난방 효과를 높였다.

 

“우리의 시선은 물건을 따라가게 돼요. 종종 디자인을 편하게 하거나 시공의 어려움을 덜어내기 위해 끝 부분을 딱 잘라버려요. 그럼 공간이 더 좁아보이죠. 이 연결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시공 능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해요. 하지만 그것이 실행되었을 때 우리가 느끼는 쾌감은 끝내주죠.” 강 소장이 설명했다. 본격적인 속 채우기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완벽한 틀을 만들었다면, 이제 수집가의 취향 가득한 물건의 제자리를 찾아줘야 할 차례였다. 거실의 소파 벽면 가득 책장을 짜넣은 것도 모자라 방문이 열리는 뒷공간의 아주 작은 틈새까지도 소품을 진열할 자리를 만들었다. 컬렉터의 로망과 정리를 동시에 해결한 것.

 

시원한 개방감이 느껴지는 길게 쭉 뻗은 주방. 매봉산 뷰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 집의 백미는 무엇보다 청음실일 터. 오디오에 문외한이 봐도 으리으리해 보이는 오디오 시스템과 빼곡히 진열된 LP와 CD까지. 강 소장 역시 오디오 애호가이기 때문에 더욱 심혈을 기울인 오디오룸의 탄생 스토리가 궁금했다. “이곳이야말로 우리끼리 소통한 공간이죠(웃음). 항상 농담으로 하는 말이 ‘오디오 업그레이드의 끝은 오디오룸’이라고 이야기해요. 실제 오디오룸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강 소장과 박용석 씨가 운을 뗐다. 이왕 마음먹고 만들기로 시작한 청음실인 만큼 완벽한 시설을 갖추기 위해 많은 부분을 신경 썼다. 시중에 나온 음향 패널 중 디자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제품이 없어 직접 합판을 깎아 가공해서 만들었다. 문짝과 벽면을 패널로 감쌌고 음향의 질을 좌우하는 전기를 분리해 소음을 방지했다. 아파트라 사방에 흡음재를 시공했고, 무드를 위해 조도 조절이 가능한 조명을 달았다. 창밖으로 꽉 찬 매봉산 뷰를 가진 장점 또한 극대화하기 위해 통창을 달았다. 그 덕에 음악을 들으며 사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게 됐다. 물론 아내를 위한 공간도 존재한다. 베란다와 제2의 주방이 위치했던 곳의 구조를 허물어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주방의 기능은 유지하되, 단차를 두어 매봉산 뷰를 품은 차실을 마련한 것. 자투리 공간을 살려 세탁실까지 만드는 세심함도 엿볼 수 있었다. “사실 집을 고치기 전에는 이 산이 장점으로 다가오지 않았어요. 그저 한숨을 쉬는 산이었달까요(웃음). 그런데 지금은 너무 행복해요. 제게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었어요.” 아내 박성희 씨가 만족감을 내비쳤다. 잘 집은 집, 좋은 집의 의미는 얼마만큼 집을 제대로 활용하고 유지하며 살고 있는지에 따른다. 더욱 윤택한 삶을 선물하고자 한 전문가의 의도와 집주인의 확고한 취향이 담긴 집이야말로 10년, 20년을 살아도 질리지 않는 진정 좋은 집이 아닐까.

 

화이트&우드로 통일한 안방. 앞에 놓인 의자는 드리아데의 롤리폴리 체어.

 

 

 

위로 높게 올린 계단식 히노키 욕조. 질감이 있는 벽 타일을 깔아 욕실에 아늑함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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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포토그래퍼

이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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