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위스키 한잔

가을밤, 위스키 한잔

가을밤, 위스키 한잔

깊어가는 가을밤에 특히 잘 어울리는 짙은 위스키. 음식부터 디저트까지 다양한 조합으로 즐기는 위스키의 매력에  빠져보길.

전통의 멋을 담은 위스키, 광화문 더 발베니 바

130여 년 전통을 지켜온 싱글 몰트 위스키 발베니의 두 번째 바가 오픈했다. 아시아에 단 두 곳뿐인 발베니 바인 데다 음식과 함께 즐기는 위스키 페어링을 선보여 더욱 기대되었다. 강렬한 향으로 식전주나 식주후로 마시는 위스키이지만, 음식과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싶어 특별히 고심한 메뉴다. 먼저 위스키는 따뜻한 꿀과 바닐라의 풍미를 담은 발베니 더블우드 12년을 추천받았다. 부드럽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맛으로 어떤 음식과도 페어링하기 좋다.

크로스티니 플레이트와 송훈 칵테일

광화문점에서만 만날 수 있는 시그니처 칵테일도 인상적이다. 발베니는 2021년부터 장인 정신의 가치를 소개하는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을 진행 중인데, 올해의 주제인 한국 전통 악기에서 영감을 받은 칵테일을 선보인 것. 먼저 도자기 관악기인 송훈은 달항아리 잔과 생강 향으로 흙의 에너지를 표현했다. 발베니 더블우드 12년에 레몬 생강청을 더하고, 당귀 잎을 올려 산뜻한 흙의 향을 입혔다. 상큼한 향으로 어떤 음식과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장구는 칵테일 위에 올린 달고나를 깨먹는 방식으로, 전통 타악기인 장구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았다. 달달한 맛으로 음식과 페어링하기보다는 디저트처럼 즐기기를 추천한다.

제주산 딱새우 아뇰로티

위스키와 함께 페어링할 음식으로는 크로스티니 플레이트와 제주산 딱새우 아뇰로티를 주문했다. 바삭하게 구운 작은 빵 위에 토핑을 올려 먹는 크로스티니는 버섯과 문어, 무화과가 각각 두 피스씩 제공된다. 다채로운 맛으로 위스키와 함께 곁들이기 좋았다. 아뇰로티는 딱새우가 들어간 라비올리, 그 위로 훈연한 리코타와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를 올렸다. 비스큐 소스에는 발베니를 넣어 부드러운 풍미를 더한 것이 특징. 크로스티니의 빵을 소스에 찍어 접시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세 가지 발베니와 함께 즐기는 푸드 페어링 세트도 준비되어 있다. 발베니 14년, 16년, 21년 각각의 특징에 맞춰 준비된 핑거 푸드로 비교하면서 맛을 즐길 수 있다. 향긋한 술 한잔이 생각날 때 다시 방문할 예정.

INSTAGRAM @balvenie_kr

MZ를 위한 위스키 바, 개나리 위스키 한남

위스키는 내게 쉽지 않은 술이다. 도수가 워낙 높기도 하지만 위스키 특유의 중후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다소 부담스럽달까. 신사동에 이어 한남동에 2호점을 오픈한 개나리 위스키는 위스키 전문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카페처럼 가벼운 분위기를 풍긴다.

탈리스커10년과 리얼 진저 하이볼

반면 위스키 리스트는 절대 가볍지 않은데 싱글 몰트, 버번, 테네시, 블랜디드, 아이리시, 재퍼니스 등으로 나뉜 리스트만 해도 대략 70여 종. 짐빔 소다나 진저 하이볼, 얼그레이 하이볼, 마가리타 하이볼 같은 기존 메뉴도 있지만, 모든 위스키의 온더록 가격에 1천원만 더하면 잘 어울리는 믹서를 더해 하이볼로 만들어준다는 점도 재미있다. 생강으로 직접 만든다는 리얼 진저 하이볼과 탈리스커 10년, 글렌피딕 12년, 러셀 10년을 한 잔씩 선택했다.

 

필수 주문이 아닌 터라 안주 종류는 많지 않은데, 아무래도 높은 도수의 위스키에 어울릴 법한 중식 베이스의 메뉴가 주를 이룬다. 시그니처인 양꼬치 탕수육과 개나리완탕, 무화과 플래터를 주문했다. 쯔란을 베이스로 해 향신료 내음이 물씬풍기는 양꼬치 탕수육은 맛있었지만, 메뉴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이 내심 아쉬웠다. 들어갈 때만 해도 분명 텅 비어 있었는데, 8시가 넘어가자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MZ로 추정되는 젊은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요즘 위스키가 핫하다더니 정말이었네.

 

INSTAGRAM @gaenari_hannam

어른을 위한 빙수, 신라호텔 더 라이브러리

곱게 간 우유 얼음에 망고를 듬뿍 올린 망고 빙수부터 멜론을 썰어 넣은 멜론 빙수, 여름철 갈증을 해소하는 수박 빙수까지. 이외에도 딸기 빙수, 샤인머스켓 빙수, 카이막 빙수 등 유명 호텔에서는 시즌마다 이색 빙수를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마치 유행처럼 자리 잡은 빙수 메뉴는 이제 호텔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을에 웬 빙수 이야기냐 싶겠지만, 깊어가는 가을밤과 완벽한 조합을 자랑하는 빙수 메뉴가 새롭게 등장했다. 이름하여 빙스키. 빙수의 성지인 신라호텔에서 새롭게 내놓은 ‘허니콤 아포가토 빙수’에 위스키를 페어링한 메뉴다.

허니콤 아포가토 빙수

빙스키는 우유 얼음 위에 진한 지리산 벌집꿀을 통째로 올린 허니콤 아포가토 빙수에 글렌피딕 15년과 글렌리벳 15년 한 잔으로 구성된다. 큼지막한 벌집을 입안 가득 머금고 차가운 우유 얼음을 한입 넣자 두 눈이 절로 감겼다. 달달함이 초과됐을 즈음 코끝을 찡하게 울리는 위스키 한 모금은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줬다. 특히 향긋한 오렌지 껍질과 자몽 향을 머금은 글렌리벳 15년이 허니콤의 달콤함과 어우러졌던 기억.

글렌피딕 15년과 글렌리벳 15년

그리고 커피, 말차, 팥, 블루베리, 아이스크림, 쿠키 등 취향대로 빙수를 즐길 수 있는 곁들임 재료도 제공되어 먹는 재미를 더했다. 호텔 라운지 특유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만끽하며 맛본 달콤, 쌉싸래한 빙스키의 조합은 단연 빙수계에 새롭게 떠오르는 루키이지 않을까. 빙수 단품 가격은 6만8천원, 위스키 페어링 시 5만원의 추가 요금이 붙는다. 이외에도 취향에 따라 스파클링 와인 2잔 혹은 스위트 와인 2잔, 와인 한 병 중 택할 수 있다. 빙스키는 12월 시즌 메뉴인 딸기 빙수가 시작되기 전까지 진행된다고 하니 깊어가는 가을밤을 짙고 달콤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TEL 02-2230-3388

을지로 위스키 & 디저트 바 필로소피 라운지

그동안 위스키를 마실 때 달콤한 디저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건, 멈출 수 없이 구미를 당기는 디저트의 매력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서울 을지로와 충무로 사이 구석진 골목길에 문을 연 위스키&디저트 바 ‘필로소피 라운지’도 그걸 잘 알고 있나 보다. 쑥 위스키, 밤 위스키, 백도 위스키 등 친숙한 재료를 인퓨징한 창작 위스키와 함께 어울리는 다채로운 디저트를 판매한다.

F&B 브랜딩 전문 회사 ‘현현’이 만든 곳이라 그런지 MZ들이 탐낼 만한 포토제닉한 인테리어도 눈에 띈다. 올리브 그린 컬러를 포인트로 한 공간은 호텔 라운지처럼 말쑥하다. 독립적으로 분리된 테이블과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는 편하게 들르기 좋다. 위스키 봉봉, 위스키 샌드 등 위스키에서 모티프를 따온 메뉴도 눈에 꽂힌다. 위스키 샌드는 부드러운 식감의 비스킷 안에 브랜디에 절인 체리와 칼루아가 더해져 한입에 위스키를 머금은 듯 독특한 향이 매력적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 등장해 궁금증을 더했던 위스키,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와 페어링하니 단맛이 자연스레 씻기며 진한 셰리의 달콤함이 남았다.

위스키 샌드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

미드나잇 파르페는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 요거트 젤라토 위에 버번 바닐라 시럽, 무화과가 담긴 독특한 조합이다. 필로소피 라운지의 시그니처인 마롱 쇼콜라 위스키를 곁들였는데, 위스키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밤 향이 신박하면서도 낯설다. 무화과와 밤, 위스키의 조합이라니. 익숙한 맛인데도 색다른 느낌이랄까. 개성 강한 피트 위스키도 디저트와 함께라면 잘 넘어간다. 짐 머레이의 ‘위스키 바이블 2010’에서 3위를 차지한 인도 피트 위스키 암룻 퓨전과 캐러멜 소스에 적신 버터 스카치 푸딩을 페어링하니 위스키가 친구를 제대로 만났다. 강한 요오드 향의 스파이스함이 발산되자 달달한 푸딩이 진가를 발휘한다. 피트 위스키가 부드러워지는 마법이다. 가을밤만큼 어울리는 안주가 더 있을까. 한잔에 뜨겁게 달아오르는 체온을 적당하게 식혀줄 쌀쌀한 날씨도 한몫한다. 그저 위스키 한 잔과 디저트 한 조각이면 충분할 뿐.

미드나잇 파르페

INSTAGRAM @pl_se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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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원하영, 김민지, 원지은, 박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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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밤의 계절

솔밤의 계절

솔밤의 계절

24절기의 맛과 멋 그리고 따뜻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엄태준의 솔밤 이야기.

안심과 양송이로 만든 뒥셀을 넣어 말은 송화버섯과 브라운 버터에 볶은 꽃송이버섯. 곤드레 장아찌와 참죽나물을 올리고 양지와 버섯 베이스 소스를 함께 곁들였다.

 

태양이 떠 있는 각도에 따라 1년을 나눈 24절기.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부터 씨를 뿌리기 시작하는 망종, 일교차가 커지는 처서, 겨울 큰 추위가 오는 대한까지, 우리 옛 선조는 절기마다 삼면을 둘러싼 바다와 산, 들에서 난 제철 식재료로 음식을 해먹었다. ‘한식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1년이 걸린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이유.

 

크림으로 만든 바바로아 소스 위에 캐비어와 단새우를 레몬 제스트와 함께 곁들인 메뉴. 위에는 대파와 파프리카 컬, 딜꽃을 올리고 직접 구운 크래커를 함께 냈다.

 

미술관에서 영감을 받은 깔끔한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20살에 상경한 뒤 호텔에서 중식 요리사로 4년간 일하던 엄태준 셰프는 27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미국 CIA 유학길에 다시 올랐다. 기본기부터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치열한 생활을 이어갔다. 한국으로 돌아와 프렌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임프레션에서 일했지만, 그의 가슴 한 켠에는 늘 한식이 있었다.

 

솔밤을 이끄는 엄태준 오너 셰프.

 

임프레션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오랜 기간에 걸쳐 솔밤의 모습을 차곡차곡 그려 나갔다. 인테리어는 좋아하는 미술관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핀 조명을 맞춘 테이블에 계절에 맞게 변화하는 음식을 작품처럼 내고, 손님들이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그 모습을 꿈꿨다. 레스토랑 이름은 달빛에 비치는 소나무가 아름다운 곳을 뜻하는 안동의 옛 지명이자 그의 고향인 솔밤으로 지었다. 코로나19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오픈 11개월 만에 미쉐린 가이드에서 1개의 별을 받았다. 3년 차를 맞이한 지금, 솔밤의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다.

 

홀에서 바라본 키친의 모습.

 

“무식하면 용감하다고들 하잖아요.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면 누가 몰라주겠냐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레스토랑을 할 거면, 한식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애호박과 건새우는 예부터 전해내려온 조합이잖아요. 저는 뿌리에 맞게 발전해온 그런 음식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하는 거죠.”

 

칼을 좋아해 2년씩 기다려서 받기도 한다는 엄태준 셰프. 터키석 손잡이 칼은 천재 제작자라 불리는 일본 쿠로사키가 만든 제품이다.

 

코리안 컨템포러리에 속하는 솔밤은 계절과 절기에 입각한 한국 식재료에 대한 연구와 이해는 물론 한국적인 요리 테크닉을 바탕으로 동시대를 담아내는 현대적 요리를 선보인다는 평을 받는다. 엄태준 셰프는 레스토랑이 쉬는 날에도 통영의 합자장 명인 등 사라져가는 한식을 공부하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 솔밤은 약 13코스로 이루어진 디너만 영업하는데, 물 흘러가듯 튀지 않는 요리와 흐름의 연계성을 중시하는 엄태준 셰프의 철학 때문이다.

 

메추리 가슴살 안에 트러플 필링을 넣은 메뉴.

 

“수익 측 면을 보면 런치도 영업을 하는 게 맞아요. 일반적으로 런치는 디너를 쇼트 버전으로 만들어서 선보이는데, 그럼 아무래도 더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마치 영화의 예고편처럼요. 저는 아직 제가 의도한 바를 그 짧은 시간에 매력적으로 표현해내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제 능력으로는 모든 테이블을 섬세하게 케어할 수 있는 숫자도 25명 이하라 예약도 그렇게만 받고 있어요.”

 

솔밤은 총 9개의 테이블이 있다. 섬세한 케어를 위해 25명 이하의 예약을 받는다.

 

엄태준 셰프는 코스가 끝난 뒤의 시간까지도 섬세하게 신경 쓰는데, 코스 시작 전에 고른 원목 젓가락과 함께 스콘, 잼을 싸주는 이유. 다음 날 아침과 각자의 일상에서도 문득 솔밤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고안한 선물인 것이다.

 

손님 테이블 앞까지 서빙하는 바 트롤리. 엄태준 셰프가 직접 고안한 것이다.

 

극장에 한 편의 영화를 올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름이 필요하다.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 투자자, 배급사 직원, 배우, 잠시 스쳐 지나간 단역까지.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뿐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이름은 없다. 파인다이닝 주방의 업무도 매일 영화 한 편을 만들어 올리는 일에 가깝다. 엄태준 셰프는 솔밤이 이렇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좋은 팀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말한다. 코스가 끝나갈 즈음 메뉴와 함께 19명의 이름이 써 있는 엔딩 크레딧을 손님상에 올리는데, QR코드를 통해 각자의 역할과 그들의 스토리를 상세하게 읽어볼 수 있다.

 

식사 전 손님들에게 고르게 하는 8종의 원목 젓가락.

 

“솔밤이 엄태준의 서사가 되길 바라진 않아요. 그러면 엄태준이라는 한계치만큼만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제 자식 같긴 하지만, 자식이 제가 되길 바라지는 않잖아요. 단지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는 하나의 세계관인 거죠. 이곳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에너지와 서비스, 음식에 대한 마음이 느껴진다면 그게 바로 파인 아트가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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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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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움의 세계, 몰디브 포시즌스

경이로움의 세계, 몰디브 포시즌스

경이로움의 세계, 몰디브 포시즌스

몰디브에 자리한 두 곳의 포시즌스에서 일주일간 머물렀다. 아름다운 자연과 최고의 럭셔리, 잊지 못할 경험이 공존하는 시간의 기록.

 

자연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고 로컬 문화를 존중하며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여행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최상의 숙소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몰디브의 전통 방식으로 지은 빌라에 머물며 이국적인 풍경과 자연을 누리는 여유로움, 최고의 미식과 세심한 서비스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곳. 몰디브 쿠다 후라 Kuda Huraa와 란다 기라바루 Landaa Giraavaru에 자리한 포시즌스에서 가장 고유하고 트렌디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포시즌스 리조트 몰디브 쿠다 후라

 

인도양의 아름다움을 품은 포시즌스 리조트 몰디브 쿠다 후라.

 

그림 같은 풍경의 칸두 그릴 레스토랑.

 

몰디브는 1,192개의 섬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형태로 인도와 스리랑카 남서쪽에 자리한다. 이중 고급 리조트가 들어선 산호 섬은 대략 100여 개로 어디에서 머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야말로 사실상 몰디브 여행의 전부가 되는 이유다. 몰디브로 향하는 직항은 코로나19 이후 재개되지 않아 싱가포르를 경유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11시간을 비행하고 드디어 몰디브의 수도 말레에 닿았다.

 

이국적인 풍광의 비치 파빌리온 풀장. 그 앞으로는 바다가 이어진다.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도착한 말레 공항 앞에는 버스정류장 대신 보트 선착장이 있었다. 고속 보트를 타고 20분간 물살을 가르고 달리면 쿠다 후라 포시즌스 리조트에 도착한다. 해변의 모래를 밟는 순간 ‘아, 여기는 다른 세상이구나’ 하는 게 느껴질 만큼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하다. 더구나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지는 바다는 마치 멀리서 온 이방인을 위해 축하 음악을 들려주는 듯했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는 칠흑처럼 깜깜하지만 두근거림이 가미된 어둠이었다. 마치 선물 상자를 풀기 전 기분 좋은 긴장감이랄까. 바다로 향하는 커다란 창문을 열고 호텔에서 준비해준 뜨끈한 쌀국수와 레드 와인을 마시며 해가 뜬 몰디브의 바다를 상상했다.

 

인도양을 유영하고 있는 돌고래들의 모습에 연신 감탄사를 내뿜는다.

 

날이 밝고 몰디브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익숙한 푸른 바다가 아닌 눈이 시릴 만큼 맑은 옥색이다. 속살까지 다 보이는 에메랄드빛 바다는 하늘까지 적시고 있는 것 같다. 바다를 향해 놓인 간이 침대에 누워 있으면 구름 속을 거니는 듯 나른하고 환상적인 기분이 든다. 마치 자석에 이끌린 듯 들어가게 되는 프라이빗 수영장. 그곳에서 바라보는 에메랄드빛 인도양 역시 황홀하다.

 

도니를 타고 온 스파 아일랜드는 또 다른 세계 같다.

 

잠시 후 걸어서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쿠다 후라의 객실은 크게 비치 방갈로와 워터 방갈로로 나뉜다. 몰디브 전통 마을처럼 꾸며진 아기자기함이 돋보이는 비치 방갈로는 신비로운 색감의 열대 꽃과 독특한 수형의 야자수로 둘러싸여 있다. 무엇보다 워터 방갈로에는 바다로 향한 샤워 룸과 야외 샤워 시설이 마련되어 수영 후 과감한 풍욕도 즐길 수 있다. 워터 방갈로는 방향에 따라 동쪽에서는 일출과 월출을, 서쪽에서는 일몰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

 

이국적인 풍광의 비치 파빌리온 풀장. 그 앞으로는 바다가 이어진다.

 

이곳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본섬과 떨어진 또 하나의 작은 섬인 스파 아일랜드다. 오직 스파만을 위한 장소인데 몰디브 전통 목선인 도니 Doni로 이동하는 방식도 낭만적이다. 바다 위에 세운 스파 공간에서 침대 아래로 열대어가 떼지어 다니는 풍경을 보며 완벽한 힐링 타임을 가져본다.

 

하늘이 바다 같고 바다가 하늘 같은 황홀함이 느껴지는 워터 빌라.

 

쿠다 후라 역시 여느 리조트와 다르지 않게 다채로운 해양 스포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 선택한 돌핀 크루즈는 단연 최고였다. 파도에 뒤뚱거리는 배를 타고 30분 정도 달려 만난 수십 마리의 돌고래는 보란 듯이 몸을 꼬아대며 점프한다. 스핀 돌고래다. 세상에는 어떤 말과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자연 풍경이 있는데, 붉게 상기된 하늘과 솟아오르는 돌고래 모습은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았다.

 

TIPS

 

 

해가 뜨기 전 수영장 옆 데크에 모여 시작하는 선셋 요가에 참여해보자. ‘옴~’을 읊조리며 기운을 모으고 산티를 따라 1시간가량 요가를 마치면 온몸에 생기가 돈다. 눈앞에 푸른 바다 위로 떠오르는 잊을 수 없는 일출 풍경과 함께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물아일체를 느끼며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포시즌스 란다 기라바루

 

여러 명이 풀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워터 스위트.

 

쿠다 후라보다 북쪽에 자리한 란다 기라바루로 향하는 길도 흥미롭다. 쿠사마 야요이의 도트를 연상시키는 귀여운 수상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정은 지상 낙원으로 입성하는 듯하다. 쿠다 후라와 란다 기라바루에서는 아일랜드 타임이라는 시차가 적용되는데, 란다 기라바루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 꿀 같은 시차가 실감된다.

 

프리미어 오션 방갈로의 모습.

 

이곳은 쿠다 후라보다 야생의 느낌이 강한데, 열대우림 속에 지어진 리조트라는 설명이다. 리조트에는 까마귀만 한 과일 박쥐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생각보다는 얼굴이 귀엽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박쥐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는 신묘한 경험도 가능하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서 만타가오리를 관찰할 수 있는 프로그램.

 

포시즌스 란다 기라바루는 쿠다 후라보다 네 배가량 큰 규모로 객실 103개, 총 네 개의 야외 풀장을 갖추고 있는 거대한 리조트다. 방갈로와 빌라들은 몰디브 전통 건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열대나무 잎을 이용해 개별적으로 나뉘어 있다. 비치 방갈로의 개인 전용 정원에는 5m 길이의 여유로운 수영장과 선데크 전망대가 자리한다. 비치 빌라는 터키옥으로 장식된 문과 몰디브 전통 산호초 벽을 지나 빌라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각 빌라에는 12m의 개인 전용 수영장과 야외에 마련된 거실 겸 다이닝 파빌리온이 있으며, 바닷가로 바로 연결되는 개인 전용 길도 있다.

 

개인의 체질을 꼼꼼히 체크해 서비스하는 아유르베다 스파.

 

란다 기라바루에서는 바닷길이 열리는 비경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이탤리언 레스토랑 블루 Blu에서 멀리 보이는 하얀 모래섬이 절경이다. 느긋하게 쉬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면 투숙객의 이니셜이 새겨진 자전거에 올라 섬 이곳저곳을 다녀보는 색다른 경험도 추천한다. 바다 밑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인도양 한가운데 몸을 던져 스노클링을 즐겨도 좋다. 하얀 산호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는 작은 물고기들이 마치 그림처럼 펼쳐진다. 산호가 없는 지역은 바다가 무척 깊고 그 아래 큼지막한 물고기들도 유유히 지나다닌다. 특히 매년 5월부터 11월 말까지는 만타가오리 시즌으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서 해류를 섭취하고 있는 가오리의 모습을 관찰하며 수영할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할 것.

 

멈출 수 없이 맛있는 중동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알 바라캇 레스토랑.

 

리조트에는 총 네 곳의 레스토랑과 한 곳의 바가 있다. 카페 란다 Landda는 아침 뷔페와 점심, 저녁을 모두 즐길 수 있다. 알 바라캇 Al Barakat 레스토랑은 색다른 중동 음식을 선보이며 천장에 알록달록한 랜턴이 달려 있어 밤에 가면 아라비안 나이트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쉽게 접할 수 없는 레바논 맥주도 맛볼 수 있다. 블루는 탁 트인 바닷가 앞에 자리 잡아 로맨틱한 전망이 일품인 곳. 레스토랑과 바를 겸하는 곳으로 이탈리아 음식과 와인을 즐길 수 있으며 아침 식사를 위한 단품 요리도 제공한다.

 

1.5m 깊이의 풀장을 갖춘 비치 빌라의 내부 모습.

 

란다 기라바루의 아유르베다 스파는 세계적으로 입소문이 난 곳으로 치료를 목적으로 이곳을 찾는 여행자도 꽤 많다고 한다. 고대 인도의 아유르베다에 입각해 인도 의사들이 상주하며 스파를 찾는 이들의 체질을 꼼꼼하게 체크한다. 물, 불 등 우주를 이루는 다섯 가지 요소를 기반으로 정확히 진단한 차크라를 바탕으로 개개인에 맞는 최적의 오일을 사용해 마사지한다. 원한다면 검사와 동시에 체질 분류와 생활 습관 전반에 관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레스토랑에서는 체질에 맞는 음식을 주문해 먹을 수 있으니 메뉴판에 있는 표식을 잘 체크해보자.

 

쿠사마 야요이 도트를 입은 듯 귀여운 수상비행기.

 

TIPS

 

 

포시즌스 호스피탈리티는 개개인에 맞춘 세심함으로 감동을 전해준다. 고객뿐 아니라 그 지역과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도 같아 보인다. 쿠다 후라와 란다 기라바루 두 곳의 리조트에서는 특히 산호 보호 단체인 리프스케이퍼스 Reefscapers와 협력해 여행자에게 자신의 이름 명찰을 단 산호를 기증하고 이들의 생장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마린디스커버리센터에서는 다친 바다거북을 구조해 바다로 보내주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지난 7년간 포시즌스 리조트는 산호초를 키울 수 있는 산호틀을 2,000개가량 리조트 앞바다에 설치했고, 13년 동안 300마리 이상의 거북이를 구조, 200마리가량 바다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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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 +(960)66 00 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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