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꽃의 세계화를 이끌고 있는 비욘드앤 김형학 플로리스트의 새로운 공간.
꽃을 시작한 지 어느새 20년이 넘었다. 시작이 궁금하다. ‘화훼장식사’라는 개념이 처음 신문에 나왔을 때인 것 같다. 우연한 기회로 기사를 보았고,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 궁금증에 알아보면서 시작했다. 유년 시절 마당에는 언제나 꽃이 피어 있었고, 지금도 어머니는 정원 가꾸기를 즐기신다. 우연이지만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꽃집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비욘드앤 Beyond N의 전신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꽃집인 ‘꽃나래’다. 1978년 시작되어 4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곳으로, 지금 아흔이 넘은 윤석임 회장에게서 꽃을 배웠다. 당시 지식인 여성이 시작한 사업이자 꽃을 비즈니스와 접목한 최초의 꽃집이었다. 막내로 입사한 첫 회사였는데, 감사하게도 2대 대표로서 브랜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간의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제자와 동료들이 있었겠는가. 그중 나를 믿어주고 선택해주신 데에 정말 감사드린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평생 꽃 사업을 해온 스승의 입장에서 이 브랜드는 단순한 비즈니스 이상의 가치였을 것이다. 꽃 작업에 자부심을 갖고, 브랜드의 명맥을 잇고, 한국적인 꽃 문화를 이어갈 수 있는 이들을 염두에 두신 것 같다. 비욘드앤 이름 역시 꽃나래 Narae Flower 이후를 이어가고자 하는 포부를 담았다.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세계적인 플라워 대회에 출전하며 한국의 꽃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도 하고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 열린 인터플로라 월드컵에서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작년 이후로는 대회에 출전하려는 마음은 많이 내려놓았다. 지난 20년간 계속된 도전과 경쟁 속에 있었다. 아무리 선한 마음을 가진다 해도 누군가는 떨어져야 하는 경쟁이다 보니 지친 부분도 있다. 메인 대회인 인터플로라에서 우승해서인지 더욱 아쉬움이 없는 것 같다.(웃음)
세계적인 플라워 대회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꽃은 어떤가? 플라워 대회 심사기준은 아주 기술적이다. 색채, 구성, 테크닉 등으로 나눠 점수를 매긴다. 한국 꽃꽂이를 대표해 대회에 나가지만 이러한 심사기준은 한국 꽃꽂이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지난 20년간은 테크닉을 연구해왔는데, 앞으로는 나아갈 방향이 바뀌었다.
‘한국적인 꽃’을 정의하자면? 한 단어로 정의하기에는 참 어려운 것 같다. 한국의 미학을 이해하려면 한국의 땅, 문화,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 생각한다. 우리는 공간이 비어 있을 때 아쉬움을 느끼고, 여백이 있는 자연으로 채워왔다. 한국 꽃의 미학은 그런 아쉬움에서 나온다.
한국의 꽃꽂이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적인 꽃은 단순히 식물의 형태와 종류를 넘어 공간에 어떻게 놓이는가에 달려있다. 가령 가느다란 가지를 촘촘히 모아심은 형태는 선적인 미학을 담으려 했고, 화병에 둥글게 말아넣은 것은 그 사이의 여백에 집중하고자 했다. 꽃 너머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이 한국적인 꽃을 즐기는 방법이다. 이러한 한국의 꽃을 해외에서 봤을 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어렵다. 꽃도 보고, 꽃이 놓여 있는 공간도 보며 조금씩 이해가 쌓여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난 그 시간을 작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 작업실로 마련한 공간을 한국 꽃집으로 열게 된 이유인가. 일본 ‘히비야 카단 Hibiya Kadan’같이 일본만의 미학을 담은 꽃집을 보며, 가장 한국적인 꽃집의 모습을 고민하게 되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찾아와 한국의 꽃 문화를 보고자 한다면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까? 그에 대한 답이 되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비욘드앤은 앞으로 어떤 꽃을 선보일 계획인가. 현재 비욘드앤은 웨딩 비즈니스를 메인으로 작업하고 있다. 앞으로 소비자와 좀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도록 이 공간을오픈했다. 한국적 미학이 담긴 상품들을 선보일 것이다. 더불어 한국 꽃의 세계화에 집중하고 싶다. 해외에서는 아직 한국 꽃에 대한 이해도가 많지 않다. 일본과 중국 꽃꽂이와 쉽게 혼동되기도 한다. 한국적 미감과 꽃의 본질을 표현한 작업들을 통해 ‘이게 우리의 꽃이야’라고 소개하고 싶다.
새로운 공간 오프닝을 기념해 2주간 전시를 진행했다. 간단히 소개해달라. 이번 전시는 오랜 지인인 메타포 서울 김미연 대표와 함께 기획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자리이다 보니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었다. 지금 계절에만 볼 수 있는 한국의 자연을 통해 비욘드앤이 지향하는 한국 꽃의 본질을 표현했다.
전시 기간 중에 잎이 난 감나무와 은행나무 가지가 가장 흥미로웠다. 지난가을 가지치기를 하고 남은 가지들을 모았다. 달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마른 가지를 꽂으니 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3주 전만 해도 잎이 전혀 없었는데, 잎 피울 시기가 되니 잎이 나오는 것이다. 지금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장면이다.
1층에서 관람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흙 작품은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다시 나오는 것>은 쟁기질로 갈아엎은 논의 흙이다. 원래 다른 작품을 구상 중이었다. 하지만 이 공간에 딱 맞는 그 느낌이 없었는데, 마침 시골집의 논을 보고 오프닝 일주일 전 작품을 바꾸었다. 지금 이 계절에만 볼 수 있는 흙이다. 뒤집어진 흙은 그 다음해에 한 바퀴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잡초는 흙으로 돌아가고, 땅속의 흙은 다시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순환’이라고 이름 지었다.
2층 테이블 위에 자리한, 난잎이 원형을 이루며 겹겹이 쌓인 작품도 인상적이다. 난이 많이 피는 시기가 있다.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작업이다. 난잎을 겹겹이 감아가며 원을 그린다. 수행의 시간이다. ‘시간’의 쌓임이 곧 이해라고 본다. 좋은 공간이 되려면 이러한 시간이 들어와야 한다. 오래된 공간, 빈티지 가구, 클래식한 예술, 그리고 자연에는 시간이 담겨 있다. 요즘의 공간은 칼처럼 잘려 있다. 물론 그러한 공간도 미적으로 좋지만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공간에 시간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