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 구비한 각양각색의 오디오 스피커부터 집 안 곳곳에 숨어 있는 유쾌한 디테일까지.
박동훈 대표의 취향이 흠뻑 녹아든 이 공간은 마치 커다란 놀이터 같다.

음반 수납을 위해 박동훈 대표가 직접 만든 수납장. 1층과 2층 사이 계단의 벽면에 위치한다.

오라클의 CD2500, 린의 손덱 LP 12을 비롯한 다양한 음향 장비들이 구비되어 있는 2층의 오디오 공간.
온갖 음향 장비가 가득한 2층의 오디오 룸부터 그 옆의 작업실 겸 운동 룸, 1층의 거실과 건너편 비밀스러운 별관까지, 건축 코디네이터 박동훈 대표는 ‘집 안 어느 곳을 가도 음악이 끊기지 않고 흐를 수 있도록’ 곳곳에 오디오 기기를 배치했다. 그가 처음 음악에 빠지게 된 때는 레코드판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고등학생 시절 J.D. 사우더의 앨범을 구매했던 순간이었다. “고등학교 때 납땜하며 학비를 벌었는데, 그 근처 레코드점에서 그 음반을 보았어요. 그것이 뭔지도 모르고 멋있어 보여서 그냥 샀죠. 나중에 친구가 ‘오디오도 없으면서 저건 왜 샀냐’고 해서 그것이 레코드판인 줄 알게 되었어요.” 마침 청계천에서 일하던 그는 고물상 주인들에게서 고장 난 오디오 부품들을 얻어 직접 기기를 조립해 음반을 재생할 수 있었다. “그때 그 음성이 잊히지 않아요. 그 이전에 라디오나 길거리에서 듣던 음악은 그저 일상의 소음에 가까웠다면, 그때 처음으로 내 음악이 생긴 거예요.” 그 후 광고회사 대표로 일하던 시절에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D장조 K.136’을 듣는 순간, 그는 다시 한 번 음악에 빠졌다. 하이엔드 오디오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 시기다. “그때는 일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CD 하나를 틀었는데, 마음이 너무 편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 음악의 소리를 제대로 표현하는 오디오를 찾아야겠다 싶어서 그걸 들고 그대로 용산 전자상가로 갔죠.” 여러 리스닝 룸을 돌며 노래를 들은 그는 ‘여기부터 여기까지 다 주세요’라며 매킨토시 McIntosh 앰프, B&W의 800 다이아몬드 스피커, 오라클 Oracle의 CD 플레이어 CD2500, 소너스파베르 Sonus Faber의 과르네리 Gaurneri 오마주 스피커를 비롯한 각종 장비를 구매했다. 하이엔드 제품부터 뱅앤올룹슨의 베오사운드 BeoSound 쉐이프 같은 기성품까지, 박동훈 대표는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면 브랜드나 가격을 가리지 않고 음향 기기를 구입해 지금의 공간을 꾸며왔다. 본격적인 음악 감상을 위한 흡음 시공 또한 잊지 않았다. 여러 레이어로 된 패브릭과 나무를 적절히 섞어 공연장 같은 환경을 조성했다.

뱅앤올룹슨의 베오사운드 쉐이프 스피커로 벽 뒷면을 꾸몄다.

카메라를 보고 미소 짓는 박동훈 대표.

박동훈 대표의 취향이 묻어난 1층의 거실.

2층 오디오 공간의 정면. 현악기의 울림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소너스파베르의 과르네리 오마주 스피커, 뱅앤올룹슨의 베오랩 5 BeoLab 5, 매킨토시 75가 오디오 공간의 앞쪽을 채우고 있다.
그의 집 안을 빼곡히 채운 건 오디오 장비뿐만이 아니다. 각종 술과 그 주종에 맞는 술잔들, 피규어와 오토바이, 책과 카메라 등. 한 가지 취미에 관심이 생기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격이다 보니 곳곳에는 마치 박물관처럼 그의 취향이 담긴 물건들이 자리해 있다. 물건들은 생활 동선에 맞게 적재 적소에 배치되어 필요할 때마다 그를 반긴다. 때로는 이를 보관하기 위한 가구들을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마련된 캐비닛과 주방 식탁도 그의 작품이다. 30년 넘게 운영해온 광고회사의 대표직을 떠나고 건축 코디네이터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한 것도 이런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다. “누구나 집에 오래 머무르고 싶어 할 이유를 작은 공간에라도 만들어 두는 거죠. 그게 음악이 될 수도, 서재나 프라모델 만드는 골방이 될 수도 있어요. 그냥 방이 있으니까 그걸 사용하는 것과 내 공간을 가진다는 건 다른 거예요. 때로는 클라이언트 자신도 모르는 취향과 습관을 발굴해서 찾고, 그에 맞는 공간을 설계해주는 거죠.” 그는 자신을 ‘놀이터 만드는 남자’라고 소개한다. 실제로 박 대표의 집엔 놀이터처럼 유쾌한 디테일이 많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공간은 별관의 히든 바이다. 그가 “여기 앉으세요” 해서 바닥에 앉았더니, 서서히 내려가며 지하의 숨겨진 바가 나타났다면 믿겠는가? 이는 과거 공연장으로 쓰이던 별관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옮기기 위해 설치된 리프트인데, 공간을 개조하며 같이 구상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놀아본 사람이 놀 줄 아는 것처럼, 내 공간을 만들어 본 사람이 남의 공간도 잘 만들겠죠. 이제는 내 집을 꾸민 것처럼 타인의 공간도 잘 꾸며주고 싶어요.” 나이 예순, 건축 코디네이터로서 새로운 출발을 앞둔 그의 포부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박동훈 대표가 처음으로 구매한 LP, J.D 사우더의 <You’re Only Lonely>와 그가 사랑하는 LP중 하나인 파블로 카잘스의 <백악관 연주>.

거실의 TV는 뱅앤올룹슨의 베오비전 4-103은 스스로 공간 음향을 체크해 적절한 음향을 내준다.

탄노이 Tannoy의 스털링 Stirling 스피커가 양 옆에 배치된 별관 공간. 이곳 가운데 바닥에는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어 지하의 숨겨진 바로 내려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