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구 이야기

두 가구 이야기

두 가구 이야기

“가구가 하고 싶어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든 임성빈 대표와 문승지 디자이너의 이유는 이 한마디로 충분하다.

스페이스 에이지의 특징인 곡선 형태가 잘 나타난 쇼룸 공간. 정면에 보이는 녹색 소파는 ‘트윈 소파’.

임성빈 대표가 브릭 체크 패브릭 패턴이 특징인 ‘스쿱 소파’에 앉아 있다.

빌라레코드 임성빈 대표

‘빌라’와 ‘레코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에 어떤 의미가 숨어 있나요? ‘빌라’의 어원은 외곽의 대저택에 수영장이 딸린 집에서 유래했어요. 미국에서 빌라라고 하면 이런 여유로운 이미지를 그리는데,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건축물을 떠올리죠. 이게 우리나라의 주거 현실인 것 같아서 ‘빌라’를 꼭 사용하고 싶었어요. ‘레코드’를 사용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음식, 향, 음악 등 사람이 공간에 머물며 느끼는 여러 요소를 생각하던 중, 제가 음악을 가장 좋아해서 사용한 게 첫 번째 이유예요. 두 번째 이유는 ‘기록하다’는 의미의 영어 단어에서 착안했어요. 1960~70년대 가구를 다루는 우리가 과거를 기록한다는, 복합적인 의미가 혼재되어 있는 거죠.
2017년 론칭한 빌라레코드가 어느덧 9년 차를 맞이했습니다. 브랜드가 많이 성장했는데, 기존에 하던 공간 디자인 일은 얼마나 병행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바빠진 만큼, 1년에 5개 이하로 선택적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공간 디자이너로 일한 경험이 가구 디자인에 도움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 저한테는 두 일이 똑같은 일로 느껴져요. 산업의 형태만 다를 뿐, 제가 일하는 방식이나 생각에 대한 뿌리는 똑같습니다.
예를 든다면요? 공간 디자이너로서 누군가의 집을 설계한다면, 그 대상에 포커스를 맞춰서 고객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그 디테일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눠요. 고객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공간에 최대한 담아내기 위해 사이즈를 책정하고, 가구와 조명 같은 것들을 설계하는 거죠. 가구 디자인은 그 주체가 대중으로 바뀐 것밖에 없어요. 타깃팅하는 대상이 어떤 집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똑같이 하는 거죠. 차이점을 꼽으라면,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우리 엔진을 계속 키우고 업그레이드하게 된다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빌라레코드 쇼룸에서는 다양한 소파 제품이 있다.

심플한 덩어리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PQ 소파’.

물결 형태의 다리가 인상적인 ‘블렌드 다이닝 테이블’과 ‘벨레 라운드 다이닝 테이블’.

건축을 전공하셨는데, 가구의 어떤 점에 끌렸나요? 디자인적, 공학적 스케일이 가장 큰 것이 건축이라면 가장 작은 것은 가구인 것 같아요. 자연스레 관심사가 이쪽으로 간 거죠. 건축 일을 할 때, 아무리 훌륭한 건축가가 설계한 공간이라도 최종적으로 놓여 있는 가구나 인테리어가 어울리지 않으면 이를 해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 반대로 좋은 가구는 건축물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기도 하고요. 그때부터 가구가 참 중요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건축물과 가구의 시너지가 일어나는 것도 너무 멋있고요.
그러다 빌라레코드를 설립하게 되신 거군요.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를 쭉 하다 보니, 공간에 걸맞은 가구가 필요한데 클라이언트 예산 등의 문제로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저와 빌트바이 팀이 직접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맞는 타이밍이 오더라고요. 빌라레코드에서는 기존 가구와는 다른, 제가 좋아하는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스페이스 에이지의 디자인을 좋아하신다고요. 원래 꿈이 파일럿이었을 만큼 우주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이후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디자인에 막대한 영향을 준 굵직한 시기 중 하나가 스페이스 에이지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때 조명이나 가구들 보면 굉장히 유니크하거든요. 안 쓰던 소재와 컬러, 셰이프를 제품으로 만든 게 굉장히 매력적이어요. 건축학도로서도 당시 건축가들이 인테리어와 가구를 디자인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었고요. 가구와 인테리어만으로는 절대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을 그 당시 건축가들이 하곤 했어요. 이런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게, 그때는 인간이 우주에 진출하고, 환상 속에 사는 시대였잖아요. 그런 판타지가 반영돼 있던 시대에서 오는 매력이 커요.
지금까지 많은 가구를 만드셨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제품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진짜 어려운데요, 가장 처음 만들었던 게 제일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지금도 팔리고 있는 TV장이에요. 당시만 해도 모든 장이 각져 있고, 굉장히 심플한 디자인밖에 없었는데 우리 TV장의 끝은 이렇게 굴려서 도어를 열 수 있게 만들었어요. 그 도어에 고주파 밴딩을 해야 되는데, 이걸 도어로 만들면 조금씩 변형이 일어나면서 아귀가 안 맞아요. 공장도 여러 번 옮기고 되게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그것을 쉽게 만들 수 있거든요. 당시 인프라가 부족했던 경험 때문인지 자꾸 애착이 가요.
쇼룸에 있는 바에 이어 제주도에 ‘빌라 사계’라는 스테이도 운영하고 계신데, 앞으로도 이런 공간과 콘텐츠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좀 천천히 생각하려고 하는데, 바가 자리를 잘 잡아가고 스테이도 안정화된다면 또 다른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사람들이 머무는 복합적인 공간이라든가요. 한 10년, 20년 뒤라면 저도 할아버지가 다 돼갈 테니 그게 시니어를 위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시니어들이 무척 세련될 것 같아요. 외곽에 있기 싫어할 것 같고, 저처럼 젊은이들이 누리는 걸 누리고 싶어할 수도 있고. 고리타분한 거 싫어할 것 같으면서도 현실적으로 요양 도우미가 있으면 좋은, 그런 것들 있잖아요. 단순히 아이디어만 떠올린 거지만, 그런 것에도 열려 있어요. 아직 준비가 안 됐지만, 준비가 된다면 언제든요.
요즘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이번에 생산 공장들을 새로 개편하면서 제품의 퀄리티나 디자인을 압도적으로 올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걸 통해서 제대로 해외 진출을 해볼 생각입니다. 일본 진출은 이미 시작했고, 가장 목표로 하는 진출지는 미국이에요. 미국에서 계속 의뢰가 들어오거든요. 구매를 원하는 고객들이 있는데, 관세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한 후 제대로 해보고 싶습니다.

문승지 디자이너가 앉은 ‘냅 소파’는 팔걸이의 세심한 각도 덕분에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하바구든 문승지 디자이너

얼마 전 ‘하바구든 HAVAGOODEN’이라는 브랜드를 새롭게 론칭하셨습니다. 언제부터 이를 기획하고 준비하신 건가요? 내년이 팀 바이럴스를 운영한 지 10년 차가 되는데, 클라이언트를 위한 일을 하는 것도 즐겁지만, 우리 취향을 100% 담은 브랜드를 운영해보고 싶었어요. ‘우리가 만드는, 우리 취향이 들어간 이런 공간에 우리 가구를 넣는 게 가장 합리적이지 않을까’ 하면서 그 간극을 메워간 시간이 한 3년 정도 됐죠.
‘팀 바이럴스의 취향’이란 무엇인가요? 담백함이요. 힘을 엄청 주고 무언가를 만든다기보다는, 그 순간에 어울리는 것들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하바구든이라는 브랜드를 만들 때도 가구가 주인공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가구를 사용하는 사람이 주인공이 되고, 집에 어떤 제품을 둬도 공간에 녹아들게 하는 걸 목표로 잡아 만들었습니다.
가구를 제작하는데, 가구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이 재미있네요. 사실 가구는 항상 우리 옆에 있는데, 가구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대하는 것에 의문을 품고 ‘내가 쓰는 가구는 내가 가장 편하게 느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 우선 ‘시각적으로 부담 없어야 하고, 오래 쓸 수 있어야 하고, 실제로 사용할 때 편해야 된다’였습니다. 의자를 만들더라도 의자가 가진 최소한의 기능을 최대한 지켜서 만들자는 생각이었죠. ‘의자가 사람을 가장 편하게 만드는 각도는 몇 도일까’부터 ‘다리를 어느 정도 빼야 더 견고해질까’, ‘여러 겹으로 쌓이는가’ 등 여러 가지 고민을 했고, 그렇게 시각적인 자극이 최소화된 결과물이 완성됐어요.
실제로 직접 제작한 가구를 써본 입장에서 어떤 것 같으세요? 편해요. 제가 원래 쓰던 소파에는 베개가 꼭 필요했어요. 그러다 소파의 각도나 푹신함이 그냥 내 생활에 맞춰지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만든 것이 ‘냅 소파’ 시리즈예요. 각도가 조금만 바뀌어도 편안함의 정도가 다르거든요.
팔걸이와 몸체 등이 파트별로 나뉘어 있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소파라는 게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금액대는 아니잖아요. 저는 제품을 판매하는 게 브랜드와 고객간의 인연이 맺어지는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는 추후에도 제품의 지속적인 케어를 돕기 위해 웬만하면 품목 자체를 모두 파츠화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팔걸이가 어긋나거나 고장이 날 때를 대비해 그 부분만 따로 케어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중이에요.

위로 올라갈수록 사선으로 기울어지는 ‘루미 소파’.

거친 벽면이 인상적인 쇼룸 공간에 놓인 ‘허밍 다이닝 테이블’.

하바구든은 ‘좋은 하루 보내’라는 뜻을 가진, ‘해브 어 굿 원 Have a Good One’이라는 표현에서 유래했다고 하던데요. 사실 그 말은 공식적으로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우리 브랜드명이 집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해주는 인사말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브랜드를 기획하면서 ‘집으로 간다는 건 도대체 뭘까’, ‘나한테 집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고민을 계속했거든요. 우리는 바깥에서 매일 긴장하며 지내다가도, 집에서는 나도 모르던 내 진짜 모습이 나타나잖아요. 그렇다면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돌아가는 일을 축하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 거죠. ‘하바구든’은 브랜드를 구상하기 전부터 친구들과 자주 하던 인사말이기도 해요.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브랜드였으면 하는 바람과, 집으로 향할 때 해줄 수 있는 인사말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모여 하바구든이 됐어요.
가구를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텍스처요. 집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시간대는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 소파에 누워 있을때거든요. 그래서 소재에 햇빛이 맺히게끔 하고 싶었어요. 바람 조금 불고, 햇빛이 집 안에 따뜻하게 머무르는 그 시간에, 가구들의 텍스처가 시야에 딱 들어왔으면 했어요. 같은 소재인데 빛을 받았을 때와 받지 안 받았을 때 보이는 질감이 완전히 다르거든요. 원단을 구성할 때도 이런 부분을 많이 고려했어요.

나무 소재의 ‘카브 사이드 테이블’에 비친 햇살.

의자를 여러 겹으로 겹칠 수 있도록 다리의 각도까지 섬세하게 신경 쓴 ‘YN 체어’.

‘냅 소파’와 공사 중이던 상태를 그대로 둔 뒤의 벽면이 인상적이다.

쇼룸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바닥은 벽돌, 천장은 노출 콘크리트로 되어 있고, 벽면은 깨끗하게 페인트된 부분과 날것의 면이 한 공간에 배치되어 있어요. 이것도 텍스처 때문이에요. 한창 공사 중일 때의 벽을 보고 ‘이걸 왜 굳이 덮지, 그냥 두자’ 하는 생각이 든 거죠. 바닥도 가장 자주 접하던 벽돌로 채워 넣었어요. 가장 흔하게 쓰이는, 우리가 아는 벽돌인데 벽돌 하나하나에도 다양한 텍스처가 있잖아요. 그게 모여 하나의 면이 되면서 밀도가 다른 텍스처가 완성되는 걸 보고 싶었어요. 이 편이 더 자연스럽고 담백하잖아요.
친근한 제품명에서도 담백함이 느껴져요. ‘냅’ 소파는 말 그대로 낮잠 자기 좋은 소파라 이름 지었고, ‘루미 Roomie’ 소파는 정말 룸메이트같이 큰 덩어리로 있어주는 소파가 됐으면 했어요. ’카브 Carve’ 티 테이블 같은 경우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카빙해본 건, 우연히 저런 선들이 태어난 거예요. 그러다 이 단면이 주는 긴장감이 테이블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든 거죠. ‘우연한 이야기도 결국은 제품의 스토리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이렇게 각각의 제품에 스토리를 부여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해서예요. 이름의 유래에 대한 작은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구매하신 분의 집에 들어갔을 때 그냥 그 존재만으로도 이야깃거리가 생겨났으면 좋겠고, 이 스토리를 이해한 상태에서 가구를 소유하게 되면 결국은 제품도 살아 있게 되는 것이잖아요.
제품을 본 고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제가 딱 원하던 대답을 다 들었어요. 냅 소파에 누워보고 ‘왜 이렇게 편해, 나 여기 조금만 더 누워 있고 싶다’ 등의 반응을 보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행복했어요. 우리가 가장 추구하는 것이 사실 이런 장면이에요. 계속 이런 시도를 해나가고 싶고, 앞으로도 해나가려 하고 있어요. 의자, 아웃도어 제품, 홈웨어, 러그 등 아직 오픈하지 않은 디자인이 너무 많아요. 우선은 쇼룸부터 정식으로 열어야 해요. 쇼룸은 4월 중순 오픈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하바구든이 펼쳐나갈 미래가 기대되네요. 저는 항상 브랜드 혹은 다른 아티스트와 협업을 하는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협업을 제안하는 것도 가능해졌어요. 저와 같은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아티스트 혹은 디자이너와 함께 뭔가 만들어보고 싶은 열망이 있어서, 그런 것도 조금씩 준비해가고 있어요. 천천히 가려고요. 잘 매만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좀 더 밀도 있게 준비해보고 싶어요.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이현실

TAGS
골목에 피어난 작은 도시

골목에 피어난 작은 도시

골목에 피어난 작은 도시

도심 속 힐링의 가치를 담아 탄생한 공간, 페즈. 한남동 골목에 자리한 곳으로서
자연, 문화, 공동체가 공존하는 ‘최소 단위의 도시’를 지향하며 지역 커뮤니티를 형성해가고 있다.

지난해 말, 한남동의 한 구석진 골목에 4층 규모의 새로운 커뮤니티 몰이 문을 열었다. 벽돌과 나무라는 건축적 소재의 특징이 어우러진 이곳에는 간판도, 별도의 안내문도 없다. 하지만 취향이 있는 이들의 아지트가 대개 그렇듯 오직 입소문만으로, 어느 순간부터 주민 중심의 커뮤니티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상업 공간과는 다른, ‘커뮤니티 몰’이라는 정체성을 지향하는 페즈 FezH의 임종현 대표를 만나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페즈라는 공간은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불안과 고립감을 벗어날 방법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는 요가나 운동을 하고, 명상 책을 읽고 제주도의 오름,
해변, 숲 등 자연을 매일 찾아다니며 마음을 다스렸죠. 그 뒤 코로나19가 어느정도 수그러들자, ‘나만의 공간’이 더 소중해졌어요. 자연이 아닌 도심, 특히 서울에서도 그런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죠. 발리에서 경험한 보헤미안 분위기, 자유스러움, 혼자서도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갈증이 점점 커졌고, 이것이 페즈에 대해 생각하게 된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갤러리형 매장, 음악&도서 라이브러리, 카페, 바, 리트릿 스페이스 등 여러 공간이 한 건물에 있는 만큼 동선이나 구조 등 고려할 요소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페즈는 탐험과 발견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미로처럼 이어진 구조,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모호한 계단,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갤러리 공간 등. 지하 광장부터 최상단의 리트릿 스페이스까지 마치 퍼즐을 맞추듯 소용돌이 같은 동선을 따라야 합니다. 그 덕분에 계단을 오르는 동안에도 지루하지 않아요. 건물내부의 수직·수평적 동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공간의 접점마다 또 다른 곳을 마주하게 됩니다. 유이화 건축가는 독특한 동선을 통해 방문객이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는 여정을 보내기 바랐어요. 호기심에 이끌려 광장을 찾은 사람들은 마치 오래된 도시의 골목을 탐험하듯 각 공간을 경험하면서 정신적 고요함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페즈의 광장.

나무, 유리, 금속의 소재가 어우러졌다.

미로같이 설계된 계단.

페즈의 바 블루캣.

블루캣에서 가끔 디제잉을 한다는 임종현 대표.

특히 벽돌과 나무의 소재가 곳곳에 어우러진 것이 인상적입니다. 공간을 설계한 유이화 건축가가 중요하게 고려한 사항 중 하나는 한남동 골목길에서 느껴지는 친숙함과 편안함을 공간에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벽돌은 시간이 만든 흔적을 상징하고, 따뜻한 색감과 질감을 통해 페즈를 더욱 차분하고 안정감 있는 분위기로 만들어주어요. 또 오래된 골목길과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벽돌 자체가 가진 흙의 질감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국내 벽돌 공장에서 몇 번의 실험 끝에 지금의 질감과 컬러감을 이끌어냈어요. 또 다른 주 재료인 나무는 부드럽고 따뜻한 표면감과 자연스러운 질감을 더합니다. 표면은 탄화시켜서 나무 자체의 깊이감을 주는 동시에 나무색이 변하는 시간은 조금 천천히 진행하고자 했습니다. 골목을 탐험하며 발견하는 재료의 다양성과 따뜻함은 페즈가 한남동의 맥락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돕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그 밖에 공간을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디테일은 무엇인가요? 광장 계단에 앉아 있으면 시냇물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원 같은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건축가 출신의 한원석 작가에게 ‘사운드 포레스트’ 작품을 의뢰했으며, 작품명은 ‘노르웨이의 숲 Norwegian Wood(This Bird has Flown)’ 입니다.

탁 트인 페즈의 내부.

요가 수업을 진행하고 차를 마실 수 있는 리트릿 공간.

페즈에 대한 모티브는 어디서 얻었는지 궁금합니다. 건축적 모티브와 스토리라인은 모로코의 페즈 올드시티 Fes El Bali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승효상 건축가에 의하면 도시 페즈는 열 채의 집이 하나의 단위로 묶여 공동의 빵집과 우물을 공유하는 ‘최소 단위의 도시’인데, 이는 다원적 민주주의의 표본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공간 페즈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커뮤니티의 필수 요소를 한 곳에 모은 최소 단위의 도시가 되고자 했죠. 광장, 갤러리형 매장, 음악&도서 라이브러리, 리트릿 공간, 주말 마켓 등 다양한 공동 시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작은 도시를 이룹니다. 페즈의 이름 역시 모로코의 도시 페즈에 힐링과 한남동의 알파벳 H를 합성해 만들었어요.
커뮤니티 몰이라는 공간을 기획하며 참고한 해외 사례가 있나요? 하나를 꼽자면 태국 방콕의 ‘더 커먼스’예요. 그들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우리 의도는 먼저 커뮤니티를 구축한 다음, 쇼핑몰을 구축하는 것이다.” 공간 자체에 대한 말이기도 하지만, 그 말 안에는 어떤 콘텐츠를 담아야 할지 방향성까지 담겼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을 가치 있게 만드는 건, 그 공간을 꾸준히 이용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커뮤니티 몰은 대형 쇼핑몰에 비해 규모는 작더라도 로컬 브랜드 영입과 다양한 행사 등을 통해 지역민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만든다는 데에 의미가 있어요.
서울의 많은 지역 중 한남동 골목에 건물을 세우기로 결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대로변보다는 오히려 이야기가 있는 골목을 좋아하죠. 페즈가 있는 한남동에 대해 언급하자면, 굉장히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는 특성이 있어요. 이태원을 포함한 한남동 일대는 재벌, 외국인, 성소수자 등 섞이지 않을 것 같은 그룹이 오랜 시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유지해온 포용의 도시예요. 커뮤니티가 형성된다면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오는 재미있는 공간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오픈한 지 아직 얼마 안 되었지만, 기억나는 방문객의 피드백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오픈 행사 때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요. 처음 뵙는 중년 여성이 저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시는 거예요. 무슨 일인지 여쭤보니 동네에
20여 년을 살았는데, 주민 위한 공간을 오픈하는 것은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요. 페즈가 가진 의미를 알아봐주신 것 같아 뭉클했습니다.
ADD 서울시 용산구 대사관로11길 41 INSTAGRAM @fezh.hannam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이현실

TAGS
Elevated Harmony

Elevated Harmony

Elevated Harmony

허드슨강의 탁 트인 전망을 배경으로, 기능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담아낸 맨해튼 펜트하우스.
컬렉터블 디자인과 맞춤 가구가 조화를 이루며 가족과 손님을 위한 완벽한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허드슨강이 보이는 패밀리 룸. 소파와 벽면 스틸 책장은 줄리 힐만이 직접 제작한 것. 책장 앞 하프 체어는 요르겐 회벨스코브 Jørgen Høvelskov, 커피 테이블은 휴고 프란카 Hugo Franca.

인테리어 디자이너 줄리 힐만.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아함과 실용성을 동시에 갖춘 공간은 단연 돋보인다. 어퍼 웨스트 사이드의 고급 주거 개발 지역인 워터라인 스퀘어 38층에 자리한 이 펜트하우스는 허드슨강의 탁 트인 전망을 배경으로 가족과 손님을 위한 완벽한 안식처로 거듭났다. 이 특별한 공간을 디자인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줄리 힐만 Julie Hillman은 컬렉터블 디자인을 강조하며, 실용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집의 주인은 에미상 수상 경력이 있는 저널리스트이자 앵커인 캠벨 브라운 Campbell Brown으로, 남편과 십대 두 아들이 함께 이곳에 거주한다. 힐만은 클라이언트의 신뢰를 바탕으로 기존 스타일에서 한발 나아간 새로운 시도를 제안했고, 브라운은 이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며 열린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들였다. 첫눈에 반할 만큼 아름다운 채광이 인상적인 펜트하우스. 4개의 침실과 5개의 욕실을 갖춘 이 집은 전면 개조를 거쳐 새로운 파우더 룸과 홈 바, 두 개의 소형 홈오피스를 추가하면서 실용성과 세련미를 동시에 만족 시키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여기에 수납 공간과 복도, 출입구 위치를 전략적으로 조정해 더욱 효율적인 동선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대규모 모임을 즐기는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개방적인 구조도 최대한 살렸다. 4.9m에 달하는 높은 천장은 공간의 개방감을 극대화하며, 모든 거실 공간 에서 허드슨강의 장엄한 전망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모든 공간에 세심한 디테일을 더했지만 특히 거실, 다이닝 룸, 패밀리 룸, 주방이 하나로 연결되는 오픈 플로어 개념을 강조했어요. 이런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죠.” 세 개의 거실이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연스레 연결될 수 있도록 힐만은 맞춤 제작한 패브릭과 경매에서 찾은 특별한 작품들, 그리고 컬렉터블 디자인을 조화롭게 믹스하여 공간을 완성했다. 거실과 가족실에는 맞춤 제작한 4.5m 높이의 스틸 책장을 설치해 시각적으로 연결했으며, 세 개의 거실에는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지는 동일한 커튼을 사용해 통일감을 주었다. 거실 입구와 다이닝 룸까지 이어지는 벽면에는 우드 패널링을 사용해 시각적 연결성을 높였으며, 각기 다른 스타일의 러그를 배치해 컬러 팔레트를 유지하면서도 변화를 주었다.

집의 중심에 자리한 거대한 다이닝 테이블. 테이블 하부 조각과 의자는 에릭 슈미트. 샹들리에는 나초 카르보넬 디자인으로서 카펜터스 워크숍 갤러리.

소파는 라파엘 나보 디자인으로서 프리드먼 벤다. 데이베드는 릭 오웬스. 피에르 폴랑 암체어는 랄프 푸시.

힐만은 기존의 비정형적 구조를 조화롭게 정리하기 위해 맞춤 제작 가구도 적극 활용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요소는 집의 중심이 되는다이닝 테이블이다. “이 집은 네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많은 손님을 초대하는 공간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단순히 대형 디너 파티를 위한 테이블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하는 저녁 식사에도 어울리는 유연한 형태를 원했습니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채광이 밝은 거실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맞이해주는 독특한 형태의 테이블이다. 에릭 슈미트 Eric Schmitt가 디자인한 세 개의 독특한 받침대 위로 기하학적 형태의 스톤 상판을 얹은 구조인데, 필요에 따라 개별적으로 활용하거나 하나의 대형 테이블로 결합할 수 있다. 바퀴가 장착되어 이동이 용이하며, 사용하지 않을 때는 책과 오브제를 전시하는 디스플레이 테이블로도 기능한다. 그 위로는 나초 카르보넬 Nacho Carbonell에게 의뢰해 제작한 조명을 설치했다. 강렬한 디자인을 유지하면서도 허드슨강의 멋진 전망과 저녁 노을을 가리지 않도록 아치형으로 설계되었다. 넓은 공간을 채우기 위해 큰 가구가 필요했지만, 건물 규정상 리깅(대형 가구를 들어올려 반입하는 작업)이 금지되어 있어 일부 가구는 조립되지 않은 상태로 들여와 현장에서 완성해야 했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힐만은 클라이언트의 라이프스타일을 충분히 반영한 맞춤형 공간을 구현해냈다.

주방과 연결되는 패밀리 룸. 주방 가구는 보피. 창가의 레진 테이블은 스튜디오 누클레오.

“집은 가장 편안해야 하는 공간이에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둘러싸여 있고, 가족 또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죠.” 힐만은 독창적인 맞춤 디자인과 유연한 가구 배치를 통해 이 가족의 다채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냈다. 낮에는 자연광이 가득한 휴식 공간으로, 저녁에는 도시의 야경과 어우러지는 우아한 공간으로 변모하며 그 안에서 다양한 순간이 축적된다. 아름다움과 기능, 개인적인 취향과 개방성이 조화를 이루는 이 펜트하우스는 단 한 주거 공간을 넘어 삶을 담아내는 특별한 무대로 존재한다.

따뜻한 화이트 톤과 부드러운 패브릭으로 꾸민 침실. 침대는 줄리 힐만이 제작한 것. 소파는 블라디미르 카간. 의자는 메종 제라드.

화이트 대리석으로 마감한 욕실. 조명은 루이스폴센.

연두색이 돋보이는 게스트 룸. 창가의 라운지 체어는 피에르 폴랑.

베르너 팬톤과 조 콜롬보의 체어를 둔 아들의 방. 송치를 사용한 침대는 줄리 힐만이 직접 제작한 것.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마놀로 이예라 Manolo Yllera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