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아티스트 다니엘라 부사렐로의 파리 아파트.
로댕 뮤지엄을 지나 조용한 벨샤스 Bellechasse 길 중간에 위치한 그녀의 아파트를 찾아가는 여정은 조금 특별하다. 예술가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충만한 예술적 영감이 길에서부터 존재하니 말이다. 아름다운 정원에 자리한 로댕의 조각상을 멀리 훔쳐보며 걷다 보면 전형적인 파리의 카페가 눈앞에 나오고 벨샤스 길의 고풍스러운 오스마니안 건축물이 양 옆으로 펼쳐진다. 그중한 건물의 4층에 위치한 아파트에 브라질의 햇살을 뒤로하고 파리로 이주한 혹은 브라질의 햇살을 선물처럼 끌어안고 파리로 찾아온 다니엘라 부사렐로 Daniela Busarello가 살고 있다.
자국에서 성공한 건축가로 지내다 불현듯 2007년 에콜 뒤 루브르에서 현대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이주한 그녀는 안정적인 직업을 뒤로하고 자신이 진짜 원했던 다른 방식으로 창작의 길을 선택했다. “주로 클라이언트를 위한 프로젝트를 오래 하다 보니 나를 위한 작업을 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어요. 머릿속과 마음속에 있는 모든 창작의 기운을 클라이언트가 아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쏟아내고 싶었고, 낯선 도시에서의 도전이 쉽지는 않겠지만 더 늦기 전에 한번 시도해보자고 결심했죠.” 그렇게 결정한 파리행은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걸로 시작되었고, 10년이 지난 2017년부터는 본격적인 전업 아티스트로의 행보를 걷게 되는 성과를 이뤘다. 2012년부터 살기 시작한 이 집은 거주 공간이자 작업실로도 사용 중이다. 침실이 있어야 할 가장 큰 방을 아틀리에로 사용하고 대신 침실은 5층 다락방을 따로 임대해서 쓰고 있다. 4층에서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문을 잠그고 아파트 계단으로 한 층 올라가 5층 원룸에서 휴식을 취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거주 방식이지만 이 또한 아티스틱하다. 따로 작업실을 마련하지 않고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넓은 작업실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에요. 저도 최근 1년간 파리를 벗어나 좀 더 넓은 공간으로의 이사를 고민해봤는데 막상 집을 소개 받고 그곳을 방문했을 때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장소에서 혼자 동떨어져 지내는 것이 에너지 적으로 작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어요. 어떤 좋은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반면에 파리가 가진 장점이 오히려 나의 생활에 더 맞는다는 사실도 깨달았죠. 컬렉터들이 방문하기에도 편하고 사람들을 만날 때 이동 거리가 짧으니 당연히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요. 대신 파리에서 산다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정보와 인간관계의 연속이라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해요. 특히 아티스트는 밖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내면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 아파트는 작지만 식물을 키울 수 있는 발코니도 있고 공동 정원도 있어 가끔 이곳이 파리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저에겐 더없이 완벽해요.” 실내 건축가라는 이력 때문일까, 집을 채우고 있는 가구가 많지는 않지만 공간마다 놓인 작품들과 함께 모두가 조화롭고 아름답다. 작품이 가진 따뜻한 에너지가 집 안 분위기를 움직인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 그녀가 작업하는 과정과 재료를 살펴보면 이해가 간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하는 다니엘라는 정기적으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수집한 식물, 돌, 물, 흙 등을 작업실로 가져와 직접 손으로 안료를 제작한다. 이탈리아의 해변, 프랑스의 섬, 브라질 숲의 파편이 그렇게 그림에 담긴다. 이런 특별한 작업 과정과 창의적인 질감 표현법으로 완성된 작품은 마치 자연이 캔버스 위에서 살아 숨 쉬는 듯하다. 말린 식물, 돌, 아마존의 강물이 담긴 유리병이 가지런히 놓인 작업실은 신기하게도 어떤 화려한 장식품으로 꾸민 방보다 우아하고 편안하다. 어떤 사람은 예술가의 집답지 않게 너무 정리 정돈이 잘되어 있는 게 아니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는데, 그녀는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많지 않은 가구와 소품 모두 자연의 재료가 사용되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나무, 세라믹, 유리 등이 사용된 가구는 경매 혹은 앤티크 시장에서 구입했거나 선물 받은 것인데, 거실의 나무장과 커피 테이블에 담긴 사연이 재미있다. 이탈리아의 대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말년에 파리에 머물며 영화감독 안나 마리아 타토를 위해 마련한 집이 있다. 그 집이 매매 시장에 나오자 구입을 결심한 클라이언트가 다니엘라에게 실내 공사를 의뢰했고, 그 프로젝트를 통해 매도자인 안나 마리아 타토를 만나 함께 파스타를 요리해 먹으며 이탈리아 영화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던 놀라운 경험이 있었다고. 그리고 2년 후 집이 또다시 팔리게 되면서 당시 매도자가 된 클라이언트는 가구 두 점을 다니엘라에게 기념이라며 선물했다. 마스트로얀니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세상에 하나뿐인 가구를 클라이언트와의 특별한 인연으로 물려받게 된 것이다. “파리에 살면서 겪는 놀라운 일 중 하나는 상상도 못했던 인연이 생긴다는 거예요. 마스트로얀니가 사용했던 가구를 내가 물려받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문화의 중심지인 이곳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들어요. 물론 외국인으로서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그 시기를 잘 견디면 도시가 나를 받아들이는 타이밍이 오기 마련이에요. 파리 사람들은 호기심이 많거든요. 나처럼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게 열려 있고 궁금해해요. 그래서 그 순간 나도 열려 있다면 좋은 인연과 기회가 찾아온다고 믿어요.”
장소가 간직한 정신과 에너지, 내면성, 예술의 영원에 대해 탐구하는 다니엘라가 현재 집중하는 장소는 브라질 아마존이다. 그래서 지금 아틀리에 바닥에는 아마존의 파편이 숨 쉬고 있고, 벽의 큰 캔버스에는 아마존의 색이 울렁인다. 파리의 햇살을 받으며 캔버스로 옮겨지는 파편은 그대로 영속화되어 멈춘 시간 안에 머문다. 작가의 열망처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은 이렇게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