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틱한 글로벌 리빙숍 4

아티스틱한 글로벌 리빙숍 4

아티스틱한 글로벌 리빙숍 4

존재만으로 힘을 주는 오브제가 필요하다면 주목하자. 전통 기술과 현대 디자인의 경계를 허물고 아티스틱한 공예품을 선보이는 글로벌 리빙숍을 모았다.

 

더 뉴 크래프츠먼
The New Craftsmen

 

2012년 설립되어 영국과 아일랜드 기반의 컨템포러리한 공예품을 소개해온 더 뉴 크래프츠먼. 손으로 만드는 다양한 공예 유산을 존중하며 텍스타일, 가구, 도자, 조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티스트와 장인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해왔다. 2022년 11월, 국제적인 갤러리스트 사라 마이어스코프 Sarah Myerscough와 오랜 시간 더 뉴 크래프츠먼의 제품 디렉터로 활약해온 캐시 라쿠어 Kathy Lacour가 협업해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10년간 쌓아온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담아 독자적이고 혁신적인 공예 컬렉션을 소개하기로 한 것. 본격적인 컬렉션의 시작을 알린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2023 <Join, Assemble, Hold> 팝업 스토어에서는 두 가지 스타일의 모던 키친을 선보였다. 세라믹 타일로 유니크한 드링크 캐비닛을 완성한 매튜 로 Mattew Raw, 템스 강 주변의 지역 폐기물을 홍합 껍데기와 혼합해 유리 오브제로 탄생시킨 룰루 해리슨 Lulu Harrison 등 다재다능한 예술가를 소개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컬렉트 아트 페어 2023에서는 자연 소재에 집중한 바이오필릭 인테리어를 위해 ‘그로운 인 브리타인 Grown in Britain’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WEB www.thenewcraftsmen.com

 

NAILED PANTRY

 

비빙&헨스비 Bibbings&Hensby의 팬트리는 단순해 보이지만 손으로 다듬은 못과 나무를 사용한 독특한 캐비닛이다. 접착제나 복잡한 제조 과정을 단순화하기 위해 고민했던 두 사람은 18세기 못에 매료되었고, 여러 번 두들겨서 만든 불규칙한 쐐기 모양의 못을 이용해 단단한 캐비닛을 완성했다.

 

WELCOME DRINKS CABINET

 

 

핸드메이드 타일로 덮은 웰컴 드링크 캐비닛. 석탄의 매연으로 뒤덮인 도시를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벽면을 타일로 꾸몄던 영국의 기차역에서 영감을 얻었다. 손으로 색을 입히고 광을 내 불규칙한 타일 표면이 매력적이다. 병을 걸 수 있는 선반, 그릇을 수납할 수 있는 대형 서랍과 후면 거울 등 크기와 다양한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ANTICUUS CEILING LIGHT II

 

 

목공 스튜디오 애시&플럼 Ash&Plumb과 인테리어 디자이너 루이스 이스트, 더 뉴 크래프츠먼이 협력해 디자인한 천장 조명. 작업장 주변의 병들고 쓰러진 나무를 사용해 파손된 목재의 자연스러운 곡선을 장식적 요소로 활용했다.

 

피갈 마티뇽
Pigalle Matignon

 

피갈 마티뇽의 창립자 로라 볼므는 아티스트와 장인들의 가치를 존중하며 디자인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는 새로운 종류의 크래프트숍 피갈 마티뇽. 창립자 로라 볼므 Laure Baulme는 자신의 브랜드를 갤러리라 소개하며, 프랑스 예술가와 장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리빙숍이 아니라 아티스트와 장인을 지원하고 독점 계약으로 판매를 약속하며 오롯이 디자인 작업과 기술 개발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프랑스와 포르투갈 현지에서만 조달되는 재료를 이용해 소규모로 직접 제작하며, 제품의 소재부터 제조 과정, 유통까지 친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에코 디자인숍이다.

 

© Photos by Andrane de Barry for Pigalle Matignon

 

소규모의 한정 제작, 제품마다 번호를 매겨 작품처럼 소개하는 시스템은 아티스트와 고객 모두에게 가구 그 이상의 가치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앞으로의 디자인 방향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파리 디자인 커뮤니티 형성을 위해 전시와 행사, 디자이너 토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2022년 론칭한 신생 브랜드이지만 전 세계 디자인 애호가와 수집가를 끌어들이는 피갈 마티뇽의 매력에 주목해보자.

WEB www.pigallematignon.com

 

1 ETERNAL BREATH WALL LAMP

 

© Photos by Louise Skadhauge for Pigalle Matignon

 

손으로 직접 세라믹과 유리를 디자인하는 아만데 헤겐 Amande Haeghen의 이터널 브레스 월 램프. 유려한 곡선의 흰색 사암 도자기와 테라코타색 유리를 겹쳐 각도에 따라 다른 빛을 낸다. 유약을 바르지 않아 흙의 생생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살아있다.

 

2 COQUILE LAMP

 

 

마르세유 출신의 디자이너 레아 비고 Léa Bigot의 코킬 램프 Coquile Lamp. 프랑스 남부의 섬에서 자란 그녀는 바다의 에너지에서 영감을 얻은 세라믹 작품을 선보인다. 독학으로 배워 전통적인 기술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방식으로 흙을 만지는데, 내부에서부터 형태를 만든 하얀 셸 램프는 강인함과 우아함을 겸비했다.

 

3 GUÉRIDON ZIGGY SIDE TABLE

 

 

전직 건축가로 꼼꼼하고 세심한 작업이 특징인 헤르미넷 토리키안 Herminet Torikian의 게리동 지기 Guéridon Ziggy 사이드 테이블. 블록을 쌓은 듯 투박한 디자인 위로 줄무늬를 입혀 섬세함을 더했다. 전통적인 상감 세공을 새롭게 재해석한 그녀만의 작업 방식은 눈여겨볼 만하다.

 

폴스포튼
Polspotten

 

 

창의적이고 과감한 아이템을 선보이는 네덜란드 리빙숍 ‘폴스포튼’. 1986년 창립자 에릭 폴 Erik Pol이 지중해의 테라코타 도자기를 수입하던 회사에서 시작해 즐겁고 아티스틱한 공예 제품을 소개하는 리빙숍으로 성장했다. 멀리 항해하는 이들의 후손답게 호기심 넘치는 유니크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아티스트 한스 반 벤템 Hans van Bentem, 전위적이고 컨템포러리한 세라믹 아트를 선보이는 노르만 트랩맨 Norman Trapman 등 네덜란드 로컬 디자이너부터 글로벌 아티스트까지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위트 넘치는 컬렉션을 선보인다.

 

생생한 컬러와 위트 넘치는 아이디어로 꾸민 폴스포튼 2023 컬렉션.

 

또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소재와 제품 생산까지 꼼꼼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네덜란드 현지 재료를 사용하며, 최소한의 운송으로 배기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생 재료인 점토로 제작하는 세라믹 제품을 대표 아이템으로 선보이는 것 역시 폴스포튼만의 지속가능한 실천 방법이다. 현재 본사가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브랜드 스토어는 잠시 문을 닫았으며, 올가을 새로운 오피스와 리빙 스토어를 오픈할 예정이다.

WEB www.polspotten.com

 

1 PUFF LOUNGE CHAIR

 

 

폭신함을 자랑하는 볼드한 디자인의 퍼프 라운지 체어. 젤리 같은 팝한 컬러로 휴식이 필요한 공간을 에너제틱하게 채워준다.

 

2 ZIG ZAG STOOL

 

 

재밌는 장난감처럼 시각적인 재미를 더하는 지그재그 스툴. 의자나 침대 옆 어디에 두어도 매력 넘치는 아이템이다.

 

3 MELON VASE

 

 

부드러운 곡선 형태의 멜론 베이스. 올리브 그린과 라이트 핑크 두 가지 컬러로, 네덜란드 최초의 테라코타 베이스를 밝은 컬러의 유리 베이스로 재해석했다.

 

어 뉴 트라이브
A New Tribe

 

매장에 들어서면 벽면을 가득 채우는 큼지막한 모로칸 러그와 이국적인 베이스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런던의 힙스터들로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루는 콜롬비아 플라워 마켓. 신문에 둘둘 만 꽃다발을 든 디자이너들이 꼭 한 번씩 거쳐가는 리빙숍 ‘어 뉴 트라이브’를 기억하자. 2016년 문을 연 이곳은 엘라 존스 Ella Jones가 전 세계 독립 디자이너, 장인들과 협업한 리빙 셀렉션을 선보인다. 체크무늬 패턴의 바닥 타일과 빈티지한 가구, 햇빛이 드는 천창 아래 벽면을 가득 채우는 큼지막한 러그 컬렉션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베니 워레인 Beni Ourain, 부야드 Boujad, 아지랄 Azilal의 모로칸 장인들과 함께 작업해, 독특한 모로코 러그 소싱을 전문으로 한다. 독창적인 디자인의 홈 액세서리도 가득하다. 마라케시 감성을 담은 로렌스의 세라믹, 위트 있는 그래픽 디자인의 BFGF 블랭킷, 볼드한 테라코타 화병을 만드는 콰지 디자인 Quazi Design 등 다양한 컬트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최근 어 뉴 트라이브 아틀리에를 론칭하며 독자적인 컬렉션 제품도 제작하고 있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RRRES, 이탈리아 디자이너 나타사 마데이스키, 프랑스 마르세유의 메모리 스튜디오 등 국적을 넘나드는 다양한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으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유니크한 오브제를 만날 수 있다.

WEB anewtribe.co.uk

 

BAMBA VASE

 

 

남아프리카 브랜드 콰지 디자인의 밤바 베이스. 에스와티니 현지 여성들과 함께 수작업으로 만들며, 투박하지만 테라코타 본연의 따뜻한 색감을 담았다. 폐잡지와 신문을 사용한 페이퍼 마셰 소재로 만들어 생분해되는 재활용 베이스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MORACCAN BOUJAD RUG 0919

 

 

어 뉴 트라이브의 대표 아이템 중 하나인 모로칸 러그. 특히 모로코 부야드 부족이 수작업으로 제작한 부야드 러그 0919는 독특하고 추상적인 드로잉 패턴이 특징이다. 부드러운 크림색 양모 위로 오렌지와 핑크색, 포인트로 보라색을 더해 아트피스로 벽에 걸어도 훌륭하다.

 

TIMUKTU WIDE VASE

 

 

마라케시의 세라믹 브랜드 부흐라 부두아 Bouchra Boudoua의 팀묵투 와이드 베이스 Timuktu Wide Vase. 대칭적인 전통 아랍 문양을 그리는 모로칸 도자기에서 탈피해 자유로운 붓 그림으로 작업했다.

CREDIT

에디터

TAGS
사랑을 담아서

사랑을 담아서

사랑을 담아서

그림에 사랑과 위트를 담아내는 스토리텔러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섭섭. 그는 어렸을 적 품었던 순수한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다리에 실을 감싼 스툴과 뜨개 연필꽂이는 스튜디오 래드 Lad를 이끌고 있는 홍범석 작가의 작품.

 

오리 친구들과 함께하는 생일 파티, 수영장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이들, 동물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따뜻한 크리스마스. 그림에 담긴 귀여운 요소를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간지러운 감정이 샘솟는 기분이다. 자꾸만 피식피식 웃음 짓게 만드는 이 장면들은 일러스트레이터 섭섭이 그린 것이다. 시각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실무 위주의 딱딱한 수업이 지루하게 느껴졌고 자유로이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펼쳐내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2015년쯤 용돈 벌이를 위해 캐리커처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그린 결과물을 하나 둘씩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고 자연스레 일이 들어오더라고요.”

순수한 어린아이의 모습, 둥근 곡선, 따스한 파스텔 톤의 색감이 섭섭 작가의 작품 세계를 정의하는 단어다. 그리고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에 결코 억지스럽지 않은 위트 한 방울을 톡 떨어트려 절로 기분 좋게 만든다.

 

일러스트레이터 섭섭은 주로 손 그림이나 아이패드를 활용한 디지털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 제가 관심 있는 게 위트와 큐티거든요(웃음). 당구대 그림으로 예를 들자면, 포켓볼을 칠 때 마지막에 넣는 공이 검은색 8번 공이잖아요. 한쪽에는 하트 모양으로 당구공을 그리고 그 옆에는 8번 공을 그렸어요. ‘내 마지막 목표는 사랑이다’라는 비유와 은유를 적절하게 녹인 거예요. 이파리에 ‘응, 아니’를 적어둔 작품은 어렸을 적 이파리를 하나씩 떼면서 ‘사랑한다, 아니다’ 했던 기억이 누구나 있잖아요. 그때의 추억과 공감을 상기시키고 싶었어요. 또 ‘미안’이 적힌 사과를 건네며 용서를 비는 어린아이 그림은 말장난하듯 귀엽게 접근해본 거예요.”

 

원목 조각을 그린 스케치.

 

종이 그림이나 디지털 작업 말고도 사람들과 교류하는 그의 소통 방식은 다양하다. 약 1년 6개월 동안 개발자와 함께 공들여 기획한 웹사이트 역시 작품의 일부. 조아도 섭섭(www.joadosubsub.com)이라는 이름의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그가 만든 가상의 건물 두 채가 나타난다. 다섯 개의 방과 팝업 스토어, 광고판, 오픈 예정인 옥상 테라스와 수영장으로 구성된 조아도 맨션과 조아도 볼룸 Ballroom에 누구나 입장할 수 있다.

 

 

“조아도 맨션의 1층에 자리한 ‘섭섭 룸’에서는 제가 그려놓은 캐릭터에 옷을 입히거나 이모티콘을 붙여보고 이를 스크린샷 해서 바탕화면으로 활용할 수 있어요. 일종의 인터랙션 아트인 셈이죠.” 섭섭이 설명했다.

또 캐리커처로 시작했던 과거를 리마인드하며 진행한 작업도 있다. 조아도 볼룸에는 NFT로 판매한 캐릭터(그림을 구입한 실제 고객의 모습을 그대로 본떠 그린 캐릭터)들을 입주시켰다. 캐릭터를 구입한 주인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의 캐릭터를 구경할 수 있으며, 핸드폰 배경화면이나 명함 등 개인적으로도 이를 활용할 수 있다.

 

한남동에 위치한 작업실 겸 집.

 

이뿐만 아니다. 길거리에 흔히 보이는 경고 문구나 표지를 새롭게 꾸며 딱딱한 문구를 위트 있게 재해석하는 작업도 한다. 예를 들어, 아파트 벽면에 붙인 금연 경고문에 담배를 피우는 상황을 재미있게 그리는 등 보기 싫은 공공 안내문에 한번이라도 더 눈길이 갈 수 있게끔 유도하는 공공미술도 도전하고 있다. 언젠가 길을 걷다 마주치게 될 그의 위트 있는 그림과 조아도 맨션의 빈방에 입주하게 될 재미난 것들이 기대된다.

 

SPECIAL GIFT

 

 

섭섭 작가에게 증정한 끌레드뽀 보떼의 더 세럼은 피부 본연의 힘을 일깨워 생기 있고 매끄러운 피부를 완성시켜준다. 또한 피부에 고르게 퍼지고 빠르게 흡수되어 24시간 보습 효과를 유지시키고 피부의 길을 열어 다음 단계 제품의 흡수를 높여준다. 50ml, 30만원.

CREDIT

에디터

photographer

이현실

TAGS
진정성의 미학

진정성의 미학

진정성의 미학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미학을 널리 알리는 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태오양 스튜디오의 양태오 대표. 한국의 지역성과 전통성의 부재 속에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 세대에 작은 영감이 되고자 앞장서는 그를 만났다.

 

예올과 샤넬의 프로젝트 전시에서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된 화각장 한기덕과 젊은 공예인에 선정된 김동준 도자 공예가의 합작품.

 

지난 프리즈 서울 위크 동안 굉장히 바쁘셨다고요.

프리즈와 키아프를 제외하고도 관련된 전시가 세 개였어요. 예올과 샤넬이 함께한 프로젝트 전시, 호림아트센터에서 열린 <조선 양화> 전시 그리고 프리즈 기간에 글로벌 아트 회사 LVH 창립자인 로랑스 반 하겐 Lawrence van Hagen의 컬렉션 전시가 제 북촌 한옥에서 열렸죠. 제가 프리즈 위원회 멤버라 해외 VIP분들에게 한국의 미학에 대해 설명해야 했는데요. 노먼 포스터도 그중 한 명이었어요. 제가 설계에 참여한 타데우스로팍 갤러리 설립자와도 굉장히 친분이 깊어서 한국에 오셨죠. 무려 30년 만의 한국 방문이라고 하더라고요. 한옥에 대해 저만큼이나 알고 계셔서 참 인상 깊었어요. 현대미술의 큰 흐름 가운데 우리 공예와 철학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정말 감사하고 의미 있는 한 주였습니다.

 

양태오 대표가 디렉팅한 호림아트센터 <조선양화>전의 한 공간. 산의 지형을 살려 계단식 정원을 만들고 꽃과 괴석을 배치하는 전통 정원 양식인 화계를 재해석했다.

 

예올×샤넬 프로젝트 전시 <우보만리 : 순백을 향한 오랜 걸음> 전시의 총괄 및 작품 협업에 참여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이었나요?

지난해 예올 20주년 특별 전시를 총괄한 인연으로 올해 예올×샤넬 프로젝트의 총기획자를 맡게 됐어요. 전체적인 전시 구성부터 주제, 작가 선정에도 참여했죠. 선정된 작가들의 작업을 면밀히 검토하고 동시대성을 가질 수 있도록 장인들에게 디자인을 제안했어요. 초기 전시 기획 단계에는 정말 많은 전문가가 참여했는데요. 저도 그분들 앞에서 최소 다섯 차례나 프레젠테이션을 했어요. 작품의 렌더링을 보여주며 디자인을 왜 바꿨는지, 어떤 가능성을 찾으려 하는지, 이 전시를 통해 어떤 장르를 개척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득한 거죠.

 

북촌 한옥에서 만난 양태오 대표.

 

올해의 장인으로 화각장 한기덕과 젊은 공예인에 김동준 도자 공예가가 선정됐죠?

화각 공예는 소뿔을 얇게 갈아 그 위에 오방색으로 그림을 그리는 전통 기법인데요. 저희는 색채를 다 빼고 담백하게 가는 걸 제안했어요. 아마 장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미완성의 상태처럼 느끼셨을 거예요. 일반적으로 소뿔에는 패턴이 있는데, 화각 공예에서는 패턴을 제외한 하얀 부분만 사용해요. 저희는 소의 성장통을 담은 패턴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그림보다는 화각 자체의 물성에 포커스를 맞춰봤어요. 대신 옻칠과 먹칠로 음영을 더했죠. 조명, 사이드 테이블, 장, 함, 도시락통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어요.

 

 

한평생 같은 작업을 이어온 장인을 설득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네, 맞아요. 새로운 시선을 제안하는 거라 장인들이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세요. 저희가 물론 그걸 강요할 수는 없죠. 한기덕 장인은 중간에 못 하겠다고까지 하셨는데, 다행히 전시 오픈날 화각에 새로운 장르가 개척됐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모든 작품이 완판됐고요. 오방색이 없는 화각의 자립, 소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전시라는 긍정적인 피드백도 받았고요. 반대로 젊은 공예인의 작품에는 저희가 전혀 디자인에 관여하지 않아요.

 

예올과 샤넬의 프로젝트 전시에서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된 화각장 한기덕과 젊은 공예인에 선정된 김동준 도자 공예가의 합작품.

 

호림아트센터에서 11월 30일까지 열리는 <조선 양화> 전시도 무척 인상 깊었어요. 굉장히 입체적이었달까요.

전체 기획은 호림에서, 저희는 공간 기획을 맡았어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암수록>과 <양화소록> 두 권의 원예서에서 전시가 출발해요. 조선인들은 꽃과 나무를 통해 다채로운 창작과 깊이 있는 철학을 만들어냈거든요. 단순히 모양과 색과 그림이 아름다운 도자기를 넘어 그 이면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죠. ‘작은 사물을 통해 이치를 깨닫는다’는 격물치지 格物致知라는 말이 있거든요. 그걸 아우르는 자연과 우주,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고자 노력했는지 방법론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사실 이 전시는 현대인들에게 반문하는 전시이기도 해요. 많은 이가 코로나19 동안 나무와 식물을 집에 들이곤 했잖아요. 그것들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가는 사고를 했냐는 거죠.

 

태오양 스튜디오는 타데우스로팍 갤러리 서울의 전반적인 공간 디자인을 맡았다.

 

이스턴에디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최근 LA에 새로운 쇼룸을 오픈하셨죠?

너무나 감사하게도 해외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요. 저희 스튜디오가 ‘아키텍처럴 다이제스트(AD)’에서 한국인 최초로 세계 100대 디자이너에 선정되어서 그 타이틀 덕분에도 많은 분이 찾아주세요. 전 세계의 취향 좋은 사람들도 우리 한국의 미학과 미감을 좋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이스턴에디션은 가구를 통해 늘 새로운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것 같아요.

앞에 놓인 이 이스턴에디션 테이블도 한국 전통 소반과 목가구에 쓰인 물림이라는 기법 등을 동시대적인 소재로 표현한 디자인이에요. 곧 컵을 출시하는데요. 주위에 널린 게 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국 도자 역사와 우수성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사실이 정말 아쉽더라고요. 토기, 도기, 고려청자, 분청사기, 조선백자 등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담은 네 개의 도자 컵 세트를 만들었어요.

 

북촌에 자리한 양태오 대표의 집. 소파 앞에는 전통 소반과 목가구에 쓰인 물림 기법을 녹여낸 이스턴에디션 테이블을 배치했다.

 

최근 장 미셸 오토니엘 작품을 들이셨다고 들었어요.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컬렉팅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오토니엘은 덕수궁 전시를 계기로 연이 닿았는데, 감사하게도 커미션 작품을 받게 됐어요. 컬러도 제안을 해주었죠. 저는 자신이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보고 싶은 거만 보거든요. 미술을 통해 그 시선이 확장됨을 느껴요. 제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와 인지하지 못했던 가치를요. 위대한 작가들의 시선을 통해 하나의 컬렉션을 들일 때마다 제 작업물이 바뀜을 느껴요. 저의 마음과 의식의 확장을 위해 컬렉팅하고 있어요. 그래서 작품을 들이기 전에 작가의 철학과 세계관을 알려고 노력하죠.

 

장 미셸 오토니엘로부터 받은 새 커미션 작품인 벽돌 탑. 사진제공: 태오양 스튜디오

 

이렇게 바쁘게 지내는데, 번아웃은 없으세요?

없어요. 왜냐하면 저의 미션을 아직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21세기 서울, 한국에서 살아가는 디자이너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구체화하는 데 10년이 걸렸어요. 이제는 태오양 스튜디오가 한국의 전통성을 자원화해서 미래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은 조금 인지하시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마치 한옥을 재현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였거든요. 왜 집에서 한복 안 입고 있냐고 물어보시기도 했으니까요. 일본은 와비사비와 젠 Zen이 있어요. 철학에 가까운 미학을 공간에 대입한 작가와 디자이너들이 있잖아요. 그들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됐고, 일본은 그 문화에 편승해서 엄청난 이익을 창출하고 있어요. 저는 사실 한국에도 그런 문화를 만드는 것이 다음 세대와 디자이너를 위해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래서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고민을 많이 해요.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는 과정이 디자이너한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는 일이 무엇이다라는 걸 알았으니 그 이후에는 그걸 시각화하고 잘 정리하는 데 5년에서 10년이 걸리지 않을까요?

 

3~5세기에 만든 삼국시대의 토기와 이우환 작가가 1917년에 그린 작품을 매치했다. 토기에 그려진 선과 이우환 작가의 선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진제공: 태오양 스튜디오

 

결국 모두 한 결이네요.

맞아요. 공간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가구도 하고, 화장품(이스라이브러리)도 하고, 향수(시낭)도 하냐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성에서는 단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어요. 프로젝트를 셀렉트할 때 그 기준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근데 종종 프로젝트를 가린다는 오해를 많이 받기도 했죠. 그래서 사적인 프로젝트는 잘 안 하는 편이에요. 기업에도 제 방향성에 대해 설명하면 다들 이해해주세요. 공간을 예쁘게 만드는 건 당연하고, 사람들에게 공간이라는 도구를 통해 무엇을 전달할지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진정성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거죠.

 

강원도 양양의 설해원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단독주택형 별장 설해별담에 배치한 이스턴에디션의 가구. 사진제공: 태오양 스튜디오

 

조심스러운 질문인데, 왜 한국에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스타 디자이너나 건축가가 없을까요?

승효상 선생님이나 원오원의 최욱 소장님 등 실력으로 말이 필요 없는 분이 많거든요. 저희 윗세대만 해도 자신을 드러내는 건축가가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겸손한 덕목, 자신을 낮추는 자세 때문에 덜 알려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분들의 작업을 보고 반하지 않을 사람은 없거든요. 앞으로 점차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반기 계획이 궁금하네요.

곧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파인드 디자인 페어에서 특강이 있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디자인 학교에서 특강과 워크숍이 있어요. 스위스 대사관에서도 디자인 토크가 있고요. 9월 하반기에는 제가 총괄하는 서울뷰티위크도 열리고요. 11월에는 아트부산에서 개최하는 아트 페어인 디파인 서울도 열려요. 그 사이사이에 공간 프로젝트 여덟 개가 함께 돌아가고 있고요. 번아웃이 올 틈이 없죠(웃음).

CREDIT

에디터

photographer

이현실(인물 및 한옥)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