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안 디자인 스튜디오 감프라테시가 한국에 새로운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동서양의 융합을 넘어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잇는 아시아의 허브가 될 감프라테시앤피의 이야기.
한국 전통 미를 더하기 위해 창호 디테일을 가미한 스튜디오 전경.
덴마크 출신 스티나 감, 이탈리아 출신 엔리코 프라테시가 2006년 함께 만든 디자인 스튜디오 감프라테시.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미학을 근간으로 에르메스, 구비, 프리츠한센, 뱅앤울룹슨, 리네로제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해왔다. 이번 겨울 그들은 한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폴씨, 정박스튜디오의 박정언 디렉터와 함께 신사동에 새로운 스튜디오 감프라테시앤피 GamFratesi&P를 오픈했다. 덴마크 코펜하겐과 서울을 잇는 그야말로 해가 지지 않는 스튜디오다. 디렉터이자 공동대표인 엔리코 프라테시, 폴씨, 박정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스튜디오 곳곳에서
감프라테시가 디자인한 제품과 가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스튜디오 곳곳에서
감프라테시가 디자인한 제품과 가구들을 발견할 수 있다.
감프라테시앤피에 대해 말하기 전에 폴씨가 설립한 빔 인터랙티브에 대해 먼저 들어야 할 것 같다. 국내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의 선구자 격이 아닌가?
폴씨 2000년쯤부터 꾸준히 미디어 작업을 해왔다. 특히 리테일 스페이스 미디어 작업이 많았는데, 예를 들면 신세계 스타필드, 코엑스 등 대형 몰의 미디어 작업이나 인천국제공항 터미널의 공공미술 디지털 아트워크 등이다. 4~5년 전부터는 디지털 아트 쪽으로 포커싱을 하면서 폴씨의 개인 작업과 전시도 꾸준히 진행해왔다. 청주 시립미술관, 아난티 공공미술작업 등 디지털 아트가 가미된 공간이나 오브제 작업이 대표적이다.
박정언 디렉터는 감프라테시와 깊은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박정언 한국에서 SWNA를 다니다가 2015년부터 덴마크 감프라테시 스튜디오에서 6년 정도 일했다. 스튜디오 규모가 크지 않아서 PM으로 소품이나 오브제부터 공간 디자인까지 다양한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특히 부부 이야기를 비주얼로 옮기는 작업을 많이 했다. 3년 전 한국으로 돌아와 정박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프리랜서로 감프라테시의 아시아 쪽 업무를 함께 했다.
감프라테시앤피의 로고.
설립 배경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시작은 어땠는가?
폴씨 박정언 디렉터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면서 알게 되었다. 2022년 DDP에서 개인전을 크게 했는데, 그때를 계기로 로얄코펜하겐 전시의 미디어 작업을 함께 했다. 감프라테시도 로얄코펜하겐과 드로잉 작업을 협업할 때였는데 그때 인연으로 서로의 작업을 알게 됐다. 엔리코도 공간에 디지털 작업을 입힘으로써 새로운 뉘앙스와 가능성을 알게 됐다고 하더라. 지난해 감프라테시가 리빙 페어 강연자로 초청돼 한국에 왔을 때 직접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게 시작인 것 같다.
협업 개념을 넘어 한 회사를 차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폴씨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 있었다. 장인을 떠오르게 하는 섬세한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정수와 디지털 디자인의 만남이라니. 엔리코도 내가 일반 디지털 분야가 아닌 공간과 오브제적이고 조형적인 디자인이 섞여 있는 작업을 많이 해온 부분에 매력을 느낀 것 같다. 작게라도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세 팀이 각자 출자해서 설립하게 됐다. 우리 모두 불가능한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개척하려는 정신이 있다.
에르메스 암스테르담 플래그십 스토어의 윈도 디스플레이 작업.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감프라테시앤피의 첫 결과물이다.
디자인을 보면 감프라테시가 평소 동양에 관심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엔리코 그렇다. 스티나와 나는 동양적 미에 관심이 많다. 스티나는 일본에서 건축가로 1년을 살았다. 아시아의 미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소재와 그것을 대하는 방식에서 서양의 미와는 다른 대비감이 있다. 우리는 대비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특히 선호한다. 이 아름다움은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사무실 분위기도 스칸디나비안과 동양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폴씨 인테리어는 엔리코와 함께 디자인했다. 원하는 공간을 찾기 위해 3~4개월 돌아다닌 것 같다. 깔끔한 콘크리트 벽체가 마음에 들어 신사동의 이 공간을 택했다. 밝은 우드 톤 가구들을 배치하고 한국적인 미를 더한 창호를 덧대 위트를 녹였다. 가구는 감프라테시가 디자인한 구비 제품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기도 하지만 아날로그와 기술의 만남인 것 같다.
박정언 작업을 함께 하고 각자의 감도를 알아가게 되면서 우리들이 만나면 어떤 시너지가 날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각자의 도구만 다를 뿐 사물을 보는 본질적인 눈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메시지를 감프라테시는 공예와 소재를 통해 풀어내고, 폴씨는 영상이나 기술을 통해 푸는 것이다.
에르메스 암스테르담 플래그십 스토어의 윈도 디스플레이 작업.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감프라테시앤피의 첫 결과물이다.
첫 프로젝트로 에르메스의 윈도 디스플레이를 디자인했다고 들었다.
박정언 에르메스 암스테르담 플래그십 스토어는 매 시즌 아티스트를 초청해서 디스플레이를 꾸민다.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종이를 사용해야 하고, 크래프트맨십과 아트적으로 풀어내야 하며, ‘놀라움’이라는 주제에 걸맞아야 했다. 우리는 파리에서 암스테르담까지 에르메스의 제품과 꿈을 싣고 오는 마차를 제안했다. 마차 안쪽에서 바라보는 암스테르담의 풍경과 스토리를 영상으로 흐르게 했는데, 종이 질감이 느껴지는 미디어 작업으로 디테일을 더했다. 그 외에도 말의 귀나 꼬리가 움직이는 키네틱을 가미해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물을 도출해냈다.
물리적인 거리가 있을 텐데, 불편한 점은 없는가?
박정언 덴마크와는 시차가 8시간 정도 난다.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은 한국 시간으로 자정쯤이다. 시차에서 오는 수고스러움은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한다고 본다. 모두가 디렉터인지라 여전히 밤늦게까지 스케치를 한다. 반면 좋은 점도 있다. 한국에서 작업한 결과물을 덴마크로 넘기면 그쪽에서 바로 작업해 결과적으로 프로젝트가 24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셈이다.
감프라테시앤피를 통해 가장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가?
폴씨 각자 분야에서 메이저로 활동 중이라 그에 대한 소통과 존중을 기반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도 몇몇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협업의 영역은 굳이 한정 짓지 않으려고 한다. 크리에이티브한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모든 것. 엔리코 우리는 감프라테시가 가진 물리적 조형미에 폴씨가 가진 디지털 미감이 더해져 멋진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본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의 역량을 활용해 전통에서 현재까지 매우 현대적인 방법으로 아우를 수 있다. 이는 공간이라는 큰 스케일부터 오브제, 미디어까지 다양하게 접근이 가능하다.
감프라테시앤피 공동대표인 폴씨, 박정언, 엔리코 프라테시.
사진제공: GamFrates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