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망 시대의 아파트

데코레이터의 오스망 스타일 인테리어

데코레이터의 오스망 스타일 인테리어

 

데커레이터 사라 자퀸은 오스망 시대의 아파트를 가족을 위한 안식처로 만들었다. 원래의 모습은 보존하면서 집 안 곳곳에 서로 어울리지 않는 모티프와 컬러를 조합해 독창적인 분위기를 완성했다.

 

카나페 ‘파차 Pacha’는 PH 컬렉션, 카나페를 커버링한 패브릭 ‘리볼리 Rivoli’는 마누엘 카노바스 Manuel Canovas. 쿠션은 르 몽드 소바주 Le Monde Sauvage. 패턴 있는 쿠션은 제인 처칠 Jane Churchill이 콜팩스&파울러 Colefax&Fowler를 위해 디자인한 패브릭 ‘거쉰 Gerswin’으로 만들었다. 둥근 암체어 ‘밤부 Bamboo’는 PH 컬렉션. 암체어를 커버링한 패브릭은 마누엘 카노바스의 ‘비오트 Biot’. 맞춤 제작한 태피스트리는 툴르몽드 보샤르 Toulemonde Bochart. 윌리엄 플래너 William Platner의 낮은 테이블은 놀 Knoll. 그 위에 있는 꽃병 ‘마달레나 Madalena’는 마고 켈러 컬렉션스 Margaux Keller Collections. 볼 ‘스캄폴리 Scampoli’는 루즈 압솔뤼 Rouge Alsolu. 망고나무로 만든 테이블은 메종 뒤 몽드 Maison du Monde. 1960년대 이탈리아 거울은 생투앙의 라틀리에 55 L’Atelier 55에서 구입. 벽난로 위에는 카를로 나손 Carlo Nason의 빈티지 조명, 입키 Ibkki 꽃병, 메종 사라 라부안 Maison Sarah Lavoine의 촛대를 놓았다. 펜던트 조명 ‘샹들리에 베르비에 L Chandelier Verbier L’은 아이크홀츠 Eichholtz. 그림은 타우바 사르나카 Tauba Sarnaka의 작품. 벽에 칠한 페인트 ‘암모나이트 Ammonite n° 274’는 패로&볼 Farrow&Ball.

 

이 곳은 사라 자퀸과 남편이 꿈꾸던 바로 그 집이다. 몰딩과 나무 바닥재, 벽난로라는 3요소를 갖춘 오스망 시대의 아파트. 그런데 전부 다 그렇지는 않다. 바닥이 1900년 파리세계박람회에서 나온 마호가니를 사용한 전통적인 쉐브론 패턴으로 마감돼 있는데 이런 디테일이 분위기 전체를 바꿔버린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바닥에 특이한 붉은 톤을 주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학자에서 데커레이터가 된 사라의 마음에 꼭 들었다.

 

부엌 가구에 칠한 페인트는 리틀 그리니 Little Greene의 ‘폼페이언 애시 Pompeian Ash’, 황동 손잡이는 라 퀴진 프랑세즈 La Cusine Francaise. 그릇장은 황동과 유리로 맞춤 제작했다. 수전은 마고 Margot. 조리대와 아일랜드는 대리석 가공장 파코 Paco의 와일드 시 Wild Sea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높은 의자 ‘프리다 Frida’는 맘보 언리미티드 아이디어스 Mambo Unlimited Ideas. 푸드 프로세서는 키친에이드 KitchenAid. 유리병은 이케아 Ikea. 황동 트레이는 모노프리 Monoprix. 찻주전자 ‘페코에 Pekoe’는 레볼 Revol. 벽에 칠한 페인트는 패로&볼의 ‘라이트 블루 Light Blue n° 22’.

 

“블루는 드물게
싫증 나지 않는 컬러예요.
정말 마음이 편안해지는 색이죠.”

 

“맞춤 제작한 가구가 많아요. 가구를 다양하게 배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요.” 테이블 ‘스크랩우드 Scrapwood’는 피트 하인 이크 Piet Hein Eek, 사라가 고른 색으로 제작한 유일무이한 가구다. 벨벳 의자와 펜던트 조명 ‘카루셀 Carousel’은 맘보 언리미키드 아이디어스. 태피스트리 ‘글리프 Glyphe’는 툴르몽드 보샤르. 대리석 벽난로를 둘러싼 책장은 MS 에베니스테리에 MS Ebenisterie에서 맞춤 제작했다. 책장에 칠한 페인트는 패로&볼의 ‘헤이그 블루 Hague Blue’. 패브릭 커튼 ‘메네르브 Menerbes’는 피에르 프레이 Pierre Frey. 벽난로 위에 있는 꽃병은 자라 홈 Zara Home. 촛대 ‘오노린 Honorine’과 ‘파니스 Panisse’는 마고 켈러 컬렉션스. 테이블 위에 있는 유리 촛대는 더 쿨 리퍼블릭 The Cool Republic, 찻주전자와 찻잔 ‘페코에’는 레볼. 벽에 칠한 페인트는 패로&볼의 ‘암모나이트’.

 

265㎡인 이 집의 매력에 빠진 부부는 단점도 파악했다. 한번도 바뀐 적 없는 구조와 집 안쪽에 있는 사무 공간 그리고 부부와 세 명의 아이에게는 부족한 욕실의 수와 크기. 그래서 ‘실용성을 높이기 위해’ 집의 도면을 완전히 바꾸었다. 부부를 위한 욕실과 아이들을 위한 욕실을 구분해 만들었고, 부엌을 원래 다이닝룸이었던 곳으로 옮겨 거실과 가깝게 배치했다. 까다로운 사라는 오스망 스타일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존하면서 이를 새롭게 창조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 데커레이션을 즐겼다.

 

“컬러의 조화와
모티프 사용에
일관성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웠어요.”

 

침대 헤드보드는 사라가 디자인하고 MS 에베니스테리에에서 제작했다. 헤드보드를 커버링한 패브릭 ‘마디나 Madina’는 마누엘 카노바스. 벽에 칠한 페인트는 패로&볼의 ‘드롭 클로스 Drop Cloth’. 침구 ‘륀 Lune’, 와플 리넨 담요 ‘오와카 Owaka’와 ‘나플 Naples’, 벨벳 쿠션 ‘고아 Goa’는 모두 르 몽드 소바주. 침대 옆 거울 테이블은 메종 뒤 몽드. 테이블 조명은 굿무드 Goodmoods, 조명갓은 콜팩스&파울러의 ‘판테라 친칠라 Panthera Chinchilla’로 제작했다.

 

정갈한 욕실 바닥은 세라믹 사암으로, 벽은 젤리주 방식으로 제작한 타일(쉬르파스 Surface)로 마감했다. 수전과 황동 수건 히터는 마고. 욕실 타월은 르 자카드 프랑세 Le Jacquard Francais. 욕조 ‘워세스터 Worcester’는 빅토리아+알버트 Victoria+Albert. 벽에 칠한 페인트는 패로&볼의 ‘암모나이트 n° 274’.

 

“이 집은 원래 완전히 중립적이었어요. 어떠한 장식도 없었고, 구조도 너무 일반적이었어요. 저는 이곳에 컬러와 모티프를 주고 싶었지만 순수한 선은 그대로 두고 싶었어요. 이 집이 클래식을 유지하면서 일종의 캐릭터를 갖기를 바랐기 때문이에요.” 사라는 밝고 뉴트럴한 톤으로 블루를 메인으로 하는 집의 짙은 톤을 바꾸었고 태피스트리와 18세기의 전통적인 장식과 윌리엄 모리슨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은 벽지로 다양한 모티프를 적용했다. 그리고 벨벳과 황동 위주의 내추럴한 소재를 더했다. “잡다한 것 말고 전부 좋아요!” 진정성에 뿌리를 둔 모던한 데코 프로젝트다.

 

“벽에 발랐을 때 인테리어를
좀 더 시적으로 만들어주는
벽지를 정말 좋아해요.”

 

사라는 방마다 각기 다른 14가지가 넘는 벽지를 사용했다. 이 방에는 하우스 오브 해크니 House of Hackney의 ‘가이아 Gaia’. 카나페 ‘리코 Rico’는 펌 리빙 Ferm Living. 그 위의 벨벳 쿠션 ‘고아’는 르 몽드 소바주. 태피스트리 ‘콜라주 Collage’는 툴르몽드 보샤르. 높은 타부레 ‘볼 Ball’은 폴포탕 Polspotten. 그 위에 있는 테이블 조명 ‘팬톱 Pantop’은 베르너 팬톤 Verner Panton 디자인으로 베르판 Verpan. 벽 아랫부분에는 패로&볼의 ‘라이트 그레이 Light Gray’, 벽에는 ‘암모나이트 n° 274’를 칠했다. 황동과 유백색 유리로 된 1950년대 벽 조명은 셀랑시 Selency에서 구입.

 

ETC.

EDITOR 샤를로트 바이유 Charlotte Bailly

 

 

 

CREDIT

editor

크리스틴 피로 에브라 Christine Pirot Hebras

photographer

프랑시 크리스토가탱 Frenchie Cristoga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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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헤리티지

피에르 폴랑의 디자인 유산

피에르 폴랑의 디자인 유산

 

모더니즘 가구의 대명사 피에르 폴랑의 유산이 이어지는 공간 속으로.

 

1969년 10월 국가에서 관리하는 가구 수납고인 모빌리에 나쇼날 Mobilier National을 방문한 조르주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은 이탈리아가 모던 가구 시장을 독점하지 않도록 프랑스도 디자인 연구에 집중할 것을 당부하면서 엘리제 궁에서 사용할 새로운 가구를 의뢰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엘리제 궁 1층을 새롭게 단장할 가구 디자이너가 공식적으로 선임된다. 그가 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모더니즘 가구의 대명사 피에르 폴랑 Pierre Paulin이다. 비록 2009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수 많은 디자인은 그의 아내 마이야 폴랑과 아들 벤자민 폴랑 그리고 며느리인 알리스 르모안이 이끄는 가족 프로젝트 ‘폴랑 폴랑 폴랑 Paulin Paulin Paulin’에 의해 2013년부터 지속적으로 생산과 보존이 유지되고 있다.

 

빅 Big C 소파, 문 Moon 테이블의 둥근 라인과 직선의 계단이 형성하는 콘트라스트. 오렌지색과 대비를 이루는 파란색 그림은 미국 작가 래리 벨 Larry Bell의 작품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폴랑’이라는 이름은 이제 세상에 없는 오마주의 대상이 되었어요. 제 입장에서 디자인은 여전히 숨 쉬고 있고 사라지지 않는 존재인데, 그렇게 죽은 사람 취급하며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싫었죠. 그래서 ‘폴랑 폴랑 폴랑’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메아리처럼 멀리 퍼져나가는 듯한 단어의 반복은 세대 간 계승을 의미해요. 사람들은 저와 아내, 어머니 세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착각하곤 하는데 그런 의미는 전혀 아니고요.” 벤자민과 알리스 부부는 지난해 파리 12구의 주택으로 이사하면서 파리+아트바젤 기간 동안 집의 일부 공간을 현대미술 전시를 위해 외부에 공개했다. 파리에서 보기 드문 현대식 주택 건물에 폴랑 가구로 채워진 내부는 당시 가장 주목받는 전시로 입소문을 탔는데, 그도 그럴 것이 피에르 폴랑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한번에 이만큼 많이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내딸을 안고 있는 벤자민 폴랑과 그의 아내 알리스 르모안.

 

그리고 작년 가을 이후 다시 방문한 이곳은 가구의 배치가 조금 바뀐 것과 2살짜리 막내딸을 안고 편안한 복장으로 맞이해준 부부의 모습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전설적인 유산이 내뿜는 모던한 아우라가 감탄사를 이끌어냈다. 대문을 열고 중전을 지나 건물로 들어서면 1층은 주방과 거실, 2층은 사무실, 3층은 가족 침실이 있는 구조다. 지하에는 영화를 볼 수 있는 프로 젝션룸과 여러 손님과 만찬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1980년, 프랑스 건축가 피에르-루이 팔로치 Pierre-Louis Faloci와 장-미셸 빌모트 Jean-Michel Wilmotte에 의해 지어진 이 건물은 장-미셸 빌모트가 42년간 거주했으며, 최근 빌모트로부터 이 집을 구입하면서 지금은 폴랑 가족의 쉼터가 되었는데 여기에는 흥미로운 스토리가 있다.

 

각 층으로 연결되는 직선 계단이 보여주는 공간 분할로도 팔로치와 빌모트가 설계한 건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거실에 놓인 베이지 빅 C 소파와 파란색의 클럽 Club C, 노란색 F572 의자의 조화가 아름답다.

 

알리스가 가장 선호하는 현관의 모습. 벽난로 앞 데클리브 Déclive n°3 롱 체어에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거실 계단 아래 책장 옆 공간에 타피-시에주 소파를 놓아 아이들이 편안하게 독서와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이사를 위해 집을 알아보던 중 알리스가 이 집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찾아 가보니 신기하게도 어릴 적 놀러가본 친구네 집이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친구의 아버지가 살고 계셨던 거였죠. 훌륭한 건축가가 지은 건물인 만큼 우리가 원하는 구조와 공간을 갖추고 있어 바로 이사를 결정했고 약간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아주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어요.” 빅C, 베이비 C 소파를 비롯해 많은 의자가 놓인 거실은 벤자민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며, 알리스는 빛이 잘 드는 현관의 벽난로 옆 롱 체어에 기대어 있는 걸 선호한다.

물론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 야외 중전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곳에는 2014년 마이애미에서 열린 루이 비통 전시 때 제작된 마이애미 Miami 테이블이 있어 가족이 모두 이곳에 둘러앉아 놀이와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거실 책장 앞 타피-시에주 Tapis-Siège 소파 위에서 자유롭게 뒹굴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이 집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광경이다. 타피-시에주는 프로토타입이 퐁피두 센터에 소장되어 있고 피에르 폴랑 살아생전에 제품화되지 않은 디자인이기 때문에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세 명의 자녀와 함께 생활하는 지극히 사적인 가족 공간이지만 이전에 전시를 선보였던 것처럼 일부 공간은 외부에 공개해 피에르 폴랑 가구가 실생활에 어떻게 쓰이는지 보여주려는 계획도 이들 부부는 가지고 있다. 하지만 쇼룸으로 불리거나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폴랑 폴랑 폴랑 프로젝트의 목적은 피에르 폴랑 디자인의 가치를 오래동안 지속시키는 것.

 

알파 Alpha 소파, 알파 클럽 Alpha Club 체어와 로자스 Rosace 커피 테이블을 매치했다. 벽에는 한지에 골드 페인팅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 오베르탕 Bernard Aubertin의 작품을 걸었다.

 

프로젝션룸에는 듄 앙상블과 붉은색 엘리제 조명을 놓았다. 가족들이 정기적으로 이곳에 모여 영화를 관람한다. 뒷면의 사진은 독일 사진가 칸디다 호퍼 Candida Hofer가 찍은 루브르의 모습이다. 사진 속 원형 소파 역시 피에르 폴랑이 디자인했다.

 

듄 앙상블 Dune Ensemble 반대편으로 피에르 폴랑의 빈티지 제품인 뮐티모 Multimo 소파와 엘리제 테이블이 보인다. 그림은 스웨덴 작가 벵트 린드스트룀 Bengt Lindström의 작품.

 

노란색 캬테드랄 Cathédrale 테이블, 파란색 F050 의자와 어울리는 스위스 작가 필립 데크로자 Philippe Decrauzat의 작품. 책장은 모듈 렉탕글 Module Rectangle.

 

그래서 직접 운영하는 공방 제작 시스템을 통해 무분별한 생산과 판매를 차단하고, 유통 역시 가치를 알아보는 사용자에게만 갈 수 있도록 구입 목적과 제품이 놓일 장소까지 세세히 알아본다고 한다. 마치 갤러리에서 예술 작품을 다루듯 말이다. 그렇다고 이를 편협한 운영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전 세계를 이동하며 전통 가옥에 폴랑 가구를 전시해 체험할 수 있는 ‘템포러리 Temporary 홈’ 프로젝트는 작년 일본을 시작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다음은 멕시코를 염두에 두고 있다. 판매실적을 높이는 것이 아닌 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벤자민과 알리스는 자신들의 다음 세대와 그 다음 세대로까지 아버지 피에르 폴랑의 디자인 유산이 명성과 함께 이어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중정을 통해 바라보는 거실의 창

 

대문을 열고 중정에서 집 안으로 들어올 때 보이는 현관 모습.

WEB paulinpaulinpaulin.com

CREDIT

에디터

양윤정

포토그래퍼

Jean-Pierre Vaillanco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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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담는 함

뮤지엄한미에서의 시간 여행

뮤지엄한미에서의 시간 여행

 

성년을 맞은 한미사진미술관이 그동안 쌓아온 시간과 사진 예술의 확장을 꿈꾸며 ‘뮤지엄한미’로 새롭게 태어났다. 압축된 시간과 그 밀도의 힘으로 가득 찬 공간은 자체로 반짝거렸다.

 

해가 중천을 넘어갈 즈음, 뮤지엄한미 2층에는 빛의 태피스트리가 펼쳐진다. 강운구, 주명덕 사진가가 기증한 LP 음반이 벽을 장식했다.

 

고즈넉한 풍경과 다정한 분위기가 마음을 설레게 하는 삼청동길을 한가로이 산책하다 보면 그 길의 끝자락,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 ‘뮤지엄한미’를 만나게 된다. 본래 한미사진미술관 별관이 있던 곳 바로 옆이다. 밝은 색 벽돌로 올린 네모반듯한 건물이 북악산 자락의 풍경과 어우러져 원래 그 자리에 있은 듯 자연스럽게 자리했다. 단정하고 깔끔한 인상을 주는 여러 개의 건물은 바깥에서 보면 분명하게 구획되어 있지만, 실내로 들어오면 각각의 건물이 하나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세 개의 동이 3차원으로 교직하는 구조는 흐름에 따라 관람객으로 하여금 순환하게 하는 기오헌 건축사사무소 민현식 건축가의 설계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중정인 물의 정원이 있다. “미술관이란 특성상 관람객을 수용해야 하는 공공성을 띠어요. 강압적으로 동선을 제한하기보다 좀 더 자유롭게 영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요.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물의 정원을 중심축으로 선회하는 동선은 작품뿐만 아니라 건물 전체를 향유할 수 있게 합니다.” 뮤지엄한미의 김지현 학예연구관이 말했다.

 

푸른 하늘 아래 북악산과 조화롭게 자리한 뮤지엄한미.

 

삼청동은 한옥보존구역과 자연경관보존구역 등 각종 건축 규제가 엄격한 편이다. 특히 고도제한구역으로 지정돼 높이 8m가 넘는 건물은 지을 수 없다. 뮤지엄한미 역시 최대 높이가 7m로 제약을 받았지만, 모든 건물에 박공지붕 양식을 차용해 최대한 공간감을 살렸다. 책을 엎어놓은 모양처럼 뾰족한 지붕은 뮤지엄한미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이다. 전시가 시작되는 1전시실은 미술관의 높은 층고를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박공지붕 형태를 잘 드러낸다. 휴먼 스케일을 넘어선 이곳은 시간과 공간이 규정되지 않은 확장된 장소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절로 압도 되는 공간 속에서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생각과 영감까지 무한히 확장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최대 층고 7m를 자랑하는 전시실. 실내에서도 박공지붕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역사의 장면들이 프레임 안에서 꿈틀거린다.

 

이어지는 전시실에서는 뮤지엄한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개방 수장고를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의 역할은 전시뿐만 아니라 소장품 수집과 작품의 보존 및 연구까지 포괄한다. 이런 이유로 한미사진미술관이 지난 20년간 수집한 2만여 점에 달하는 사진 소장품의 보존을 위해 국내 최초로 저온 수장고와 냉장 수장고를 구축했다. “우리 미술관 소장품 중에는 빈티지 사진이 많아요. 역사적 가치가 큰 작품들이지만 대개 이미 수명이 지나버렸죠. 그렇지만 지금 상태로라도 최대한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도록 사진에 최적화된 설비를 갖췄습니다. 15℃에 상대습도 35%의 저온 수장고에서는 150년을, 5℃에 상대습도 35%의 냉장 수장고 에서는 500년 이상의 수명이 보장돼요.” 현재 전시 중인 작품으로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사진을 도입한 황철이 촬영한 1880년대 사진부터 고종의 초상 사진, 흥선대원군의 초상 사진 원본이 있다. 교과서나 미디어에서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법한 익숙한 사진들이다.

 

유리 벽을 통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개방 수장고.

 

 

실제로 이들 사진은 실온에서는 전시될 수 없다. 빛과 온도, 습도에 예민해서 쉽게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귀중한 작품을 수장고 문을 걸어 잠그고 냉장고 안에서만 유폐시킬 수는 없는 노릇. 뮤지엄한미는 저온 수장고의 한쪽 벽을 유리로 개방해 전시장과 연결된 개방 수장고를 만들었다. 이처럼 개방 수장고는 일반 대중의 시선이 역사적인 작품에 가까이 닿을 수 있게 하려는 뮤지엄한미의 상징적인 전시 장치일 것이다.

 

멀티홀에서 바라본 실내 브리지.

 

지하 1층 멀티홀은 공간의 목적이나 사용을 규정하지 않은 열린 광장으로 기능한다. 영상과 사운드를 수용하는 공간으로 대형 화면으로 사용할 수 있는 7m 높이의 전시 벽과 콘서트홀에 뒤지지 않는 음향 설비를 갖췄다. 공연과 음악회, 아티스트 토크, 영화 상영 등 어떠한 형태의 프로그램도 수행할 수 있다. 2층은 다목적 공간으로 구성했다. 자연광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천장을 오픈하고 외관은 목재 루버를 박공 형태로 마감했다. 내부는 볼트 구조체 양식으로 장식해 천장에 있는 갖가지 복잡다단한 선이 조형적으로 교차하도록 유도했다.

 

1층에서 내려다본 멀티홀에서는 전시 프로그램에 따라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점심이 지나 해가 뉘엿뉘엿 질 즈음, 빛과 그림자의 향연이 펼쳐져요. 휘황찬란한 패턴이 온 벽과 바닥을 화려하게 채색하죠. 이 공간에 가만 앉아 해가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흐름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평온해져요. 민현식 건축가는 여기를 빛의 태피스트리로 물들이겠다고 말했습니다.” 뮤지엄한미는 미술관 하면 떠오르는 화이트 큐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끊임없이 관람객과 반응하며 소통하는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 오는 4월 16일까지 열리는 뮤지엄한미 삼청 개관전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에서 전시된 작품 역시 미술관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라운지 뒤로 보이는 물의 정원.

 

사진은 시간을 기록하고, 시간은 쉼 없이 흘러 오늘까지 이어졌다. 역사의 한 장면을 포착한 사진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자르르 펼쳐지고, 관람객은 시간 여행하듯 직접 작품 앞을 걸어다니며 그 흐름을 짚어나간다. 역사의 장면과 과거의 기록, 어린 나의 기억과 지나간 날의 추억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뮤지엄한미는 그런 시간이 모인 소중한 보물 상자가 아닐까.

 

분명하게 구획된 각각의 건물은 실내에서 모두 하나로 이어진다.

 

 

뮤지엄한미를 설계한 건축가 민현식은 서울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한국 현대 건축의 선구자 김수근과 원도시 건축 연구소의 윤승증 문하에서 건축을 수련하고 실무를 익혔다. 1992년 민현식 건축연구소 기오헌 寄傲軒을 설립하여 독자적인 건축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의 전통사상과 전통건축에서 도출한 ‘비움의 구축’이란 독창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건축적 실천에 몰두했고, 공간대상 건축상과 김수근 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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