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샤넬의 미학과 20세기 예술가들의 기억이 교차하는 리비에라의 라 파우자 저택. 예술계 집단적 상상력의
거점이자 피난처였던 곳이 피터 마리노의 건축적 해석 아래 새롭게 태어났다.

1930년대 당시 형태와 비슷하게 재현한 라 파우자의 드로잉 룸.

고풍적인 인테리어가 특징인 서재.

건축가 로버트 스트라이츠가 1929년 설계한 라 파우자의 북쪽 입면도.
가브리엘 샤넬의 패션 세계가 파리에서 시작되었다면, 그의 예술적 영감은 프랑스 남부의 리비에라에서 비롯되었다. 20세기의 코트다쥐르는 문화 예술의 격동기, 집단적 상상력의 거점이자 피난처였다. 샤넬의 라 파우자 La Pausa 또한 역사적 맥락 속에 뿌리내린 장소로서, 유럽 예술계의 가장 예민하고 창의적인 시기가 축적된 지형적 기억을 갖추고 있다. 1928년, 가브리엘 샤넬은 이 언덕 위에 자신만의 별장을 짓고, 예술가들을 위한 환대의 장을 만들었다. ‘잠시 멈춤’을 뜻하는 스페인어 이름 그대로, 라 파우자는 샤넬에게 삶의 속도를 늦추고, 지식과 예술, 영감과 사유를 나누는 은밀한 쉼터가 되어주었다. 예술가 레지던시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기였지만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장 콕토,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 시대를 이끈 창작자들이 이곳에서 머물며 새로운 작업을 탄생시켰다. <끝없는 수수께끼>를 비롯한 달리의 주요 회화 11점 또한 이곳에서 완성되었다.

1938년 촬영한 드로잉 룸과 서재.

1930년경, 라 파우자의 정원에서 반려견과 함께 촬영한 가브리엘 샤넬.
당시 이미 패션계의 중심에 있었던 샤넬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집을 설계했다는 사실은 라 파우자가 단순한 별장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이곳은 그가 건축가 로버트 스트라이츠 Robert Streitz와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구상한 유일한 공간으로서, 기능과 장식의 관계, 그리고 삶과 예술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 것인지에 대한 고도의 실험장이었다. 흑백사진으로 기록된 1930년대 라 파우자에는 친구들과 식사를 하거나 나무 위에 올라 포즈를 취한 채 웃고 있는 샤넬의 모습이 담겨 있다. 무도회와 스포츠, 창의적인 대화가 오가는 저녁 식사 시간이 매일 저택을 채웠고, 그런 일상은 1953년 연인 웨스트민스터 공작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샤넬의 침대 머리맡에는 빛나는 별 장식을 더해 그녀의 취향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2025년 복각한 샤넬의 침실과 1938년 당시의 침실 사진.

화장실도 놀라울 정도로 기존과 비슷하게 재현했다.

새롭게 태어난 라 파우자의 회랑.

미니멀하고 클래식한 특징을 살려 재현한 다이닝 공간.

1938년 라 파우자에서 연 만찬. 오드리 제임스 필드, 베티나 윌슨, 프랑수아 위고 등이 함께했다.

라 파우자의 회랑에 있는 올리브나무. 위에서부터 프랑수아 위고, 마리아 루스폴리- 위고, 가브리엘 샤넬, 오드리 필드, 피에르 콜.

가브리엘 샤넬이 사랑한 샹들리에 장식이 특징인 2025년의 그레이트 홀.

당시 그레이트 홀에서는 예술가들의 지적인 대화가 활발히 오갔다.

선인장 장식까지 그대로 재현한 그레이트 홀의 내부 모습.

위에서 내려다본 그레이트 홀.
이곳은 그가 건축가 로버트 스트라이츠 Robert Streitz와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구상한 유일한 공간으로서, 기능과 장식의 관계, 그리고 삶과 예술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 것인지에 대한 고도의 실험장이었다. 흑백사진으로 기록된 1930년대 라 파우자에는 친구들과 식사를 하거나 나무 위에 올라 포즈를 취한 채 웃고 있는 샤넬의 모습이 담겨 있다. 무도회와 스포츠, 창의적인 대화가 오가는 저녁 식사 시간이 매일 저택을 채웠고, 그런 일상은 1953년 연인 웨스트민스터 공작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흐른 지금, 라 파우자는 피터 마리노 Peter Marino의 손을 거쳐 다시 깨어났다. 샤넬과 30년 이상 호흡을 맞춰온 그는 복원 과정에서 시간을 과거 회상의 대상이 아닌, 기억의 물성으로 다루었다. 수백 장의 아카이브 사진은 물론, 가브리엘 샤넬의 생애와 시각적 세계관을 철저히 분석했다. 수백 장의 아카이브 사진과 샤넬의 생애, 시각적 세계관을 면밀히 분석한 끝에, ‘마치 마드모아젤 샤넬이 방금까지 이곳에 머물었던 것처럼’ 그 시대의 숨결을 재현하고자 했다. 이 복원은 재현보다는 재활성화에 가까웠다. 배관, 환기, 전기 시스템은 외부로 드러나지 않도록 모두 숨긴 세심한 구조 속에, 샤넬이 유년기를 보낸 오바진 Aubazine 수녀원에서 영감을 받은 석재 아치와 계단, 그리고 16~17세기 스페인 양식의 인테리어가 겹쳐진다. 조각된 목재 가구, 스페인과 페르시아 카펫은 순백의 공간에 따뜻한 결을 더하며, 공간의 온도를 조율한다. 거실의 피아노, 별 장식이 더해진 침대 헤드보드, 리비에라 자연을 품은 정원까지. 꿈의 공간으로 회자되던 라 파우자의 본질은 그대로 되살아났다.
오는 11월, 라 파우자에서는 첫 번째 작가 레지던시가 시작된다. 샤넬이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예술가들이 이곳에 머물며 창작의 리듬을 찾고, 자신만의 시간을 축적해가는 것이다. ‘역사 속 자수성가한 여성’이란 주제로 여는 첫 레지던시는 논픽션 프로젝트에 몰두할 작가 네 명이 참여하며, 아트 컬처 & 헤리티지 보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라 파우자는 가브리엘 샤넬이 추구한 삶의 방식을 집이라는 형식을 통해 구현한 가장 집약적인 공간이었다. 삶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던 샤넬의 ‘아르 드비브르 Art de Vivre’는 이 집 안에서 비로소 구체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오늘날 다시 열리는 이 공간은 샤넬이 지닌 미학적 유산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브랜드가 예술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시대와 호흡하고 있다는 증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