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의 얼굴, 말 없는 질문. 형태로 남은 론 뮤익의 감정 조각들이 우리 안의 내면을 두드린다.

<마스크 II>, 2002, 혼합재료, 77 ×118 × 85cm. 개인 소장.

<나뭇가지를 든 여인>, 2009, 혼합재료, 170 ×183 ×120cm.

<매스>, 2016~2017, 유리섬유에 합성 폴리머 페인트. 가변 크기,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멜버른. 펠턴 유증, 2018.

<론 뮤익의 작업실, 벤트너, 2019~2023>, 디본드 패널에 컬러사진, 79.5 ×100cm. © Gautier Deblonde

<침대에서>, 2005, 혼합재료, 162 × 650 × 395cm.
누구도 온전히 타인의 내면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론 뮤익의 조각을 보면 그 무게와 숨결이 자신도 몰랐던 마음속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삶의 연약함, 존재의 쓸쓸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일상의 존엄. 조각가 론 뮤익은 이 모든 것을 손으로 조형해낸다. 30년 넘는 시간 동안 인간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그 이면의 감정을 집요하게 탐색해온 그의 조각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지만, 그 이상으로 진실하다. 단지 피부 주름이나 머리카락 한 올을 묘사하고, 삶의 내면을 포착하려는 예술적 집념이 그를 움직였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공동 주최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회고전 <론 뮤익>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론 뮤익의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총 24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으며, 조각, 다큐멘터리, 스튜디오 사진 등 다층적인 형태로 구성했다. 높이 1m 넘는 자화상 <마스크 II>는 인간이 타인에게, 또 스스로에게 말하는 ‘얼굴’의 개념을 되묻는다. 작품 <침대에서>는 6m에 달하는 인간 형상이 무채색의 침묵 속에 놓여 있다. 전시의 절정을 이루는 작품은 <매스>다. 수많은 두개골이 소용돌이치듯 겹겹이 쌓인 대작인데, 죽음의 물리성을 압도적 스케일로 시각화하며 동시대적 불안을 응시하는 무언의 성소로 자리 잡는다. 전염병과 전쟁,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작품은 어떤 언어보다 더 깊은 질문을 건넨다. “비록 표상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내가 포착하고 싶은 것은 삶의 깊이”라고 말한 론 뮤익의 조각은, 현실의 복제라기보다 기억 속 감각에 더 가깝다. 정교한 기술을 넘어선 철학적 질문, ‘우리는 왜,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그의 인물들은 결코 말하지 않지만, 말 없는 표정으로 내면을 되묻는다. 관객은 어느새 보는 자에서 느끼는 자가 되고, 조각은 사물이 아닌 사건이 된다.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시대, 즉각적 만족이 만연한 세상에서 론 뮤익의 작업은 유예된 시간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멈추고, 바라보고, 기억한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깊은 호흡으로 만나야 할 세계가 이곳에 있다. 전시는 오는 7월 1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5, 6 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