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파리의 유산

다시 태어난 파리의 유산

다시 태어난 파리의 유산

역사와 예술이 숨쉬는 그랑 팔레에, 파리의 새로운 여유를 더하는 르 그랑 카페가 문을 열었다.

곡선 마감이 돋보이는 천장 아래 테라코타 컬러로 따스하게 마감한 르 그랑 카페 내부.

1900년, 새로운 세기를 축하하며 파리에서 만국 박람회가 열렸다. 파리 곳곳에는 전시를 하기 위한 새로운 건물들이 세워졌고, 전시관에는 디젤 자동차, 전기 자동차, 지하철 등 수많은 기계와 발명품이 많은 이의 시선을 끌며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00m 넘는 에펠 탑에 올라 길을 헤매지 않도록 체계가 잘 잡혀 있는 도시,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아 산책이 가능한 도시를 내려보며 파리가 20세기 최고의 도시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 당시 파리의 명성에 힘을 실어준 건물 중 지금까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곳이 그랑 팔레, 프티 팔레,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오르세 미술관(당시에는 기차역)이다. 특히 그랑 팔레는 고전주의식 석조 전면부에 당시 최신 유행이던 아르누보식 철재 마감을 더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보자르 Beaux-Arts 양식으로 건설되어 가장 중요한 전시관으로 쓰였다. 지금도 그 역할을 그대로 이어가며 FIAC, 샤넬 런웨이 같은 대형 전시회가 열리는 파리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2021년부터 노후화로 인한 안전 문제 해결을 위해 전면 보수공사가 진행됐고, 지난해 파리 올림픽에서는 태권도와 펜싱 경기장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올봄 보수공사가 마무리되어 다시 많은 이들이 전시를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여기에 그랑 팔레의 화룡점정이라 할 르 그랑 카페 Le Grand Café가 문을 열며, 이곳을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다.

셰프 브누아 다르제르가 이끄는 레스토랑에서는 프랑스 고전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벨 에포크 시대의 풍요로운 식물에서 영감을 얻어 연출한 테라스.

카페의 인테리어는 세계적인 건축가 조셉 디랑 Joseph Diran이 맡았다. 그는 그랑 팔레의 역사적 웅장함을 존중하면서, 따뜻한 색감과 대단한 볼륨, 벨벳, 대리석, 유리 모자이크, 옥시드 그린 메탈 구조, 빈티지 거울, 와인 컬러 래커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몽환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름다운 테라스는 플로리스트 티에리 부테미 Thierry Boutemy가 벨 에포크 시대의 풍요로운 식물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으며, 샹젤리제와 프티 팔레가 한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한다. 또한 루이-에두아르 푸르니에 Louis-Edouard Fournier가 감독한 모자이크 프리즈가 75m에 걸쳐 장식되어 있어 식물과 어우러진 예술적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주방은 셰프 브누아 다르제르 Benoît Dargère가 이끌며 프랑스 브라세리의 고전적인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메뉴를 선보인다. 대표 메뉴로는 오믈렛 미모사, 아스파라거스와 홀랜다이즈 소스, 직접 만든 푸아그라, 솔 뫼니에르, 닭과 모렐 버섯, 타르타르-프리츠, 해산물 플래터 등을 만날 수 있다. 저녁이 되면 라이브 재즈 연주가 펼쳐지며, 전설적인  바텐더 콜린 필드 Colin Field가 준비하는 칵테일을 맛볼 수 있다. 르 그랑 카페는 그랑 팔레의 역사와 예술적 유산, 파리지앵의 라이프스타일,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공간으로서 낮에는 햇살 가득한 테라스에서 즐기는 식당으로, 밤에는 재즈와 칵테일이 어우러진 파리의 밤을 만끽할 수 있는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 파리 현지인과 여행객 모두에게 가장 사랑받는 공간이다.
ADD Rotonde Clemenceau, 1 place Clemenceau, 75008 Paris INSTAGRAM @legrandcafe.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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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관(파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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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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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풍미에 농축된 한입. 정성이 담긴 시간으로
완성된 샤퀴테리 맛집.

보끼 2인 플레터

어니언 수프

훈제 연어

성수동에서 만나는 유럽의 식탁, 세스크 멘슬
햄이나 소시지처럼 짠맛 강한 육가공 식품은 평소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성수동의 정통 유럽식 샤퀴테리 전문점인 세스크 멘슬은 그 편견을 뒤집었다. 이곳은 김정현 셰프가 유럽에서 10년간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를 돌며 배운 육가공 기술로 직접 만드는 샤퀴테리 전문점이다. 2019년 오픈 이후 성수동의 유럽식 노포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이 집의 진짜 매력은 맛과 분위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데 있다. 체크 테이블보가 깔린 실외 테이블에 앉아 와인을 칠링하고 콜드컷 플레터를 펼치니 이곳이 서울인지 유럽 골목인지 헷갈릴 정도다. 복잡한 메인 거리에서 살짝 떨어진 조용한 골목에 위치한다는 점도 무척 좋았다. 무엇보다 콜키지 프리라는 점은 대환영이다. 메인으로 주문한 ‘보끼 2인 플레터’는 샤퀴테리에 대한 인식을 단번에 바꿨다. 프로슈토, 살치촌, 부라타 치즈, 버터, 바게트, 올리브와 토마토 샐러드까지 깔끔한 구성에 햄마다 풍미가 다채롭고, 무엇보다 짜지 않아 좋았다. 이를 한 조각씩 빵에 올리고, 그 위에 치즈를 얹어 먹으면 완벽하게 페어링된다. 고기 위주 구성 사이에 감칠맛을 환기시켜주기 위해 함께 주문한 훈제연어는 은은한 향이 살아 있어 좋고, 오이 샐러드는 입안을 깔끔하게 씻어줘 전체 조합에 힘을 보탰다. 치즈 듬뿍 얹힌 어니언 수프는 따뜻하고 묵직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하니 꼭 주문해보길.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 야외 테라스에 앉아 와인 한 병과 함께 유럽의 맛을 음미해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성수 골목에서 만나는 가장 근사한 어니언 수프 훈제 연어 미식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INSTAGRAM @xescmenzl

메종조 샤퀴테리 플레이트

짭짤한 한입, 메종조
샤퀴테리를 진지하게 즐기는 이들이라면 지나칠 수 없는 이름, 메종조. 프랑스 정통 샤퀴테리 문화를 한국에 제대로 뿌리내리게 한 이곳은, 일반 델리숍 그 이상이다. 조우람 샤퀴티에는 프랑스 국가 공인 샤퀴티에 자격증을 취득한 최초의 한국인. ‘루이 오스피탈’과 ‘메종 베호’에서 기술을 익힌 그는, 프랑스의 육가공 전통을 한국에서 실현해내고 있다. 여기에 파리의 유명 베이커리 ‘데 가토 에 뒤팽’ 출신 이은희 파티시에가 만든 바게트와 깜빠뉴, 구움과자들이 힘을 보탠다. 2018년부터 서초에서 오랜 시간 운영한 메종조는 지난해 말 청담동에 두 번째 공간을 열었다. 샌드위치와 비스트로 메뉴를 강화해, 좀 더 일상적인 식사 공간으로 확장된 느낌이다.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는 브런치 타임. 샌드위치와 수프, 프렌치 오믈렛 등을 맛볼 수 있다. 낮 12시부터는 비스트로 메뉴가 등장해 본격적인 식사가 가능하다. 테이블엔 메종조 특유의 위트 있는 일러스트 플레이트가 놓이고, 계절에 따라 바뀌는 작은 스타터들이 먼저 나온다. 닭 간무스에 무화과를 얹은 핑거푸드와 참외꼬지가 나온 날, 대표 메뉴인 메종조 샤퀴테리 플레이트를 주문했다. 닭고기 테린, 모르타델라, 초리조, 소시송 등 다양한 샤퀴테리를 한 접시에서 만날 수 있다. 샤퀴테리는 짜다는 편견을 깨는 맛이다. 고소하고 담백하며, 특히 필레 드 뽀는 적당히 염지된 돼지 등심의 결이 살아 있고, 로모 쎅은 투명한 단면과 쫄깃한 식감이 인상 깊었다. 등심을 건조 숙성시켜 기름기는 줄이고 풍미는 살린 맛이다. 함께 곁들인 토마토 소시지 라구 뇨끼는 꽤 진한 육향에 꽁떼 치즈가 더해져 호불호가 갈릴 듯. 뇨끼는 쫀득한 느낌보다는 크리미한 텍스처에 가깝다. 식사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샤퀴테리와 샐러드, 구움과자, 베이커리를 판매하고 있어 테이크아웃하기 위해 들러도 좋은 곳이다. 다음엔 잠봉블랑 샌드위치와 수프를 곁들인 아침 식사를 즐기러 다시 한번 들를 예정. INSTAGRAM @maison_jo_

샤퀴테리 플래터와 어니언 수프

정직하게 숙성된 풍미, 랑빠스 81
연남동 뒷골목에 위치한 랑빠스 81은 프렌치 비스트로 스타일을 표방하는 캐주얼한 식당이다. 크지 않은 규모지만 셰프의 손길을 가까이 느낄 수 있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으로서, 국내 미쉐린 가이드에 가장 먼저 등재된 샤퀴테리 전문점이기도 하다. 이날 주문한 메뉴는 어니언 수프, 샤퀴테리 플래터와 삼겹살 요리. 전채로 나온 어니언 수프는 깊게 캐러멜라이즈된 양파향이 진하게 퍼지며, 풍미와 온기를 동시에 안겨줬다. 메인 격으로 등장한 샤퀴테리 플래터는 정성스레 숙성시킨 햄, 초리조, 잠봉 드 파리, 소시송, 살라미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매콤한 맛이 특징인 초리조는 묵직한 질감 속에서도 기분 좋은 감칠맛이 느껴졌다. 짭짤하면서도 기름진 맛이 감도는 구성에 곁들여진 피클은 맛의 균형을 잘 잡아주었다. 함께한 삼겹살과 건자두 요리는 예상한 것보다 다소 강한 단맛이 있었지만, 말린 과일 특유의 쫀득함이 고기의 기름진 식감과 어우러져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인 뉘앙스를 남겼다. 와인을 곁들이기에도 손색없는 구성. 대중적인 재료로 프랑스의 정통적인 기술을 풀어낸 랑빠스 81은 맛 자체에 충실한, 샤퀴테리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부담 없고 깊이 있는 프렌치를 맛보고 싶다면 주저하지 않고 추천한다. 샤퀴테리 플래터와 어니언 수프 INSTAGRAM @limpasse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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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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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의 언어

‘동쪽을 비추다’라는 자신의 이름처럼 조영동 셰프는 동아시아의 미식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비춘다.
동양의 문화와 서양의 테크닉이 교차하는 경계 위에서 쌓여가는 이스트만의 언어.

시그니처 메뉴인 갈비 스톤. 도넛 형태의 디시 안에는 잘게 찢은 갈비가 블루치즈와 곁들여졌다.

칼 같이 정렬된 테이블 세팅을 자랑하는 이스트 매장 전경.

이스트의 조영동 셰프.

세계 미식 시장에서 가장 권위 있는 지표로 꼽히는 미쉐린 스타를 받는 것은 모든 셰프의 꿈이겠지만, 이스트의 조영동 셰프에겐 특히 더 그랬다. 지난해 2월 미쉐린 가이드에 처음으로 레스토랑의 이름을 등재하며 목표에 가까워지던 그가 결국 올해 초 드디어 첫 스타를 거머쥐었다. 2022년 11월 처음 레스토랑을 오픈하고서 약 2년 만에 이룬 성과지만, 조영동 셰프에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외식업계가 어려운 시기에 문을 연 만큼 불안정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2년 뒤 ‘미쉐린 가이드 서울 & 부산 2025’이 발표되던 날, 이스트의 이름이 호명되던 순간은 아직도 그에게 생생하다.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예약 알림이 계속 떴어요. 하루에 서너 건 정도 들어오던 예약이 3일 만에 한 달치가 차버렸죠.” 함께 고생해 팀원들과 나누는 기쁨은 남달랐다. 조영동 셰프에게 미쉐린 스타는 단순한 훈장이 아니었다. 요리를 시작할 때부터 품어온 목표이자, 동료들에게 ‘함께 해낼 수 있다’는 자긍심을 안겨주고 싶던 상징이었다.

조영동 셰프가 요리를 처음 시작한 것은 23세. 컴퓨터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무렵, 요리의 재미를 깨달았다. 전공을 호텔조리학과로 바꾸고, 졸업 후 호주의 모모푸쿠 세이보와 덴마크의 108에서 셰프 경력을 쌓았다. 호주 레스토랑에서 유일한 동양인으로, 덴마크 키친에서 유럽 셰프들과 함께하며 느낀 문화적 거리감은 오히려 그에게 무기가 되었다. 동아시아 음식 문화 전반을 아우르되, 특정 국가에 고정되지 않은 자신만의 ‘동양적 현대성’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퓨전이라기보다는 재료의 전통성과 조리법의 현대성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서양 테크닉에 동양 문화를 얹으면, 저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이스트는 ‘동아시아의 현대적 표현’이라는 뚜렷한 방향을 갖게 되었다.

가브리살, 알등심, 새우살을 하나로 결합한 것이 특징인 제주 흑돼지 요리.

영덕 대게로 속을 채운 두부 요리는 캐비아와 아귀 간이 함께 곁들여진다.

분주하게 작업하고 있는 조영동 셰프와 이스트의 스태프들.

메뉴에는 하나의 국적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구성과 철학이 담겨 있다. 시그니처 메뉴인 ‘갈비 스톤’은 가장 한식스러운 메뉴인데, 저온 조리한 갈비에 블루치즈의 쿰쿰한 맛이 조화를 이루는 도넛이다. 차완무시 요리는 일본식 달걀찜을 바탕으로 대만의 우롱차와 닭, 생강으로 만든 소스를 더해 풍미를 살렸다. 그 위의 전복은 다시마와 중국 소흥주로 찌는 방식으로 향을 입혔고, 구기자 열매와 파래 무침을 올렸다. 메인 디시는 제주 흑돼지의 세 부위인 가브리살, 알등심, 새우살을 하나로 결합해낸 요리다. 특이점이 있다면 유럽산 이베리코 대신 한국산 흑돼지로 요리를 선보였다는 점이다. 또 다른 메뉴인 두부 요리 또한 경남 진주의 백태콩을 이용해 만들었다. 한국에서 요리하는 만큼, 한국의 재료로 맛을 내고 싶다는 소신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메뉴 구성에는 일관된 기준이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요리를 하고 싶어요.” 상하이의 마장면, 화자오 향이 가미된 대만의 수프 등 여행지에서 받은 인상이 재료의 조합과 조리법으로 이어진다. 조영동 셰프의 레시피는 언제나 현실과 경험에서 출발하고, 여행을 포함한 모든 일상에서 영감을 받는다. 이스트의 와인 페어링 역시 독특하다. 소믈리에인 박건우 매니저는 요리사 출신으로서, 그의 페어링은 음식 조리 과정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갖는다. “음식에 어떻게 간을 하고, 어떤 양념을 쓰는지를 아는 만큼 페어링할 때도 그 맛의 흐름과 균형을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어요. 그 미세한 차이가 분명히 있죠.”

미쉐린 스타라는 꿈을 이룬 그의 다음 목표가 궁금해졌다. “외국 미식가들이 서울에 오면 꼭 들르고 싶은 레스토랑이 되었으면 해요.” 쉬는 날에도 다른 국가의 레스토랑 리뷰를 찾아보거나 새로운 경험을 위한 연구를 멈추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쉴 때도 결국 이스트 생각만 해요. 그런데 그게 가장 재미있어요.” ‘이스트 Y’east’라는 이름은 ‘동쪽을 비추다’는 뜻을 지닌 셰프 자신의 이름, ‘영동 暎東’에서 비롯되었다. 낯선 재료와 조리법 사이를 오가며 동아시아라는 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자신만의 미식을 완성해가는 조영동 셰프. 정해진 문법이나 경계 없이, 오직 자신만의 미식 언어로 쌓아올린 이스트는 조영동 셰프가 직접 보고 살아온 동양을 동시대 언어로 재구성한 하나의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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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차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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